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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인생...발굴40년:45.기고를 마치며
1971년 나는 고고학 초년병이었다. 71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전남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유물(靑銅遺物)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보 제143호인 대곡리 청동유물일괄품(靑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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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44.과학적 조사 병행
유물은 한점도 나오지 않았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거창 둔마리 고려시대 무덤의 구조와 축조방법 등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벽화였다. 회칠한 벽면은 도굴되는 과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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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43.거창 고려시대 벽화
암사동 선사유적 발굴이 한창 진행되던 1971년 11월 19일 오후 김원룡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와 김정기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실장은 함께 경남 거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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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인생...발굴40년:42.발굴현장도 수색하던 시절
갑작스러운 한파는 인수봉에서 암벽 등반사상 최대의 희생자를 냈지만 암사동 선사유적지의 발굴 대원들에게도 값진 교훈을 남겼다. 악조건 속에 최선을 다해 발굴했다고는 하지만 정작 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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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41.인수봉 사고 나던 날
유물(遺物)의 학술적인 가치를 확인하든 확인하지 못하든 무슨 차이가 있느냐, 어차피 백지 한장 정도의 차이 아니겠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천만의 말씀이다. 시중에서 암암리에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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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40.'보릿고개 발굴'
발굴대원의 숙소로 정한 양계장은 수백 마리가 넘는 닭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루종일 귀가 멍멍하도록 울어대는 닭소리는 고사하고 온통 난무하는 닭털들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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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인생...발굴40년:39.암사동 선사유적 발굴
무령왕릉 발굴로 다사다난했던 1971년 한 해를 보내는가 했는데 11월 들어 생각하지도 않은 강동구 암사동 선사유적 발굴에 참여하게 됐다. 암사동 선사유적은 워커힐 건너편의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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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인생...발굴40년: 38.무령왕릉 유물 전시
무령왕릉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번엔 유물들을 빨리 전시하라는 여론이 빗발쳤다. 박물관 전시는, 출토유물 정리는 물론 충분한 연구를 통해 완벽에 가까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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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37.때늦은 후회
고대 왕릉의 발굴은 무령왕릉이 지금까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런 귀중한 기회가 일생에 한번이라도 찾아온다면 고고학도로서는 그만큼 큰 행운이다. 변명이 되겠지만 무령왕릉 발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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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36 무령왕릉 유물 조사단
1971년 7월 16일 드디어 무령왕릉 발굴유물을 공주박물관에서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송했다. 먼동이 트기 전 새벽 공기를 가르고 공주경찰서 무장경관들의 호위 속에 2천여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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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35 무령왕릉 유물 이전 소동
무령왕릉 발굴유물을 서울로 옮겨가지 못하게 막은 공주읍민들의 시위는 농성으로 발전했다. 7월 13일 하루 종일 공주읍 전체가 들썩거렸고 농성은 이튿날에도 계속 됐다. 밤에는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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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人生...발굴30년: 33 무령왕릉 첫 조사자
무령왕릉을 야간 발굴하기로 결정하자 한가지 문제가 걸렸다. 내부를 밝혀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부랴부랴 공주 군청에 요청해서 발전기 한 대를 빌렸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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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 40년: 32 아수라장된 발굴
무덤의 주인공이 백제 25대 무령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에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당장 내부를 공개하라는 보도진의 독촉도 빗발쳤다. 주인공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고대 임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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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31 영동대장군 백제사마왕
무더운 한여름 오후 기온이 30도를 오르내리는 찜통같은 날 무덤 입구를 막았던 맨 위 벽돌(塼) 한장을 들어내자 순간 성애같은 하얀 기운이 순간적으로 뿌옇게 서렸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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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30 입구 드러낸 무령왕릉
윤홍로(尹洪) 기사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당시 허련(許鍊) 문화재관리국장은 다음날 아침 장관 주재 회의에서 윤주영(尹胄榮) 문화공보부(현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공주의 상황을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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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 28 간첩 오인 소동
12월 소양강댐 수몰지구의 선사시대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 중 돌상자무덤(石棺墓) 1기와 야외 화덕터(野外爐址) 1개소는 학생들의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당시 춘천교육대학으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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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27 소양댐 수몰지역 조사
소양강댐 수몰지구 유적 발굴 조사 지역인 강원도 춘성군 내평리는 제법 규모를 갖춘 농촌 마을이었다. 면사무소와 초등학교도 있었고 해발 1,051m의 가리산(加里山)이 부근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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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26.신혼 단꿈도 잠시…
불국사 구품연지 발굴에 경주 안계리 신라 고분군 발굴에 이어 매달리다 보니 1970년이 훌쩍 지나갔다. 이듬해인 1971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여러 의미로 잊을 수 없는 한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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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話 두더지人生..발굴40년: 24 안계리 고분 - 사라진 금구슬
어떤 발굴 현장이든 마찬가지지만 처음 며칠간이 가장 바쁜 날에 속한다.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앞두고 이런저런 준비와 인부 통솔, 기록 및 촬영담당 지정, 숙식에 따른 문제 해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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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 23. 경주 안계리 고분 발굴 (4)
뱀술, 천년수를 마셔야 했던 음식난(難)은 보신탕으로 이어졌다. 안계리 고분 발굴을 통해 보신탕을 본격적으로 먹어보게 됐으니 이래저래 안계리는 개인적인 식도락사(史)와 관련이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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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인생...발굴40년:22.경주안계리 고분발굴 (3)
천년수를 서로 먼저 마시겠다며 야단들인 인부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내가 먼저 마셔 보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막상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물에 어떤 성분이 포함돼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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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21.경주 안계리 고분발굴 (2)
당시에는 발굴현장까지 가는 정기 노선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요즘처럼 사람마다 승용차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안계리까지 가려면 면소재지에서 걸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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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20.경주 안계리 고분발굴(1)
신라시대 고분군이 대규모로 분포하고 있는 안계리(安溪里)는 경주시로 편입되기 전에는 경북 월성군 강동면에 속해 있었다. 이곳에 신라무덤이 떼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당시 학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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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 19.아쉬움 남긴 구품연지
불국사 구품연지(九品蓮池)를 발굴 조사하며 최몽룡 조사원 덕에 난생 처음 마셔본 뱀술의 기억은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문제의 뱀술은 썩은 술이 분명했다. 상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