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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드뉴스] 조선인 전범 홍사익의 ‘이중생활’

    [카드뉴스] 조선인 전범 홍사익의 ‘이중생활’

                  조선인 전범 홍사익의 ‘이중생활’ “나는 조선인 홍사익이다.  지금부터 천황폐하의 명령에 의해 지휘권을 행사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출신 평민으로 유일하

    중앙일보

    2017.08.09 09:15

  • [직격 인터뷰] 홍일식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

    [직격 인터뷰] 홍일식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

    홍일식 한국인문사회연구원 이사장은 젊은 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했다. “젊은 세대에게 역사의식을 잘 가르치면 대한민국이 유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 중심부의 리더가 될 수 있

    중앙일보

    2014.12.24 00:12

  • [그때 오늘] 국민국가의 터 잡기, ‘조선소년군’ 창설한 조철호

    [그때 오늘] 국민국가의 터 잡기, ‘조선소년군’ 창설한 조철호

    1921년 발족해 3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조선소년군(보이 스카우트)을 만든 조철호(1890~1941). 그는 단원들에게 항상 “너희들은 이 민족의 화랑이다. 민족을 일깨우

    중앙일보

    2009.10.05 00:30

  • [최우석칼럼] 휴가철 독서여행 3제

    [최우석칼럼] 휴가철 독서여행 3제

    아침 뉴스를 보면 자주 국방을 에워싼 논란이 여전히 뜨겁고 여당 대표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인들을 만난다는 소식이 실려 있다. 또 높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낙마하면서 억울하다

    중앙일보

    2006.08.13 20:42

  • [분수대] 친일파 홍사익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1946년 9월 26일 필리핀 교도소 교수대. 일본제

    중앙일보

    2004.03.03 18:38

  • [분수대] 창씨개명

    어머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50여년 만에 국민학교 반창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에이코가 우리말로 뭐냐?" 고 물었다. "아마 영자(英子)일 겁니다. " 에

    중앙일보

    2001.08.06 00:00

  • [명단]정년·명예퇴임 교원 훈·포장자 (1)

    [무궁화장] 前부산외대 金東璿^고려대 李準範^이화여대 尹厚淨^前연세대 宋재 [모란장] 부산구남초 許銶^대구경북고 吳東熙^광주대성초 徐愛順^대전동문초 邊喆柱^강원남산초 許弼烈^충남부

    중앙일보

    1997.08.22 00:00

  • 초가을 무대 "풍성"-서울연극제 25일 개막

    한국연극협회가 주최하고 문예진흥원이 후원하는 이 연극제는 한국연극계의 가장 큰 행사·올해부터는 한국연극협회가 문예진흥원으로부터 연극제 주최를 완전 이관받아 진행하게 되는데 참가 대

    중앙일보

    1989.08.22 00:00

  • (37) 국내진정작전|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

    l940년대로 들어서면서 항일운동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몇몇 독립단체는 항쟁을 계속했고 종전무렵엔 군사진공작전을 시도했다. 군사력에 의한 국내진공은 일본의 패전이 뚜렷해진 마당

    중앙일보

    1984.01.2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3603》|제79화 육사졸업생들(56) 장창국 | 가족군인

    얘기가 좀 빗나가지만 「가족군인」얘기릍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군에는 한 집안에서 여러명의 장군·장교가 나온 무인가가 여럿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응준장군의 경우다. 일본육

    중앙일보

    1983.01.05 00:00

  • 개화기 희비교차.

    비록 수에서는 당홍과 비교가 안될만큼 적으면서도 토홍은 당홍에 지지 않는 저력이다. 토홍은 시조 선행의 9대 내지 12태손에서 문희공·정효공·삼의공·주부공·대호군공의 5파가 갈렸다

    중앙일보

    1982.12.25 00:00

  • (3560)-제79화 육사졸업생들 (13)

    원래 조선인은 만주군에서는 장교가 될 수 없었다. 장교 자격 규정을 일계·몽계·만계(만주거주중국인)로 명문화해 놓았던 것이다. 그러나 1936년 홍은익장군이 관동군사령부에 전속와서

