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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8) - 제79화 육사졸업생들(22)「따이한 박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월남에서 「인술의 우정」을 심기 시작한 「따이한 박시」들은 개원 3개월여만에 남국에서 첫 크리스머스를 맞았다. 화이트 크리스머스대신 땀이 죽죽 흐르는 크리스머스였다. 64년 크리스머스 이브날 이동외과병원에 50대 월남인이 병원장을 만나겠다며 찾아왔다.
이 월남인은 원장 이형수중령을 만나 『곧 베트콩이 대공세를 취할 것으로 보이니 한국인들은 외출을 삼가라』고 말했다.
정보를 제공한 월남인은 지난번 한국의료진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생명을 건졌던 베트콩 장교의 아버지였다고 한다.
베트콩 장교인 아들이 직접 찾아올수가 없어 자신이 대신 왔다고 밝힌 이 월남인은 자기 손자의 이름을 「따이한」이라고 작명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고 총총히 사라졌다.
이형수병원장은 이 1급정보를 이웃 미군 항공수송대대장에게 급히 알려주었다. 이에따라 이동외과병원과 미군수송부대는 크리스머스와 연말연시 특별경계에 들어가 밤이면 부대주변에 서치라이트를 대낮처럼 밝혀놓고 상엄한 경비를 폈다고 한다. 결국 베트콩은 사전정보 누설을 눈치채고 공격을 포기, 그해 연말은 무사히 지나갔다.
이국땅에서 새해를 맞은 이동외과병원장병들은 더욱 정열적으로 봉사했다. 출혈이 심한 부상병이 후송돼 오면 장병들이 직접 팔을 걷어 올려 헌혈, 부상병들의 생명을 건져주기도 했다.
그러나 이웃 월남군 야전병원에서는 자기 병사들이 피가 모자라 사경을 헤매는데도 누구 하나 수혈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더욱 월남군 군의관들은 위급한 환자가 들어와도 낮12시∼하오2시까지의 시에스터타임(낮잠자는 시간)에는 진료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또 하오5시만 되면 당직을 제외한 전원이 퇴근해버려 부상병이 후송해오면 손이 모자라 우리 이동외과병원군의관들이 지원해 주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월남에서는 『언청이는 붕타우로』라는 말이 한동안 유행했다. 우리 이동외과병원이 언청이 아가씨들을 깨끗이 수술해 준다는 소문이 퍼졌기 때문이다. 이 소문이 전국에 퍼져언청이 처녀들이 전쟁의 북새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해 도처에서 붕타우로 몰려 오는 바람에 의료진들은 성형수술까지 해야만 했다.
하루는 월남에서도 알아주는 재벌이자 베트콩에 자금을 제공하는 「현·반·민」「현·반·자」형제가 사이공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리 이동외과병원을 찾아와 만성습진을 치료받고 돌아갔다고 한다.
60대가 넘은 이들 형제는 스위스·프랑스까지 가서 습진치료를 받았으나 효험을 보지 못했다가 이동외과병원에서 한달정도 치료끝에 깨끗이 습진이 가시자 병원장 이중령을 사이공 자기별장에 초대해 융숭한 대접을 했다고 한다.
이들 형제는 사이공 시내에 「에덴시네마」「랙스」라는 개봉관을 7개나 갖고 있으면서 월남정부와 베트콩에 2중으로 세금을 내면서 돈을 모은 사람들이다.
이중령은 그들로부터 사이공에 있는 베트콩 아지트를 구경시켜 주겠다는 제의까지 받았으나 사양했다는 것이다.
이동외과병원 장병들은 64년 연말 봉급 송금이 늦어져 한때 고통을 당한일이 있었다.
우리 정부에서는 월남외환은행으로 봉급을 송금했는데 월남은행에서 달러를 지급하지 못하겠다고 버텨 다시송금이 본국으로 되돌아 갔던 것이다.
당시 월남에는 달러시세가 하룻밤새 몇십 피애스터(월남화페)씩 치솟았기 때문에 우리 장병들은 달러로 봉급을 받는 것이 유리한데도 월남은행측은 피애스터로 환전해서 찾아가도록 종용했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해외에서 근무하는 봉급생활자는 환율때문에 웃고 우는 일이 많은 것이다. 그래서 현지 사정에 누구보다도 정통했던 이대용무관이 장병들의 봉급을 서울로 되돌려 보내면서 다시 주월미군사병부를 통해 송금해 줄것을 요청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무관은 본국에서 송금이 다시 도착할 때까지 이동외과병원 장병들에게 자기 구좌를 덜어 (5백달러로 기억됨) 급한대로 우선 담배 한트럭분을 사서 보내주었다고 한다.
64년 9월에 파월되었던 1차 이동외과병원 의료진과 장병들은 65년 10월20일 3백99일간의 월남근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했다.
현재 공산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붕타우 시민들은 지금도 「따이한 박시」의 따스한 손길을 잊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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