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772)파병동의안 국회통과-제79화 육사졸업생들(225)

    65년 1월18일 국회는 외무·국방위원회 연석회의를 열어 2차 월남파병안에 대한 심의에 착수했다. 이미 부대편성을 끝내놓고 실무대표단을 1월8일 사이공에 파견한 정부로서는 파병동의

    중앙일보

    1983.07.25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223)장창국|제2차 월남파병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지도단이 파월된지 3개월여가 지난 65년1월8일, 도하 각신문들은 『월남에 비전투부대 2천명 파병』 이라는 시꺼먼 표제를 붙인 호외를 발행했다. 새해 벽두부터

    중앙일보

    1983.07.22 00:00

  • (3768) - 제79화 육사졸업생들(22)「따이한 박시」

    월남에서 「인술의 우정」을 심기 시작한 「따이한 박시」들은 개원 3개월여만에 남국에서 첫 크리스머스를 맞았다. 화이트 크리스머스대신 땀이 죽죽 흐르는 크리스머스였다. 64년 크리스

    중앙일보

    1983.07.20 00:00

  • (3768) 제79화 육사졸업생들(220)이동외과병원 개원

    한국군 이동외과병원 (원장 이형수중령) 이 붕타우에 배치되어 있을 당시만해도 월남의 전세는 전면적의 92%를 베트콩이 장악했다는 말이 사이공정가에서 떠들정도로 사면초가였다. 이러한

    중앙일보

    1983.07.19 00:00

  • (3766) 제79화 육사졸업생들(219)

    64년8윌24일 육본광장에서는 건국이래 첫 해외파견군인 주월한국 군사원조단 (ROKMA GV) 의 결단식겸 환송식이 베풀어졌다. 비전투요원들이지만 창동에서 받은 고된훈련 때문에 태

    중앙일보

    1983.07.18 00:00

  • (3765)-제79화 육사졸업생들(218)군사실무약정

    군부대가 주둔할 장소를 물색하는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개인이 살 집터를 장만하는데도 풍수지리까지 동원하는등 쉽지않은데 하물며 군주둔지를 선정하는데는 여러가지 고려해야할 점

    중앙일보

    1983.07.16 00:00

  • (3763)-제79화 육사졸업생들(216)

    박정희대통령(당시최고회의의장)이 63년8월 진해별장에서 각군 참모총장에게 미국이 한국군의 파병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고말한것은 9개월후에 그대로 적중되었다. 64년5월9일 미국정부

    중앙일보

    1983.07.14 00:00

  • (3762)제79화 육사졸업생들(215)월남파병의 배경

    10기생들이 월남에서 용맹을 떨친 이야기에 앞서 우리나라가 월남에 파병을 하게된 배경과 그리고 당시 한·미·월 세나라 사이의 관계등을 살펴보고 넘어갈까한다. 왜냐하면 월남파병이 우

    중앙일보

    1983.07.13 00:00

  • (3761)/제79화 육사졸업생들(214)/월남파병

    65년부터 시작된 월남파병 기간중월남전에 참전한 10기생은 무려 44명이나 되었다. 그것도 주로 연대장을 위시해 주월사 일반참모,야사 맹호 백마사단참모장,비둘기부대 참모장등 10기

    중앙일보

    1983.07.12 00:00

  • (3760)제79화 육사졸업생들(213)10기생과 5·16|장창국

    10기생들은 자신들을 가리켜 「정치와 관계없는 기」, 「정치를 모르는군인」이라고 말한다. 5·16혁명 당시 육사 8기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기생의 일부 장교가 직접·간접으로 혁명에

    중앙일보

    1983.07.11 00:00

  • (3759)-제79화 육사졸업생들(212)

    미보병학교 초등군사반 1차유학생들은 오클랜드에서 남북횡단열차 (일명 풀맨) 를 타고 닷새만인 9월28일 조지아주 포트베님에 도착했다. 풀맨을 타고가면서 고추장과 김치맛이 그리워 핫

    중앙일보

    1983.07.09 00:00

  • (211)제79화 육사졸업생들

    중공군의 개입으로 한국전쟁이 현재의 휴전선 부근에서 교착상태에 빠지자 신임 미8군사령관 「밴· 플리트」대장은 한국군의 증강을 구상, 우선 중견장교들의 미국유학을 실현시켰다. 군인들

