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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없고 편파적|봉사할줄 알아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신문은 흔히들 사회의 공기라고 말한다. 사회의 공기란 사회의 이익을 도모해 주는 공공적 기물이라는 뜻으로 해석될 줄로 안다. 사회의 이익은 국민대중의 이익을 말할 터이니 대중이 보다 잘살기 위한 대변자의 역할을 맡아야 된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신문들도 이러한 역할을 맡아 왔다고 자부할 것이며 공식적으로는 모두 사회의 공기임을 표방하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신문들이 공정한 사회의 이기로서 그 본연의 과업을 수행해 왔는지는 한번 검토해 볼만하다.
첫째로, 우리나라의 신문이 풍겨주는 인상에는 이상이 보이지 않는다. 선진국가와는 달리 우리나라에선 신문의 계몽성내지 지도성이 일차적 의의를 가져야 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국민을 어떠한 방향으로 끌고 가야한다는 사명감이 뚜렷한 전망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같은 사실의 보도에도 특정 목표에로의 방향감각의 유무여하로 취급이 달라질 것이다. 사실의 이상이란 길잡이가 없으면 사실의 횡포가 자행되는 법이다. 우리의 신문에 있어선 너무나 사실이 확대취급 됨으로써 국민에게 도리어 어떤 착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염려되는 바 있다.
둘째로, 우리나라 신문들은 파당의식이 지나치게 강한 느낌을 준다.
대체로 사람들이 신문을 평가하는데 있어 여당지냐 야당지냐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모두색채가 뚜렷하다. 설사 신문사가 특정정당을 지지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느 정책의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어야지 결코 특정집단을 불신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 반박이지 감정적 대적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신문들은 왕왕 이 절도를 벗어나는 일이 많았다. 가능하다면 경영주와 신문편집과는 분리되어야 하고 논쟁은 사설에서 취급하고 사건기사에서 만은 정치성이 배제되는 것을 바라고 싶다.
셋째로, 우리나라의 신문들은 지나치게 상품화하려 하는 것 같다. 신문이 상품화 하려면 「센세이셔널리즘」으로 장식되어야 한다. 「센세이셔널리즘」을 발휘하다 보면 선한 시민까지도 매장하는 수가 있다. 인권을 존중할 것을 잊어 버리고 비밀의「베일」을 벗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문을 팔기 위해 귀중한 인간 하나를 희생시키는 잔인성은 인도주의적 시야에서 재삼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하나의 사건이 있었을 때 공공연히 학교의 이름을 내걸거나 가족배경을 지나치게 노출케 하거나 한다면 사건당사자 이외의 선량한 제삼자까지도 희생시키는 일이 있다. 하나의 소망을 덧붙인다면 되도록 선행자의 배경을 확대 취급하도록 권장하고 싶으며 악행자는 그 범위를 가능한 한 좁혀야 할 것이다.
넷째로, 우리나라의 신문들은 권선징악의 시범적 통제를 소홀히 하고 있는 감이 있다. 악을 너무나 세세히 다루는 가운데 그 악을 응징하기는 커녕 오히려 악의 방법을 유포하는 일을 도맡게 된다. 이것은 물론 뜻하지 않은 결과이겠지만 적어도「저널리즘」종사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효과쯤은 투시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우리나라의 신문들은 민의의 반영에 좀더 과학적이어야 한다. 신문에 등장되는 인물을 보면 그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기 보다도 신문인이 좋아하는 인물로 채워지는 경향이 눈에 띈다. 「앙케트」같은 것을 보면 이 사실은 즉시로 눈에 띈다. 그러니 그것은 국민의 것이 아니라 신문인의 견해이기 쉬워진다. 따라서 인물선정도 표본추출의 원칙을 따라야할 것이며 엄밀한 과학적 정당성을 항상 유지토록 주력해야 할 것이다.
기타 우리가 신문에 요구하고 싶은 말은 많다. 신문사 내부에서 하층 기자들의 자율성이 박탈당하고 있다는 불평에도 경영자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고 같은 신문인끼리는 상호간의 흠을 너무나 감싸준다는 묵계도 깨쳐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자들의 부패를 한탄하는 소리도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닐는지 모르지만 신문을 진실로 우리사회를 위한 것으로 만들려면 차라리 내부적 암의 제거작업이 선결과제일 것 같기도 하다.
요컨대 좋은 신문이란 우리나라의 현실에선 국민과 더불어 호흡하면서도 국민적 수준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하는, 말하자면 국민과 거리를 가까이 하면서도 국민보다 한 걸음 앞선 자세를 취할 것을 언제나 잊지 않는 신문이어야 할 것이고 나아가서 국민을 저버리지 않고 사회에 봉사할 줄 아는 신문이어야 한다. <이대조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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