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6) 제79화 육사졸업생들(2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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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4년8윌24일 육본광장에서는 건국이래 첫 해외파견군인 주월한국 군사원조단 (ROKMA
GV) 의 결단식겸 환송식이 베풀어졌다.
비전투요원들이지만 창동에서 받은 고된훈련 때문에 태권도교관들은 물론 군의관이나 간호장교·위생병들의 얼굴은 새까맣게 타있었다.
창동에서 군사원조단을 훈련시켰던 육본특전과 교관들은 어려운 훈련과정에서 군의관들이 불만을 표시하면 으례『고통과 땀을 많이 흘릴수록 월남에서 피를 덜 흘리게 된다』면서 특수전 요원들에게 실시하는 훈련과 다름없는 고된훈련을 시켰다고한다.
정일권국무총리·김악은국방장관·「하우즈」유엔군사령관· 민기직육군참모총장등 군고위장성들은 환송식전에서 박대통령이 하사한 은팔찌 l개씩을 장병들의 팔목에 끼워주면서 무운장구를 빌었다고 한다.
대통령이 하사한 은팔찌표면에는 .각자의 군번과 성명이 새겨지어 있었고 뒷면에는 대통령의 사인이 들어 있었다. 은제품을 몸에 지니면 액땜을 한다는 속설을 박대통령도 믿고 있었던지 이들에게 특별히 은팔찌를 선물했다.
간단한 환송식이 끝난뒤 장병들은 창동훈련장으로 되돌아가 10여일간 휴식을 취하면서 하루1, 2시간씩 월남의 정치·사회·경제·전황등에 대한 교양교육을 받았다.
장병들이 부산으로 떠나기 하루전인 9월2일 민기직참모총장은 이동외과병원장겸 원조단 단장인 이형수중령과 태권도지도단 단장 백준기소령을 육군참모총장실로 불러『해외에서 품위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군기를 철저히 잡아라』고 지시한 다음 백소령에게 『군기를 문란시키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태권도 맛을 보여줘라. 죽지않을정도로 두들겨 꼬리표를 붙여 참모총장실로 보내면 내가 책임지겠다』 면서 크게 웃었다고한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동외과병원과 태권도교관들은 l년여 월남근무를 마치고 귀국할때까지 단 1건의 사건·사고도 없었던것으로 기억된다.
9월3일 특별열차를 타고 부산으로내려간 이들은 불안한 월남정정때문에 l주일동안 출발을 연기했다가 9월11일 하오7시 부산 중앙부두에 정박중이던 해군 제2전단소속 LST8l5함(일명 북주함)에 탑승, 일로 월남으로 향했다.
남지나해의 파도를 헤치며 l0일간의 긴 항해끝에 사이공항에 도착했다. 북주함이 정박하자 부두에 환영나왔던 월남군악대가 군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군가가 일본해군의「군함마치」여서 큰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들은 그만큼 한국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신상철대사를 비롯,「웨스트모얼랜드」,주월미군사령관,「구엔·칸」월남수상등은 장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꽃다발을 한아름씩 안겨주었다.
태권도지도단이 온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환영 따이한 태권도』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나온 월남인들도 보였다.
이들은 59년도 한국군 태권도 연무시범단이 월남을 순회할때 등너머로 기본동작을 배웠던 월남청년들이었다고 한다.
환영식이 끝난후 태권도 지도단은 달라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와 사이공근교 투둑 보병학교, 나트랑의 해군사관학교에 각각 3명씩 배치됐고 이동외과병원 의료진은 붕타우로 떠났다. 이동외과병원이 인수한 월남군 3군단 야전병원은 프랑스통치때 프랑스군이 병사로 쓰던 건물이었으나 그동안 월남군이 관리를 잘못해 구석구석에 쓰레기와 환자들의 폐기물이 쌓여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고한다.
청소를 하려고해도 도구가 없어 이형수단장은 인근 미육군 제765비행수송대대로 찾아가 청소도구 지원을 요청했다고한다.「딜러스」라는 미군수송대장은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한트럭분의 청소도구를 이중령에게 지원해줬다. 우리 의료진은 병원건물청소를 보름동안이나했다고하니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쌓였던가를 가히 짐작할 수가 있겠다.
이동외과병원은 우선 진료반을 편성했다. 일반외과에 7명의 군의관을 배치한후 일반내과에 2명, 신경외과·정형외과·안과·이비인후과·방사선과·임상병리과에 각각 1명씩, 그리고 마취과와 치과에 2명씩의 군의관을 배치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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