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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은의 북한탐험]13.송도충절 송도삼절

    개성 거리는 개성답게 정갈했다. 개성은 고대에는 삼국 각축장의 송악군이다가 고려 광종 때에야 개경 (開京) 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된다. 서울을 열었다는 뜻 그대로. 그 뒤

    중앙일보

    1998.11.05 00:00

  • 박팽년 편찬 '설원기'번역서 나와

    "누른 티끌이 맑은 하늘 뒤덮는데/서풍에 부채 들어 더럽힐까 싫어하네/크게 사례하겠나니 저녁구름 비가 되어/더럽혀진 옷자락을 말끔히 씻어다오. " 고려말 충절로 이름을 날린 운암공

    중앙일보

    1998.10.01 00:00

  • [북녘산하 북녘풍수]8.선죽교와 좌견교…금기 깬 오백년 도읍지

    풍수에 규봉 (窺峰) 이란 용어가 있다. 명당 바깥 쪽에서 명당 안을 엿보는 듯한 봉우리가 있을 때 이를 엿볼 규자를 써서 규봉이라 한다. 명당의 혈장에 섰을 때 주위 산너머로 그

    중앙일보

    1998.03.28 00:00

  • [내마음속의 문화유산]38.사당·정자·비석

    국보나 보물급 문화재 앞에 운집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는 나의 가슴에 와닿는 감동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나에게 '문화유산' 이란 말뜻은 관광객도 없고 문화유산을 순례하러

    중앙일보

    1997.11.22 00:00

  • KBS.1TV "역사의 라이벌"

    이번회의 주인공은 이성계와 이색이다.「같은 뜻,다른 길」편. 목은 이색은 포은 정몽주,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말의 삼은으로 불리는 주자학의 대가.귀족들의 토지독점들 비롯,사회적 갈등

    중앙일보

    1995.04.15 00:00

  • 정몽주 기리는 臨皐서원 마무리공사 한창-경북 영천

    『고려말 節義臣 圃隱 鄭夢周의 충효의열과 유덕을 기린다.』 경북영천시에서 동북쪽으로 4㎞쯤 떨어진 영천군임고면양항리 보현산자락에 들어앉은 임고(臨皐)서원-. 경북도가 22억원의 예

    중앙일보

    1994.09.12 00:00

  • (45)신라·고려·조선 3조 충신 모신 숙모전·삼은각·동계사|시인 이근배

    우리는 충절이라는 말을 예사로이 듣고 무심코 뱉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이 얼마나 눈부신 광명이며 얼마나 높고 맑은 하늘인가를 다 헤아리지는 못한다. 작은 이익에도 허리

    중앙일보

    1992.06.07 00:00

  • (43)-권근의 「입학원설」새겨진 추원재

    고려의 왕업이 무너지고 조선왕조가 열리는 대변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이 당의 지식인들은 학문의 체계를 세우고 시를 짓기에 벼루의 먹물이 마르지 않았다. 역성혁명의 피비린내 나는 폭

    중앙일보

    1992.05.10 00:00

  • (42) 조광조의 개혁 의지 숨쉬는 심곡서원|못다 이룬 「도덕 정치」의 꿈 되새김질

    정치가 바로서야 나라가 융성하고 백성이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된다. 그러자면 누대로 쌓여온 낡은 제도와 인습을 깨뜨리고 정의롭고 합리적인 새 정치로 탈바꿈해야 한다. 조선 전기 일찍

    중앙일보

    1992.04.26 00:00

  • (31)-길재의 절의 숨쉬는 탐치정

    어질고 지혜로운 이들은 스스로 바깥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 깊은 곳에 묻혀 살았다. 더구나 나라가 어지럽고 세상에 나아가는 것이 목숨을 버리는 것만 같지 못할 때, 지성인으로서의 바

    중앙일보

    1991.07.14 00:00

  • (26)시인 이근배|포은 정몽주 충절 깃든 충렬서원

    나라를 섬기는 마음이야 어린 백성인들 없을까 보냐. 배움이 높고 생각이 깊음이야 그 다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랴. 그러나 이 나라의 역사는 저 고려왕조가 숨을 거두는 벼랑 끝

    중앙일보

    1991.04.14 00:00

  • (49)-영천시-사통팔달 교통요충 농산물 집산지

    고려 때 영주로 불리다가 조선 태종 11년(1414)에 영천군으로 개칭 된 영천시는 인근 5개 면이 통합되면서 영천면이 되었다가 l937년 영천읍으로 승격했고 8l년7윌1일 시로

    중앙일보

    1990.11.17 00:00

  • (10) 김시습 시혼의 「고향」 만수사 무량사

    나라가 바로 서지 못하고 왕도가 하늘을 거스를 때 시인은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참 시인의 삶인가. 바람인듯 구름인듯 세상을 훨훨 떠돌다가 돌아간 매월당 김시습.

