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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2)제2장 일본 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

    (3) 북해도는 1년 중 거의 절반을 엄동설한에 묻혀 사는 곳이다. 북위45도6분부터 41도5분 사이를 차지한 이 땅은 우리 나라 함경북도 북단으로부터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의

    중앙일보

    1973.10.16 00:00

  • 사할린 교포의 송환

    3일 동안에 걸쳐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일·소 수뇌 회담의 공동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 성명에서 한국 민의 특별한 관심을 모은 대목은 일·소가 남북 대화를 환영한 사실이라 하겠

    중앙일보

    1973.10.11 00:00

  • (20)|제5화 북해도 한인 위령탑의 엘레지 (1)|제2장 피맺힌 사연들의 흔적

    일본 본주의 최북단 「야쓰노헤」 (청삼현팔호시)를 떠난 국내선 여객기는 단숨에 「쓰가루」 (진경) 해협을 건네 뛰고 한시간만에 「삽보로」 (찰황) 구주 공항에 내려앉았다. 5월

    중앙일보

    1973.10.05 00:00

  • "여러분을 고국으로 데려가겠다" 서울방송 듣고 눈물 흘려

    30여년 동안 단절됐던 사할린 교포들의 생활상이 한겹씩 벗겨지고 있다. 31년 동안의「사할린」억류생활에서 풀려난 홍만길씨(46)가 일본을 경유, 1일 고국 땅을 밟은데 이어 해방

    중앙일보

    1973.07.02 00:00

  • 소적십자 사할린교포 송환에 호의적

    「사할린」억류 한국 교포문제연구소를 설립,「사할린」의 한국인 귀환문제를 돕고 있는 일본인 「와까사」(야협경고·46)씨는 현재송환을 희망하는 사할린의 한국인 수는 6천9백46명 이며

    중앙일보

    1973.06.18 00:00

  • 유형지「사할린」

    「사할린」사람들도 「알자스」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을 걸어왔다. 국적이 몇 번을 바꾸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사할린」이 일본과 「러시아」의 공동 영토가 된 것은 1855년부터였다. 그

    중앙일보

    1973.06.18 00:00

  • 4만 거주, 5천명 귀국희망

    【동경=박동순특파원】2차 대전 중 일본 정부의 「국민 징용령」으로 징용된 한국인은 모두 6백만명으로 이중 탄광이나 군사시설의 노무자로 「사할린」에 거주해 온 한국인은 4만3천여명(

    중앙일보

    1973.06.16 00:00

  • 2차 대전 때 일본에 끌려간 한국인 노무자|이렇게 혹사당했다|상 조사단의 보고에 나타난 그 가공할 참상

    【동경=박동순 특파원】제2차 대전 중징용이란 이름으로 북 해도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당한 한국인 노무자들의 혹사 실태가 일본의「북해도 한국인 강제 연행 진상 조사단」(단장 미기 일

    중앙일보

    1973.05.15 00:00

  • 북해도에 징용된 한국인

    일본의 「북해도 한국인 강제연행조사단」의 조사결과 20만 명의 한국인이 북해도에 강제 연행돼 의식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하고 혹사당하여 「댐」공사의 희생자만도 1천명 이상이 되었다

    중앙일보

    1973.04.25 00:00

  • 2차대전중 북해도에 징용간 한국인 댐 공사중 천여명 사망

    【동경=박동순특파원】제2차 대전 중 북해도에 강제 연행돼 의·식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한 채 혹사당한 끝에「댐」및 교량건설 등에 희생된 한국인 노무자의 비참한 실태가 지난 10일부

    중앙일보

    1973.04.24 00:00

  • 재일 거류민단의 항의

    일본의회는 최근 외국인들의 출입국에 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출입국 관리령 개정안을 심의중이다. 이 법안은 『범법 또는 정치적인 음모에 가담한 것이 밝혀진 외국인의 추방』을

    중앙일보

    1973.04.24 00:00

  • "해방 때 일서 귀국 중 한인노무자

    【동경=박동순특파원】「히로시마」(광도)에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미쓰비시」(삼능) 중공업「히로시마」기계제작소에서 일하던 한국인 징용노무자 4백여명의 의문에 싸인 행방이 28년이 지난

    중앙일보

    1973.04.23 00:00

  • 유황도의 악몽

    세계 지도상에서 유황도는 한 점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동경만에서 동남방으로 한참 내려가면 태평양 한 가운데에 「이오지마」(Iwo Jima)가 있다. 「괌」도와 동경만의 중간쯤이다.

