탈세 도운 세무·회계사 가중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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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공인회계사 오모(37)씨와 허모(39)씨는 2008년 부동산 임대업자 이모(64)씨 의뢰로 ‘작전’에 착수했다. 이씨는 서울 강남의 시가 1100억원짜리 빌딩을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자녀들에게 물려주길 원했다. 법대로 세금을 내면 증여세만 400억원이 부과될 상황이었다.

1억5000만원의 보수를 약속받은 회계사 2명은 복잡한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이들은 홍콩의 유령회사를 통해 중국 철강회사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것처럼 꾸며 청산금을 챙겼다. 이 청산금을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탁한 뒤 이씨가 운영하는 부동산 임대업체의 주식을 사 이씨 자녀들에게 증여한다는 계획이었다. 홍콩은 주식양도에 대해 소득세나 증여세를 물리지 않는 점을 노린 것이었다.

 이들은 청산금을 세탁하는 단계에서 검찰에 적발됐다. 이씨는 구속 기소됐고 회계사 2명도 불구속 기소됐다. 회계사들은 지난 8월 1심 법원에서 집행유예형을 선고받았다.

 앞으로는 조세포탈 범죄에 적극 가담한 공인회계사나 변호사도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될 전망이다. 탈세에 깊이 관여하고도 집행유예 등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는 비난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위원장 이기수)는 오는 17일 열리는 45차 전체회의에서 조세범죄에 관여한 공인회계사와 변호사·세무사를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조세범죄 양형기준을 의결할 예정이다.

 현행 조세범처벌법상 공인회계사·변호사는 허위 세금계산서 발행에 관여한 경우에만 가중처벌토록 돼 있다. 그러나 양형위는 ▶계획적·조직적 범행이나 2년 이상의 반복적 범행 ▶상습범과 동종 누범 등과 함께 ‘세무를 대리하는 세무사·공인회계사·변호사의 중개·알선·교사행위’를 가중처벌하는 양형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형위는 일반 조세포탈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대상(조세포탈 5억원 이상, 허위세금계산서 수수 50억원 이상)으로 나눠 따로 양형기준을 설정키로 했다.

일반 조세포탈의 경우 포탈세액에 따라 기본형을 징역 4월에서 최대 1년 6월로, 가중처벌 시 최대 2년으로 정했다. 특가법상 조세포탈인 경우에는 기본형을 징역 2~9년, 가중처벌 시 최대 12년까지 선고할 수 있게 했다. 허위세금계산서 수수의 경우 특가법을 적용하면 최대 징역 7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이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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