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자기세계 형성<박수근 유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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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입으로는 염을 하고 손으로는 갈퀴질을 한다는 말이 있다.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으면 못살게된 세상이니까 그렇게 안될 수도 없는지 모른다. 더구나 요즘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유달리 이러한 꼴이 눈에 띈다. 그래서 예술가도 재주껏 이런 세상을 헤엄쳐 나가려면 속이 다르게 살아가든지 혹은 그렇지 않든 간에 자기 소외 아니면 자기 상실과 같은 심한 배반관념에 빠지기 일쑤다
내가 아는 박수근은 이 같은 변두리에서 조용히 그리고 남에게 힘이 겹지 않게, 그리고 그렇다고 대단한 성취도 자세도 취해 보이지 않은 채 일하고 있었다.
지난 5월 박수근이 갔을 때(향년 51세)맨 먼저 화단에서 말이 된 것은 그의 유작이 얼마나 되느냐는 말이었다. 그리고는 80여 점의 「그림」이 남았다는 말에 모두들 의아스레 하고「상상 밖으로 유작의 수가 많군」했던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하나의「에코르(화파)」, 어떤「이즘(주의)」하고 따지고들 있을 때 박 화백은 다만 그림에의 정진과 애정으로, 비록 그것이 서양화이건 동양화이건 또 추상이든 구상이든 한눈을 팔 겨를 없이 오직 영적인 자기 세계를 형성하면서 살아갔던 것이다. 예술은 의식주와 같은 상식적인 사회현상과 함께 논할 바 아니다. 그러나 박 화백의 예술은 그의 생활과 작품생산을 통하여- 곧 기본적 사회현상을 통하여 예술이라고 하는 고차적 조화작용을 성취한 한국적 작가의 하나의 이상상인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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