    중앙일보

    1973.03.13 00:00

  • 유황도 격전서 구출되는 한국인 노무자-화보

    태평양 전쟁 말기의 최대 격전지로 1945년 2월 19일부터 3월17일까지 약 한달 동안 미·일 양군에서 4만9천6백 여명의 전사상자를 낸 유황도(이오지마) 전투의 기록영화가 28

    중앙일보

    1973.03.12 00:00

  • 「사할린」 30년의 공백

    해방 전인 43년에 「사할린」에 노무자로 건너갔다 억류 생활 30년만에 일본에 돌아온 홍만길씨는 현재 「사할린」에 살고 있는 4만명의 한국인 중 대부분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하

    중앙일보

    1973.02.05 00:00

  • 개운 찮은 뒷맛…「보너스 PK」|「싱가포르」선수에 한국인 2세

    22일 밤 한국-「크메르」전을 관람한 3만5천의 관중들은「딜론」(인도태생 싱가포르인) 주심의 판정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표정들. 국제심판의 초년병인「딜론」씨는 이날 너무도 민감하

    중앙일보

    1972.09.23 00:00

  • 아물지 않은 「상처」|되살아나는 「일색」|광복 27주…한국 속의 일본

    해방 27년-. 15일은 4반세기를 넘게 맞는 광복절. 이때마다 되새기게 하는 한·일의 이웃사이에는 변화도 적지 않다. 한·일 국교 정상화이래 물밀듯 밀려온 일본상품, 가요의 「붐

    중앙일보

    1972.08.15 00:00

  • (5)-내외 환란의 교포사회

    북해도 땅에 발을 딛게 된 우리들의 역사가 어떤 것이었기에… 일본 군국의 전끌 뒷바라지를 위한 강제징용으로 끌려 가게된 것이 그 첫발. 탄광·철로·「댐」공사·도로공사·군용비행장

    중앙일보

    1972.02.18 00:00

  • (343)|가요계 회면 사(23)|고복수

    처음 일본공연은 태극기사건으로 실패했으나 조선악극단은 그 뒤 연달아 일본에서 공연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일제탄압이 심해 가는 곳마다 슬픔을 겪었다. 41년12월8일 제

    중앙일보

    1971.12.27 00:00

  • (288)제20화 전문학교(16)-김효록

    국민총력연맹이 각 기관에 설치된 이래 각과 각 학년에 매주 1시간씩 일본학이라는 학과가 생겼고 체조시간에는 군사교련을 실시했다. 보전학생은 43년 수원 서호의 준설공사에 근로대로

    중앙일보

    1971.10.23 00:00

  • 『사이공』의 한국인 2세 자매 뱃사공

    【사이공=신상갑 특파원】「사이공」의 가장 화려한 거리「뚜도」가 끝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프랑스」풍의「머제스틱·호텔」에서 길을 건너 조금 가면 유명한 수상 중국요리점「미깡」이 있다

    중앙일보

    1971.10.16 00:00

  • (상)귀환중인 손치규씨 고발수기

    지난 10일 26년 동안의 「사할린」억류에서 풀려 일본으로 송환된 손치규씨(70)가 『망향 26년』의 쓰라린 생활을 수기로 엮어 중앙일보사에 보내왔다. 기다림과 지침의 긴 세월 속

    중앙일보

    1971.07.14 00:00

  • "영감이 돌아온다니 이게 정말입니까" 망부26년 목멘 「소안」

    『영감님이 돌아온다니 이게 정말 생시입니까?』 부산시 초량 6동 장소아할머니(69)는 해방된 45년부터 지금까지 생사의 소식조차 모르던 남편 손치규씨(70)가 10일 「사할린」의

    중앙일보

    1971.07.09 00:00

  • 사할린교포 손씨 귀국길에

    【동경=조동오특파원】「사할린」(화태)에 살던 교포 손취규씨(70·본적 전북고창)가 오랫동안의 진정 끝에 오는 10일 소련선박편으로 「요꼬하마」(횡빈)에 도착한다. 손씨는 일제 때

    중앙일보

    1971.07.0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