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해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해신/최인호 지음, 열림원, 전3권 각권 9천원

해방둥이면 곧 환갑이다. 그러나 작가 최인호씨는 확연한 청춘이다. 요즘 KBS-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다큐로망-해신 장보고'에서 세계의 바닷길을 떠돌고 있는 최씨를 보라.

얼굴 어느 한군데에서 세월에 찌든 주름이 보이기는커녕 해풍에 발갛게 씻긴 동안(童顔)이 아니던가.

최씨의 청춘은 바지런함에서 나온다. 1970년대 청년문화의 기수로서 당대의 낭만과 환멸을 담더니 80년대는 우리의 고대사,그리고 90년대는 구도소설로까지 치고 들어갔다.

그리고 2001년 7월 중앙일보에 찾아와 막무가내로 소설을 연재하자며 이 작품 '해신(海神)' 원고를 내밀었다.

당시 주요 일간지들은 다른 전문매체도 많기에 연재소설은 신문에서 더 이상 매력을 끌 수 없다며 연재를 접었었다. 이후 그는 소설의 참맛을 보여주며 후배작가들에게 연재지면을 다시 터 물려주겠다는 사명으로 1년간 연재에 들어갔다. 그 작품을 수정.보완해 이번에 3권으로 펴낸 것이다.

"세계인, 우리는 세계인을 '코스모폴리턴'이라고 부른다. 21세기 미래지향적인 인물의 전형은 바로 세계인인 것이다. 내가 새삼스레 장보고를 해신이라고 부르며 그를 역사의 수면 위로 떠올리는 소설을 쓰는 것은 우리의 소중한 젊은이들이 장보고와 같은 국제적인 감각을 지닌 세계인으로 성장해주기를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여간 우리의 역사서를 뒤적이며, 전문가를 찾아다니며, 또 일본.중국 등에서 장보고의 자취를 더듬으며 취재를 마친 최씨는 위와 같은 각오로 '해신' 집필에 들어갔다.

물론 1천2백년 전 한.중.일 삼국은 물론 아랍제국들과의 해상무역을 장악했던 장보고를 온전히 복원시켜 한반도가 지정학적으로 유래 있는 동북아 물류중심지임을 확인하려는 시대적 예견이기도 했다.

'삼국사기' 등 우리의 역사서는 장보고를 멸망한 백제의 바닷가에서 태어난 미천한 해도인 출신으로 모반을 꿈꾸다 부하에게 살해된 반역자로 아주 미미하게 서술하고 있다.

최씨는 우선 이런 장보고의 삶을 온전하게 복원하고 있다. 당나라에 건너가 공을 세운 장군으로서 해운과 무역에 관심을 가졌다. 신라 흥덕왕의 발탁으로 신라로 돌아와 청해진 대사를 임명받고 동북아 해상무역로를 개척하고 지키는 해상왕으로서의 장보고를 사실에 입각해 복원했다.

또 당나라에 신라인들을 위한 적산법화원이란 거대한 사찰을 세워 재당 신라인의 정신적 지주와 함께 불교 개혁에 힘썼던 장보고의 측면도 드러낸다.

또 신라인을 잡아다 노예로 파는 해적들을 소탕하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인본주의자, 신라말 어지러운 정치를 바로잡으려는 정치개혁가로서의 장보고의 면면들도 사료에 바탕을 두고 낱낱이 밝혀지는 다큐멘터리 소설이 '해신'이다.

이 작품은 장보고의 삶을 따라 이야기가 직선적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중간중간, 곳곳에 당대의 삶의 모습과 종교.사상 등이 당나라 시인 두목의 '번천문집' 등 옛 사료를 통해 풍부하게 들어갔다.

다른 매체와 달리 쉬어갈 수 있는 활자 공간에서의 풍부한 인문적 교양을 주기 위해서다.

영상과 게임에 중독된 바쁜 세대에게는 지루하게도 느껴질 이 고급스런 교양을 차분하게 잃어낼 독자들도 많다는 것을 최씨는 이미 '상도'나 '길 없는 길' 등을 통해 보여준 바 있다.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