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광주·울산…광역시서도 대형 산부인과 줄줄이 문 닫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한국의 아이 울음소리가 잦아들며 경고등이 켜진 곳이 또 있다. 산모와 아이로 북적여야 할 산부인과다. 지방 곳곳에는 문을 닫는 대형 산부인과가 늘고 있다.

광주 지역에서 25년간 분만을 책임져왔던 문화여성병원은 지난달 30일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았다. 산부인과 전문의 5명을 포함해 전문의 8명이 있던 지역 대표 산부인과였다. 같은 달 1일에는 울산 남구에 위치한 산부인과 프라우메디병원이 무기 휴원에 들어갔다. 지난해 울산에서 태어난 전체 신생아의 약 37%가 이 병원에서 태어날 만큼 규모가 있는 병원이었지만 의료인력 수급의 어려움이 컸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4일 통계청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의료기관 수는 2020년 517곳에서 2022년 470곳으로 약 9% 감소했다. 10년 전인 2012년(739곳)과 비교하면 36.4%(269곳) 줄었다. 산부인과가 있지만 분만실이 없는 시·군·구는 지난해 12월 기준 50곳이다. 이 지역 임산부는 출산을 위해 ‘원정’을 가야 한다.

관련기사

분만 전문의사를 구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다. 연도별 신규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 현황을 보면 2020년 134명에서 2022년 102명으로 감소했다. 이마저도 분만을 하는 산과보다는 암이나 내분비질환 등 부인과를 선택하는 이가 많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의료계에선 의료인력이 산과를 기피하는 주요 원인으로 심각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붕괴를 먼저 꼽았다. 분만의 특성상 아이가 언제 나올지 몰라 응급 상황이 빈번한데다 최근엔 의료 인력 감소로 1인당 당직 횟수가 더 잦아지고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산모들이 여성 전문의 진료를 선호하면서 신규 남자 전문의 수가 2007년 91명에서 2023년 7명으로 90% 이상 급감한 점도 문제다. 산부인과 전문의 인력 풀을 여성에서만 찾아야 하는 ‘반쪽’ 공급 상황에 놓인 셈이다.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빅5 병원조차 50~60대 교수 3~4명이 돌아가며 24시간 온콜(on-call) 대기를 할 정도인데 어떤 젊은 의사가 산과에 들어오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당직을 꺼리고 응급상황이 많은 분만실 근무를 선호하지 않는 여자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며 “의료 취약지역에 배치할 공중보건의사 등을 감안하면 남자 산부인과 인력이 더 늘어나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재민 기자

신재민 기자

설현주 강동경희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차 전공의·전임의 47%가 ‘전문의 취득 및 전임의 수련 이후 분만을 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 중 79%는 ‘분만 관련 의료사고 우려 및 발생에 대한 걱정’ 때문이라고 답했다. 박중신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은 “불가항력적 분만 의료사고에 대한 소송 제기 우려도 산과를 기피하는 원인”이라며 “의사 개인에 대한 소송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가 부담하는 보상 비용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출생아 수 감소로 산부인과 수요가 줄면서 의료 공백이 발생, 다시 저출생이 가속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수영 성균관의대 산부인과 교수는 “분만 인프라 붕괴가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까지 오고 있다. 만혼으로 고위험 산모는 점점 늘어나 대응이 절실하다”며 “수가 개선 등 정부의 적극적인 유인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