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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으로 성교육 … 사춘기 아들·딸이 엄지손가락 치켜세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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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서구 염창중학교 학부모회 엄마들. 그들은 연극을 통해 “이웃사랑, 봉사, 자기계발, 자녀교육 등 1석4조의 효과를 얻었다”고 한다. 왼쪽부터 박지은·박주현·신성희·김소희·정영화씨. [김진원 기자]

아이를 키우면서 피하고 싶은 이야기, 될 수 있으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미룰 수만 있다면 미루고 싶은 이야기, 바로 ‘내 아이의 성교육’이다. 인형극을 통해 내 아이는 물론 이웃 아이들까지 건강하고 밝게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 있다. 서울 강서구 염창중학교(교장 최만석) 엄마들이 들려주는 현명한 재능기부에 귀 기울여 보자.

글=김소엽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지난 3월 염창중 학부모회 엄마 11명이 아이들을 위한 뜻있는 모임을 열었다. 서울시교육청이 후원하는 재능기부 활동으로 ‘성교육 인형극’을 시작한 것이다. 자녀들보다 어린 유아·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삼았다. 정영화(42)씨는 “날로 늘어나는 성범죄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굿네이버스의 성교육 인형극 프로그램을 알게 돼 인형도 지원 받고 연극에 필요한 기법도 배우게 됐다”며 “중학생인 아이들을 대상으로 엄마가 성교육을 해 봤자 아이들도 쑥스럽고 엄마도 불편해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했더니 1석2조의 효과가 생겼다”고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가정에서 일어났다. 김소희(41)씨는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연습도 열심히 한다”며 “집에서 연습할 때 연극 이야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성교육에 대한 대화로 이어진다”고 했다. 박지은(35)씨는 딸만 셋이다. 딸을 둔 엄마들은 특히나 불안한 마음에 낯선 사람을 조심하라고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말로만 하는 교육은 현실에선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박지은씨는 “말로 하는 교육은 현실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사건에서는 순진한 마음으로 따라가게 된다”며 “인형극으로 실제 상황을 보여주니 아이들 스스로 느끼는 바가 커졌다”고 전했다.

 박주현(42)씨도 “과거에는 막연히 성교육이야 학교에서 해주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점점 성범죄가 흉악해지고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어 현장감 있는 교육법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됐다”며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 엄마 친구를 모방한 사람, 아는 오빠 등 구체적이고 현실감 있게 그때그때 시나리오를 수정하며 공연한다”고 설명했다.

김소희씨는 중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다. 딸을 둔 엄마들과 달리 김소희씨는 “아들을 둔 엄마들은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깊이 고민한다. 이웃집 오빠는 저 멀리 우주에서 온 아이가 아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얼마 전 식탁 위에 놓인 대본을 살펴보던 아들이 환하게 웃으며 “엄마 멋져”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들의 말에 김소희씨는 “그래 잘했구나. 이 일은 이웃 아이는 물론 내 아이에게까지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엄마들이 추천한 집안에서 하는 성교육 방법은 무엇일까. 신성희(52)씨는 “유아·초등생을 둔 엄마라면 성교육 동화책을 활용해 보라”며 “가족이 함께 성교육 연극을 열거나 엄마가 구연동화 형식으로 읽어 주며 상황을 연출해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성교육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고생 아이들은 유아·초등생과는 조금 다르다. SNS나 문자를 활용한 언어적 성폭력에도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주제로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마리오네트를 이용해 볼 계획도 있다. 정영화씨는 “성교육은 예시를 들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그에 따른 예방법까지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청소년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가 공존하는 연령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느낄 고통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만으로도 올바른 성지식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염창중 학부모회는 5월 16일 신원초등학교에서 첫 공연을 한 뒤 유치원·초등학교 20여 곳의 아이 2500여 명에게 연극을 선보였다. 현재는 11명이 2팀으로 나눠 각각 월 1회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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