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닫게 될 국립 극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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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족문화의 발전과 무대예술의 진흥을 위해 발족된 국립극장이 문을 닫게 되었다. 연간 약 9백만 원 규모의 예산(공연비만)으로 연극료 「오페라」·무용·국극·교향악 등의 공연 활동을 해오던 국립극장의 새해 공연 비 예산이 약 4백만 원으로 대폭 삭감됨으로써 내년도의 모든 공연활동을 마비시켜, 폐문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에 당황한 국립극장 운영위원회(서항석·박진·여석기·김성태·김세형·성경린·임성남·송범·김연수 제씨)는 지난 14일과 17일 두 차례 긴급회의를 열고 이의 시정을 국회와 정부 요로에 건의하기로 했고, 예총 산하의 연극협회도 지난 14일 긴급이사회를 소집, 이 문제를 심각하게 검토했다.
한편 국립극장의 각 예술단체 책임자들도 18일 회합을 갖고 투쟁방법을 논의키로 되었다. 따라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국립극장의 「예산파동」은 국립극장의「존폐 문제」로 확대. 세모의 문화계에 적잖은 파문을 던지고 있다.
애당초 국립극장이 제출한 66년도 예산안 가운데 공연 비는 총액 9백20만8천 원. 이것은 연간「연극」 5회를 비롯하여 「오페라」 2회, 「무용」 2회, 「국극」 2회, 「교향악」 6회의 공연 비로 제출한 것인데 이 예산안에서 5백여 만원이 삭감, 4백11만9천 원 만이 지난 3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 예산액은 1회 공연에 약 75만 원의 비용이 드는 「연극」의 연간 공연 비 밖에 되지 않으며, 연간 자체공연 74일, 대관 1백93일, 휴관 98일(65년의 예)인 국립극장의 자체공연을 약 30일로 위축시키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안 그래도 냉방시설이 없어 여름철마다 3개월 이상 억지 「하면」을 해야하는 국립극장의 실질적인 공연은 l년에 한달 꼴 밖에 되지 않는 셈이다. 참고로 62년부터 65년까지 국립극장의 세입 목표액과 실적, 차액을 살펴보면-(별표). 62년엔 목표액과 실적의 차가 3백여 만원 미달로 나타났고 63년엔 목표액을 대폭 줄였으나 역시 차액이 약 70만 원 미달. 64년부터 실적이 목표액을 초과하고 있다. 이것은 이례적인「오페라·붐」으로 국립극장이 개관이래 처음 흑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65년의 경우는 목표액이 새해 예산액과 같은 4백11만9천 원, 실적은 5백55만 원이다. 국립극장이 제출한 새해 예산안의 세입목표액은 약 7백만 원으로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를 통과하여 확정된 66년도 예산이 65년의 실적보다 못한 액수라면 위정 당국자들의 「문화정책」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한때 적자 투성이의 국립극장을 민간에 불하하자는 논의도 있었다. 그러나 만약 민간의 손에 들어갈 경우, 그 누가 「적자가계」를 감수하면서 사양의 무대예술을 지탱해 나갈 것인가. 수지 맞는 영화나 「쇼」의 무대로 타락시켜 버릴 것은 뻔한 일이라고 여석기(고대) 교수는 말한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오랫동안의 숙원이었던 국립극장을 우리보다 훨씬 뒤늦은 내년 9월에 준공하는데 일화 2억8천만 원을 국고에서 부담하라는 여론이 비등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국립극장이 없는 나라는 새로 세우려고 야단들인데 15년의 역사를 가진 국립극장의 숨구멍을 틀어막으려는 처사는 납득할 수 없다고 이진순(연극 연출가)씨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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