    중앙일보

    1982.11.10 00:00

  • (11)-만주군관학교 한인생도

    강문봉장군이 44년 일본육사본과(59기) 에 편입되어 나와 동기가 되면서 들려준 얘기지만 그가 군인이 된 것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군관학교에서 수석졸업하는 광경을 뉴스영화에서

    중앙일보

    1982.11.08 00:00

  • (5)한국무관학교|

    한일합방 한해전인 1909년 우리나라는 군사적으로 또 한차례의 큰변혁을 겪었다. 군대해산 후에도 존속해오던 한국무관학교가 일제에 의해 폐교된 것이다. 신식군대의 간부를 양성키 위해

    중앙일보

    1982.11.01 00:00

  • 육군 사관학교

    지금부터 꼭 30년 전 1946년 5월 1일, 태릉의 옛 일본군 지원병 훈련소 자리에서는 기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80명의 장정들이 일본 군복을 입고 장화를 신고 푸른 띠를

    중앙일보

    1976.04.30 00:00

  • (84)창군전후(3)|이경석(제자는 필자)

    나는 스마트라 섬에서 해방을 맞았다. 제25군이 주둔한 이 섬에서 철도부대에 소속해 있었다. 우리가 패전을 알리는 일본천황의 방송을 들은 것은 8월16일이었다. 제25군에서는 전도

    중앙일보

    1971.02.17 00:00

  • (34) 제6화-창군전후(1)이경석.

    구한말 군대 해산령이 내린 것은 1907년7월. 이때 한국무관학교에는 지청천·이응준·김석원 등 40여명이 재학하고있었다. 군대 해산령에 따라 무관학교의 문도 닫혀져 재학생 40여

    중앙일보

    1971.02.15 00:00

  • (94)김을한|해방에서 환국까지

    그같이「지미·김」(길준) 이나 홍사익 중장의 불행한 최후는 영친왕에게 크나큰 타격을 주었거니와 그 보다도 더욱 영친왕을 놀라게 하고 또 슬프게 한 것은 상해 임시정부가 와해되고 그

    중앙일보

    1970.08.25 00:00

  • (93)김을한|해방에서 환국까지

    홍사익 중장은 해방되기 1년 전인 1944년 3월9일에「필리핀」으로 가서 그 다음해 8·15까지 포로수용소장으로 있었는데 그의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들어맞아서 전쟁이 끝나자마자 그

    중앙일보

    1970.08.24 00:00

  • (92)김을한|해방에서 환국까지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죽은「지미·김」(길준)과 그의 부인 그리고 어린 아들의 세 유해는 동경에 있는 미국인 교회에서 영결식을 거행한 후「요꼬하마」(횡빈) 화장 장에서 불살랐다. 그

    중앙일보

    1970.08.22 00:00

  • (9)해방에서 환국까지|김을한

    바로 그 무렵에 나는 볼일이 있어서 동경으로부터 임시수도 부산에 온 일이 있었는데 영친왕에 대한 일반의 인기는 대단한 바가 있었다. 그것은 미지수에 대한(호기심과 자칫하면 바닷속으

    중앙일보

    1970.05.16 00:00

  • (8)해방에서 환국까지

    당시 동경에 있는 연합군최고사령부는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맥아더」원수는 말할 것도 없고 전막료가 대체로 영친왕에 대해서는 상당히 호의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것은 영친왕자신

    중앙일보

    1970.05.15 00:00

  • 홍사익 일군중장 추도식

    【동경=강범석특파원】한국인으로 일본 육군중장까지 지내다가 2차대전 후 연합군에 처형되었던 고 홍사익씨의 추도식이 26일 고인의 옛 동료 1백여 명과 고인의 장남 홍국선씨가 참석한가

    중앙일보

    1967.09.27 00:00

  • 한국인 전범 처형자의 비

    【동경=강범석 특파원】제2차 대전의 전범자로 처형된 한국·대만 출신자 49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위령비가 오는 4월 초순 「교도」시 「히가시야마」 「고다이지」 경내에 세워지게 되

    중앙일보

    1967.02.2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