    중앙일보

    1983.07.08 00:00

  • (3757)-제79화 육사졸업생들|생도1기 진급

    50년7월10일 대전에서 육군 소위로 임관된 생도1기생들은 5개월20일만인 51년1월1일자로 모두 중위로 진급했다. 워낙 우수했던 생도1기들은 임관후 신병훈련소 종합학교 진해육사등

    중앙일보

    1983.07.07 00:00

  • (3755) 제79화 육사졸업생들(208)-거제도 「9.17 폭동 」

    생도1기생 3명이 거제도포로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것을 계기로 잠깐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었었던 중요한 사건 몇가지를 이야기하고 넘어가고자한다. 51년4월 친공포로수용소 국기게양대

    중앙일보

    1983.07.05 00:00

  • (3753)제79화 육사졸업생들(206)|포로수용서의 해후

    인생을 살다 보면 「우연」과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다. 그 「우연」은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격스러울 때도 있다. 포로수용소에서 사관학교 동기생 3명이 만난 이야기

    중앙일보

    1983.07.02 00:00

  • (3751)살아있는 전사-제79화 육사졸업생들(204)

    만3년에 걸친 한국전쟁은 보는 이의 친각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나겠지만 북괴가 휴전선을 넘어와 아군이 대전까지 후퇴할 때까지를 서전기로 본다면 생도1기생들이 임관되고 육군본부가 대구

    중앙일보

    1983.06.30 00:00

  • (3750) 제79화 육사졸업생들(203) 동래 육군종합학교

    대전에서 생도1기생이 소위로 임관돼 떠난뒤 원동국민학교에 남아 있던 생도2기들은 곧 대구로 철수했다. 이들은 옛날 한국군 6연대 병영에 진주한 미8군사령부의 경계임무를 수행하다가

    중앙일보

    1983.06.29 00:00

  • 제79화 육사졸업생들(202)임관후의 생도1기

    악화일로로 치닫던 전세는 7월에 접어들면서 더욱 나빠졌다. 서울이 함락된 다음 아군 2, 5, 7사단과 수도사단이 무너져 한강 이남으로 밀리게 되자 중부전선을 방어하고 있던 아군

    중앙일보

    1983.06.28 00:00

  • (3748) 제79화 육사졸업생들-생도1기 임관식

    50년7월10일 상오10시. 기다리고 기다리던 생도l기생의 임관식이 육군본부가 임시로 설치된 대전시내 충남도청 광장에서 베풀어졌다. 원동국민학교에서 트럭에 분승한 생도l기생 1백3

    중앙일보

    1983.06.27 00:00

  • (3747) 제79화 육사졸업생들(200) 대전의 송별회

    대전 원동국민학교에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던 생도들은 7월6일 아침식사시간에 생도1기의 임관식이 7월10일에 거행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7월9일밤 생도1기와 생도2기생이 석별의

    중앙일보

    1983.06.25 00:00

  • (3746) 제79화 육사졸업생들-육사공격

    유격대의 창동 습격후 정보원들을 통해 수집한 첩보에 따르면 적은 창동 수송대를 폐쇄했다는 것이었다. 대단한 전과는 아니었지만 유격대원들은 일시나마 적에 충격을 주었고 전력에 차질을

    중앙일보

    1983.06.24 00:00

  • (3745) 제79화 육사졸업생들(98)-퇴계원보급소 기습

    보급소기습대의 조편성은 박인기·김봉교·한효준생도와 2기생 1명, 사병3명이 주력조가 되고 지원조는 기관총을 잘 다루는 박금천생도를 사수로 지난번 현장 정찰을 맡았던 이장관생도가 부

    중앙일보

    1983.06.23 00:00

  • (3741) (194)정착국|불타는 육사

    최정훈·권영길·양한근생도에 이어 확인된 전사자수는 만하룻동안에 무려 27명이나 됐다. 경찰대대의 진지에 중기관총을 메고 지원나갔던 한경서생도와 조경래생도는 임무를 끝내고 생도대 진

    중앙일보

    1983.06.18 00:00

  • (3740)생도들의 첫 접전-제79화 육사졸업생들(193)

    생도들을 태운 트럭이 하오4시께 소나기속을 뚫고 육사정문을 떠났다는 보고를 받고 나는 한동안 허탈상태에 빠졌었다. 생도1기생은 그런대로 1년여간 훈련을 받아 화기조작에도 능숙했지만

    중앙일보

    1983.06.1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