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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2>제104話 두더지 人生...발굴40년:27 소양댐 수몰지역 조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소양강댐 수몰지구 유적 발굴 조사 지역인 강원도 춘성군 내평리는 제법 규모를 갖춘 농촌 마을이었다. 면사무소와 초등학교도 있었고 해발 1,051m의 가리산(加里山)이 부근에 있어 등산객이 많으며 강변을 찾는 낚시꾼들의 발길도 제법 북적대던 곳이었다.

그러다가 수몰지역으로 지정되자 주민들이 순식간에 썰물처럼 빠져나가 마을은 전시(戰時) 폐허나 다름없었다. 긴급 구제발굴을 위해 썰렁한 마을을 찾을 때 마다 편치 못한 감상(感傷)에 빠지게 된다. 유난히 더운 날씨가 계속됐다. 하지만 시원한 물 한잔 얻어마실 수 있는 여건이 못됐다.

고인돌 조사는 예정대로 진행됐다. 망외의 소득도 있었다. 하루는 고인돌 조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강변 단애(斷崖·깎아세운 듯한 낭떠러지)에서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편을 발견했다. 조사범위를 확대해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발굴 조사비를 관리하는 행정담당은 비용이 더 든다고 난색을 표했지만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조사범위를 확대했다가 엉뚱하게도 6·25 전쟁의 흔적을 '발굴'하기도 했다. 지하 1m 깊이에서 6·25 때 전차가 지나가며 남긴 바퀴자국, 수많은 기관포 탄피들을 찾아냈다. 그러나 6·25의 흔적들은 유적 발굴조사와는 무관한 일이어서 유물로 취급하지 않고 모두 버리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날 발굴 현장 부근에서 초등학생이 폭발사고로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이주하지 않고 남아있던 가구의 초등학생이 현장을 지나다 나중에 지뢰 뇌관으로 밝혀진, 독특한 형태의 물건을 발견하고는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돌멩이로 두들겨 본 모양이었다.

뇌관은 새까만 색으로 마치 향수병처럼 생겨 어린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사건은 화를 입은 초등학생의 아버지가 "발굴조사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며 발굴 현장에 드러누워 시위하는 사태로 발전했다. 아이 아버지의 항의는 오래가지 않았고 별 문제없이 수습됐다. 알고 보니 아이 아버지는 마을에서 점을 봐주던 역술인이었다.

어쨌든 폭발사고는 발굴팀의 경각심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땅을 파다가 대전차 지뢰라도 잘못 건드려 폭발사고라도 났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상상이다. 당시는 전쟁이 끝난 지 20여년이 지난 시절이었다. 어쩌면 그동안 마을에 사고가 없었던 것이 기적같은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여곡절 끝에 발굴조사는 정해진 기한 내에 마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물에 잠기게 된 논·밭 2천7백㏊(약 8백만평)라는 넓은 면적에서 고작 수습한 것이 그나마 훼손돼 온전하지 않은 고인돌 6기와 선사 주거지 2곳뿐이었다는 점은 어찌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 조사 수준을 한마디로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소양강댐 물 밑에는 미처 조사하지 못한 수많은 선사 유적들이 잠겨 있을 것이 확실하다. 훗날 댐이 더이상 필요 없어져 수몰지역을 복구하게 된다면 발전된 고고학적 노하우로 정밀조사해 이 지역 선사시대의 문화를 보다 명백히 밝힐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발굴 유적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지만 수확은 제법 풍성했다. 청동기시대의 무덤인 고인돌은 물론 반달돌칼(半月形石刀)·돌촉·민무늬토기(無文土器)편과 토기 아가리 밖에 콩알을 두른 것처럼 요철처리한 소위 공열토기(孔列土器)편,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 편들이 출토됐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선조들이 생활했음을 말해주는 증거들이다.

특히 무문토기 시대의 주거지에서 채취한 목탄자료를 과학적인 연대측정법(年代測定法)으로 검사한 결과 기원전 7세기경 집자리(住居址)로 판명됐다. 또 야외에 불을 피웠던 흔적인 소위 야외 화덕터(野外爐址)가 8곳이나 확인돼 당시의 생활을 이해하는 데 훌륭한 단서를 제공했다.

발굴이 끝나자 소양강댐은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가 1973년에 완공됐다. 담수면적 9백60만㎡, 총 저수량 29억t, 홍수 조절능력 5억t, 농·공업용수 공급능력 12억t, 발전량 20만㎾ 규모의 다목적 댐이 탄생한 것이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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