    중앙일보

    1990.07.29 00:00

  • (161)의령 옥씨

    의령 옥씨의 시조는 옥진서. 「당태종 9년 (635년) 사학의 유생을 가르치는 여덟재사중 한사람으로 뽑혀 고구려땅을 밟았고 의춘(지금의 의령)군에 봉작됐으나 고구려가 망하자 신라

    중앙일보

    1986.06.28 00:00

  • (159)울진 장씨

    울진장씨의 본관을 처음 쓴 시조는 장말익. 고려정종때 문과에 급제, 호부상서·문하시중 평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로부터 36대까지 세계가 이어져 남한에만 2만여가구. 장천일(영녹대

    중앙일보

    1986.04.26 00:00

  • (145)성주 도씨

    도씨는 성주 단일본이다. 전국에 3만여명, 성별인구순위 65위의 귀성. 고려 명종때의 전리상서 도순을 득성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삼강행실도 등 여러 문헌에는 순이전

    중앙일보

    1985.06.29 00:00

  • (143)진주 소씨

    진주소씨의 족보는 시조를 후진한주 소백손공으로 전한다. 그의 5대손이 신라6부 촌장 중 한사람인 돌산고허촌장 소벌공. 그는 양산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을 찾아낸 신라건국의 아버지

    중앙일보

    1985.06.08 00:00

  • (142)안악이씨

    안악이씨의 시조는 이극규다. 고려건국의 공신으로 삼중대신태사에 오르고 안악을 식읍으로 받아 후손들이 관향으로 삼게됐다. 지금도 안악 뒷산에는 이씨네 터전이었던 양산대가 있으며 옛성

    중앙일보

    1985.06.01 00:00

  • (125)곡부 공씨

    국내의 곡부공씨는 단일본으로 시조 공자의 53세손 공완의 둘째 아들 공소(54세손)가 중시조다. 공소는 중국 원나라 순제 때 한림학사로서 고려 충정왕 l년(1351년) 원나라의 황

    중앙일보

    1984.11.16 00:00

  • 성씨의 고향곡산연씨

    곡산연씨의 시조는 고려충렬왕때 좌복야(좌복사·정2품)를지낸 연과창-. 관직에서 물러난후 황해도 곡산에서 여생을 보냈기에 후손들이 「곡산」 을 본관으로 삼았다. 연수창은 원래 중국의

    중앙일보

    1984.06.29 00:00

  • (101)해평 길씨

    『5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네/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여말삼은의 한 사람인 야은 길재. 그가 해평길

    중앙일보

    1984.03.10 00:00

  • 성씨의 고향글 문병호기자 사진 양원방기자|금성범씸

    『백리는 누구며 나는 누구냐/저문날 홀로서 눈물 흘리네/수양산바라며 굳힌 한마음/푸른하늘 우러러 부끄럼 없네.』 사문동 문을닫고 숨으렸더니/슬프다이내몸 감출데 없어/하루아침 불길에

    중앙일보

    1983.11.19 00:00

  • 학성 이씨(글 이춘성 기자 사진 김택현 기자)

    학성은 울산의 옛이름이다. 물좋고 산좋아 군학의 서식처였던데서 이름을 얻었으리라. 이곳을 근거지로 가문을 일으킨 학성이씨는 전국에 l만5천여명, 희성에 든다. 시조는 학파이예 (1

    중앙일보

    1983.10.22 00:00

  • 충주지씨|고려때 「11대 36평장사」내며 융성

    지씨는 충주단일본이다. 문헌에는 충주외에 단양·광주 두본과니 보이나 모두 충주의 분파. 그밖에도 충주어씨가 지씨 조상에서 어씨 성을 받아 분가한 한핏줄의 다른 성씨다. 시조는 고대

    중앙일보

    1983.09.0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