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태·이영애 새 영화 '봄날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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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다' 생각하고 보면 좀 나을겁니다". 새 영화 '봄날은 간다'의 첫 시사를 앞둔 허진호 감독의 일성은 지나친 기우였다.

'8월의 크리스마스' 이후 3년. 단 한 작품으로 한국영화계를 대표할 감독으로 주목 받았던 그는 오랜 휴식 끝에 전작을 능가하는 영상미와 감동을 선보였다.


'봄날은 간다'는 두 남녀의 흔한 사랑을 그렸지만 제목처럼 '만남' 보다는 '이별'에 치중한 영화다. 겨울의 끝에서 20대의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는 30대의 지방 라디오 PD 은수(이영애)를 만나고 봄과 함께 사랑도 찾아온다.

쉬이 달궈지지만 빨리 식는 쇠처럼 이들의 사랑은 여름을 맞기도 전에 삐걱댄다. 이혼의 아픔, 외로움을 벗삼아 지낸 세월이 만든 은수의 벽은 상우를 밀어내고, 때론 웃으며 때론 울며 뻗는 상우의 손길은 번번이 허공을 휘저을 뿐이다. 그리고 이듬해, 찬란한 봄 햇살이 사그라질 때 '사랑'도 떠나간다.

전작에서도 찬사를 받았던 긴 호흡에 즉흥적인 자연스러움을 더한 화면은 시종 객석을 압도한다. 고정된 카메라 앞의 배우들은 느릿한 움직임에 대사도 거의 없지만 이들의 상황은 생동감 있게 뇌를 자극한다.

"촬영 전에 장면을 상상하거나 구체적인 동작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배우의 연기에서 군더더기를 뺐을 뿐이죠." 배우 스스로 느끼고 표출해내는 감정과 동작들을 최대한 살린 홍 감독의 연출은 화면에 자유분방과 진실함을 함게 더했다.

두 주인공의 연기는 물론이거니와 노부부의 '정선 아라리'를 채록하는 장면 등 자칫 어색해지기 쉬운 부분에서도 사실감이 돋보인다. '한 컷 당 평균 다섯 시간을 할애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는 두 배우의 설명이 없어도 집요하게 매달렸을 작가정신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최루성 멜로'를 배제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 잔잔하게 담아낸 이별 역시 신선하다. 망원렌즈와 광각렌즈를 번갈아 들이대듯 때론 세밀하게, 때론 과감한 생략으로 담아낸 이야기들은 사소한 구석구석까지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한 단계 성숙한 두 배우의 연기와 대숲 바람, 산사의 풍경과 바닷가 파도 등 자연의 소리들과 어우러진 서정적인 풍광도 긴 여운을 남긴다.

한편 '봄날은 간다'는 사전기획단계에서부터 한·중·일 3국의 영화사가 공동투자, 제작과 배급을 나눠 맡은 점도 눈길을 끈다. 아시아 영화의 부흥기를 맞아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의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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