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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제2장 일본 속에 맺힌 한인들의 원한
(3) 북해도는 1년 중 거의 절반을 엄동설한에 묻혀 사는 곳이다. 북위45도6분부터 41도5분 사이를 차지한 이 땅은 우리 나라 함경북도 북단으로부터 멀리 만주와 「시베리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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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교포의 송환
3일 동안에 걸쳐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일·소 수뇌 회담의 공동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이 성명에서 한국 민의 특별한 관심을 모은 대목은 일·소가 남북 대화를 환영한 사실이라 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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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제5화 북해도 한인 위령탑의 엘레지 (1)|제2장 피맺힌 사연들의 흔적
일본 본주의 최북단 「야쓰노헤」 (청삼현팔호시)를 떠난 국내선 여객기는 단숨에 「쓰가루」 (진경) 해협을 건네 뛰고 한시간만에 「삽보로」 (찰황) 구주 공항에 내려앉았다.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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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고국으로 데려가겠다" 서울방송 듣고 눈물 흘려
30여년 동안 단절됐던 사할린 교포들의 생활상이 한겹씩 벗겨지고 있다. 31년 동안의「사할린」억류생활에서 풀려난 홍만길씨(46)가 일본을 경유, 1일 고국 땅을 밟은데 이어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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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적십자 사할린교포 송환에 호의적
「사할린」억류 한국 교포문제연구소를 설립,「사할린」의 한국인 귀환문제를 돕고 있는 일본인 「와까사」(야협경고·46)씨는 현재송환을 희망하는 사할린의 한국인 수는 6천9백46명 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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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지「사할린」
「사할린」사람들도 「알자스」만큼이나 기구한 운명을 걸어왔다. 국적이 몇 번을 바꾸었는지 모르는 것이다. 「사할린」이 일본과 「러시아」의 공동 영토가 된 것은 1855년부터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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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거주, 5천명 귀국희망
【동경=박동순특파원】2차 대전 중 일본 정부의 「국민 징용령」으로 징용된 한국인은 모두 6백만명으로 이중 탄광이나 군사시설의 노무자로 「사할린」에 거주해 온 한국인은 4만3천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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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때 일본에 끌려간 한국인 노무자|이렇게 혹사당했다|상 조사단의 보고에 나타난 그 가공할 참상
【동경=박동순 특파원】제2차 대전 중징용이란 이름으로 북 해도에 끌려가 강제 노역을 당한 한국인 노무자들의 혹사 실태가 일본의「북해도 한국인 강제 연행 진상 조사단」(단장 미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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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해도에 징용된 한국인
일본의 「북해도 한국인 강제연행조사단」의 조사결과 20만 명의 한국인이 북해도에 강제 연행돼 의식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하고 혹사당하여 「댐」공사의 희생자만도 1천명 이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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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중 북해도에 징용간 한국인 댐 공사중 천여명 사망
【동경=박동순특파원】제2차 대전 중 북해도에 강제 연행돼 의·식도 제대로 지급 받지 못한 채 혹사당한 끝에「댐」및 교량건설 등에 희생된 한국인 노무자의 비참한 실태가 지난 10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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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거류민단의 항의
일본의회는 최근 외국인들의 출입국에 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출입국 관리령 개정안을 심의중이다. 이 법안은 『범법 또는 정치적인 음모에 가담한 것이 밝혀진 외국인의 추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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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때 일서 귀국 중 한인노무자
【동경=박동순특파원】「히로시마」(광도)에 원폭이 투하되었을 때「미쓰비시」(삼능) 중공업「히로시마」기계제작소에서 일하던 한국인 징용노무자 4백여명의 의문에 싸인 행방이 28년이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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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도의 악몽
세계 지도상에서 유황도는 한 점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동경만에서 동남방으로 한참 내려가면 태평양 한 가운데에 「이오지마」(Iwo Jima)가 있다. 「괌」도와 동경만의 중간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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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황도 격전서 구출되는 한국인 노무자-화보
태평양 전쟁 말기의 최대 격전지로 1945년 2월 19일부터 3월17일까지 약 한달 동안 미·일 양군에서 4만9천6백 여명의 전사상자를 낸 유황도(이오지마) 전투의 기록영화가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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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30년의 공백
해방 전인 43년에 「사할린」에 노무자로 건너갔다 억류 생활 30년만에 일본에 돌아온 홍만길씨는 현재 「사할린」에 살고 있는 4만명의 한국인 중 대부분이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열망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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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 찮은 뒷맛…「보너스 PK」|「싱가포르」선수에 한국인 2세
22일 밤 한국-「크메르」전을 관람한 3만5천의 관중들은「딜론」(인도태생 싱가포르인) 주심의 판정에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표정들. 국제심판의 초년병인「딜론」씨는 이날 너무도 민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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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지 않은 「상처」|되살아나는 「일색」|광복 27주…한국 속의 일본
해방 27년-. 15일은 4반세기를 넘게 맞는 광복절. 이때마다 되새기게 하는 한·일의 이웃사이에는 변화도 적지 않다. 한·일 국교 정상화이래 물밀듯 밀려온 일본상품, 가요의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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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내외 환란의 교포사회
북해도 땅에 발을 딛게 된 우리들의 역사가 어떤 것이었기에… 일본 군국의 전끌 뒷바라지를 위한 강제징용으로 끌려 가게된 것이 그 첫발. 탄광·철로·「댐」공사·도로공사·군용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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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가요계 회면 사(23)|고복수
처음 일본공연은 태극기사건으로 실패했으나 조선악극단은 그 뒤 연달아 일본에서 공연하여 크게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일제탄압이 심해 가는 곳마다 슬픔을 겪었다. 41년12월8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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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제20화 전문학교(16)-김효록
국민총력연맹이 각 기관에 설치된 이래 각과 각 학년에 매주 1시간씩 일본학이라는 학과가 생겼고 체조시간에는 군사교련을 실시했다. 보전학생은 43년 수원 서호의 준설공사에 근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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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의 한국인 2세 자매 뱃사공
【사이공=신상갑 특파원】「사이공」의 가장 화려한 거리「뚜도」가 끝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프랑스」풍의「머제스틱·호텔」에서 길을 건너 조금 가면 유명한 수상 중국요리점「미깡」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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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귀환중인 손치규씨 고발수기
지난 10일 26년 동안의 「사할린」억류에서 풀려 일본으로 송환된 손치규씨(70)가 『망향 26년』의 쓰라린 생활을 수기로 엮어 중앙일보사에 보내왔다. 기다림과 지침의 긴 세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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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돌아온다니 이게 정말입니까" 망부26년 목멘 「소안」
『영감님이 돌아온다니 이게 정말 생시입니까?』 부산시 초량 6동 장소아할머니(69)는 해방된 45년부터 지금까지 생사의 소식조차 모르던 남편 손치규씨(70)가 10일 「사할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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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교포 손씨 귀국길에
【동경=조동오특파원】「사할린」(화태)에 살던 교포 손취규씨(70·본적 전북고창)가 오랫동안의 진정 끝에 오는 10일 소련선박편으로 「요꼬하마」(횡빈)에 도착한다. 손씨는 일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