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쾌감 '분노의 질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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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언젠가 여행과 북소리 간의 상관관계를 설명한바 있다.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욕구가 샘솟는다고 말이다. 자동차 배기음과 청춘의 관계가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우렁차면서 혈관을 자극하는 듯한 자동차 소리는 곧 청춘의 에너지와 통하는 바가 있을 테니까. 어디론가 한없이 달리고픈 욕구, 아무것에도 속박당하고 싶지 않은 청춘의 갈망을 자동차는 대신 충족시켜주는 거다. '분노의 질주'는 지극히 할리우드적인 오락영화다. 이 영화는 아주 간단한 몇 개의 키워드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속도계를 뛰어넘는 무제한의 속도, 거침없는 사랑, 그리고 친구들의 굳건한 신의. 뻔한 키워드들이지만 영화엔 결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재미가 녹아있다.

저돌적인 젊은이들의 자동차 경주 장면으로는 영화 '이유없는 반항'이 제일 유명할 것 같다. 청춘스타 제임스 딘의 매력을 응축하고 있는 영화였다. '분노의 질주'엔 엇비슷하게 자동차 경주에 정신이 팔린 일군의 젊음, 속도에 미친 젊은이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조금 색다른 점이 있다. 영화에서 이야기의 정교함은 무시되고, 그리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다. 때로 이야기의 흐름은 덜컹거리면서 영화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 대신, 영화는 현란한 화면과 쉼없이 쿵쾅거리는 힙합 리듬의 세례로 보는 이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요컨대, '분노의 질주'는 속도에 대한 짜릿한 쾌감을 느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별도리없이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영화다.

트럭을 전문적으로 급습하는 폭주족 일당이 생기자 경찰과 FBI는 브라이언을 폭주족으로 위장, 잠입시킨다. 폭주족의 대부격인 토레토에게 접근하는 도중에 브라이언은 그의 동생 미아와 알게 된다. 미아와 브라이언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경찰들에게 쫒기던 토레토를 구해준 탓에 브라이언은 그의 신임을 얻고, 미아와 공식적인 커플로 인정받는다. 한편, 브라이언은 폭주족 조니를 범인으로 의심하지만 경찰에선 토레토에게 혐의가 있다고 여긴다.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기 위해 준비하던 토레토는 조니와 서로 대판 싸움을 벌인다.

'분노의 질주'에서 인상적인 것은 배우들 연기보다 자동차들이다. 수프라와 스카이라인, 혼다 등 멋진 차들의 모습을 원없이 감상할수 있는 거다. 영화에서 차량들은 여러 가지 형태로 개조되어 등장하는데, 개조한 엔진과 차체 등 자동차 매니아들이 혹할만한 구석이 있다. 영화에선 한국계 배우로 잘 알려진 릭윤이 모습을 비추고 있는데 그는 중국계 폭주족 역할을 맡으면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보이고 있다. 영화의 감독은 롭 코헨. 감독 겸 제작자로도 알려진 그는 '드래곤 하트'와 '데이 라잇' 등의 영화에서 연출을 맡은 바 있다. 아무래도 롭 코헨의 성공작을 꼽자면 TV 시리즈인 '마이애미 바이스'를 들수 있는데 롭 코헨 감독은 범죄 액션물에 일가견이 있는 연출자인 것이다.

'분노의 질주'에 대해 감독은 LA 교외에서 벌어지는 실제 폭주족들의 경주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는 폭주족들의 레이싱이 "취미이자 생활양식이고 복합적인 문화"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같은 영향은 스크린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자동차에 열광하고, 기성세대들에게 반감을 느끼는 청춘의 모습을 살려내고 있으므로. 영화는 청춘물과 액션영화, 그리고 버디영화 등의 장르들을 차례로 통과하고 있는데 후반으로 가면서 '분노의 질주'는 홍콩 시절 오우삼 감독의 영화에서 영향받은 흔적을 드러낸다. 브라이언과 토레토는 서로를 의심하고 적대시하는 관계가 되지만, 끝내 상대방과의 형제적 우애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알수 있듯, '분노의 질주'는 철저한 남성영화다. 남자들의 우정과 경쟁을 장르영화의 틀을 빌어 그려내고 있는 거다.

영화에서 토레토는 이런 멋진 대사를 남긴다. "인생? 돈? 난 그런거 상관없어.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순간에 난 원없이 자유로울수 있으니까" '분노의 질주'는 영화 상영시간 동안 부담없이 즐길수 있는, 신나는 장르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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