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콕 감독의 '마니'외 주말의 TV 일요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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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영화]

시청자들은 이번 일요일에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를 두 편이나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났다.

지난 주 방영한 ‘새’에 비해 ‘마니’‘나는 고백한다’는 기꺼이 그의 대표작이라 꼽기에 좀 달리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어느 하나 손쉽게 내칠 수 없는 것처럼,‘현대의 세익스피어’ 히치콕의 작품은 차선작이라고 해서 대표작에 손색이 없음은 물론이다.

'마니' (KBS1 밤 11시20분)
'마니' (1964년) 는 전작 '새' 에서의 티피 헤드런 연기에 반한 히치콕이 그녀를 다시 기용한 영화. 특히 007의 사나이 숀 코네리를 그녀의 상대역으로 기용한 점이 이색적이다.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마니는 어울리지 않게도 도벽(盜癖) 이 있다. 회사에 취직해서 금고를 털고는 이름을 바꾼 채 다른 회사로 옮겨 같은 식의 절도를 저지른다.

젊은 사업가 마틴은 자기 회사에 취직한 마니가 금고를 터는 장면을 목격했지만 이를 덮어주고 나중엔 결혼까지 한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도벽에서 손을 못 떼자 마틴은 그녀의 과거를 추적해 다섯 살때 그녀에게 굉장한 사건이 있었음을 밝히게 된다.

한 여성의 이상행동의 근원에 어릴 적 당한 정신적 외상(外傷) 이 자리잡고 있다는 결론을 두고 개봉 당시 비판적인 평가가 따랐다. 잠재의식-이상행동을 직접 연관시키는 방식이 평면적이라는 것.

히치콕도 "영화가 한 세 시간은 됐어야 했다" 며 스토리에 여유가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마니' 를 성적 페티시즘에 관한 영화로 봐주길 바랬다. 서양인이 동양인이나 흑인여성에게 끌리는 것 같은, 남성에게 잠재된 이상 욕망의 한 형태를 다뤘다는 거다.

또 '왕자와 거지 소녀' 이야기에서처럼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남성이 느끼는 '자기파괴에의 유혹' '사랑을 위한 타락' 이라는 관점에서 뜯어보는 것도 한 방식이다.

원제 Marnie.★★★★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MBC 밤 12시25분)
이문열의 베스트셀러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이씨 스스로 자신의 대표작으로 내세우길 꺼릴 정도로 상투적이고 진부한 통속 소설을 역시 대중적인 색깔로 영화화했다.

작은 읍에서 유일하게 일류대 법대에 진학해 입신출세를 꿈꾸는 임형빈(손창민) 과 자기 욕망에 솔직하고 허영기가 있는 서윤주(강수연) 의 편집적인 사랑과 그 비극적 결말이 멜러적 감성을 자극한다.

1990년 대종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장길수 감독) .여우주연상 등 7개 부문을 수상했다. ★★★

'나는 고백한다'(EBS 오후 2시) =
"이 영화는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 며 히치콕이 뒷날 불만스러워 했던 작품. 영화에 유머가 없고, 제작사 요구로 앤 백스터처럼 자신이 원치 않았던 캐스팅이 있었기 때문.

그러나 갈등에 빠진 가톨릭 사제의 불안을 빼어난 눈빛 연기로 소화해 낸 몽고메리 클리프트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이런 단점은 상쇄된다.

변호사를 죽인 범인이 신부에게 범행을 고해한다. 그러나 살해된 범인이 평소 신부에게 모종의 사건으로 협박을 일삼았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신부 자신이 범인으로 몰린다. 자신의 목숨과 고해를 발설할 수 없는 종교적 의무 사이에서 신부의 고민은 증폭된다.

원제 I Confess. ★★★☆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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