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희비교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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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비록 수에서는 당홍과 비교가 안될만큼 적으면서도 토홍은 당홍에 지지 않는 저력이다.
토홍은 시조 선행의 9대 내지 12태손에서 문희공·정효공·삼의공·주부공·대호군공의 5파가 갈렸다. 본고장인 남양(경기도화성군)과 서울, 경북예천·영주·봉화, 충남아산·당진등에 주로 산다.
토홍의 영화중의 절정은 중종때 영의경에 오른 언필과 그의 아들 성의 대. 성은 선조때 영의정을 세번 역임하며 명상·청백리의 칭송을 들었는데 부자가 수상을 지낸 드문 기록을 세웠다.
더우기 그의 어머니 여산송씨는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송질의 딸로 아버지와 남편과 아들이 모두 수상인 「세계사상 유일의 복많은 여성」. 몇해전 미국서 간행된 세계유명여류인사속에 한국여성으론 유일하게 올랐다는 종친회의 자랑이다.
광해조의 명신 홍가신, 병자호란 당시 척화3학사의 한사람인 홍익한, 혼천의를 제작한 실학자 홍대용등이 모두 토홍의 근세인물. 현대에 들어선 독립협회의 간부였던 홍정후, 일육사를 26기로 졸업해 한국인으론 최고계급인 중장에까지 올랐다가 2차대전후 필리핀에서 전범으로 처형된 「비극의 장군」 홍사익, 「봉선화」의 작곡가 홍난파(본명 영후), 시인 홍로작 (본명 사용) 등이 있다.
남홍은 현대에 들어 과거의 영화에 비할 때 다소 허전한 느낌이 없지않으나 중앙일보회장이며 전 법무·내무장관을 역임한 홍진기. 전 내무·보사장관 홍성철, 전 문공장관 홍종철. 전 방송공사사장 홍경모, 약학계의 태두인 전 서울약대학장 홍문화, 언론인 홍종인, 4선국회의원이었던 홍창섭. 한국방송 광고공사사장 홍두표(이상 당홍), 몇해전 작고한 전 전경련의장 홍재선. 전 대한변협회장·국정자문위원인 원로 변호사 홍승만, 한국일보발행인 홍유선, 언론인·문학평론가 홍사중(이상 토홍)씨 등이 각계에서 명문 남홍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글=문병호기자 사진=양원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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