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추문 피해 여성 사진 열람·유출은 인격 살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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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성추문 파문을 일으킨 전모 검사로부터 조사를 받은 여성 피의자의 사진이 검찰에서 유출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성폭력 피해를 보았다는 피의자 사진이 수사기관에서 한낱 여흥거리로 유통됐다는 데 충격과 분노를 금하기 어렵다. 이제 전 검사 개인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 검찰 조직이 피의자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피의자 사진 유출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된 건 해당 사진이 인터넷에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다. 피의자 측 변호사는 “당사자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공황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며 경찰에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수사와 직접 관련이 없는 24명의 검사·수사관이 수사기록 조회 시스템에서 피의자 사진이 포함된 관련 자료를 조회한 사실을 확인했다. 어제 검경 합의로 일단 검찰이 자체감찰을 벌인 뒤 경찰이 그 결과를 토대로 수사를 재개하기로 했다. 해당 여성의 변호사는 어제 “사진이 검찰 등에서 유출됐다는 정황에 경악한다”며 “감독책임을 소홀히 한 국가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가 지적한 대로 유출 의혹이 사실이라면 인권 유린으로 지탄받아 마땅하다. 피의자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나돌면서 각종 포털에 ‘성추문 검사 여자 사진’이 실시간 검색어로 뜨는 등 이른바 ‘신상털기’가 이어졌다. 인격 살인이나 다름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번 문제는 검경 수사권 갈등의 관점에서 접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검찰과 경찰은 강도 높은 감찰·수사로 유출·유포 과정을 추적해 반드시 유출 고리를 밝혀내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사진 유출·유포에 연루된 관련자를 형사처벌하고 그 사진을 관음증의 대상으로 여긴 이들을 중징계해야 할 것이다.

 인권 보호에 앞장서야 할 검찰에 이런 후진적 행태가 있었다는 건 조직 전체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비슷한 성폭력 피해자 기록도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검찰과 경찰은 수사기록 관리 전반에 대해 철저한 내부 감찰을 벌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