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78>제104話 두더지人生...발굴30년: 33 무령왕릉 첫 조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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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무령왕릉을 야간 발굴하기로 결정하자 한가지 문제가 걸렸다. 내부를 밝혀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부랴부랴 공주 군청에 요청해서 발전기 한 대를 빌렸다.

당시는 시·군 공보실에서 시골마을까지 국정홍보 영화를 상영하던 시절이었다. 시골 마을에 영화관이 있을 턱이 없어 발전기를 이용, 야외에서 홍보 영화를 상영했다. 그 발전기를 임시 변통한 것이다. 유물 수습작업에 필요한 여러 소모품들도 급하게 마련했다. 그런대로 야간작업 준비는 된 셈이었다.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다. 먼저 해야할 일이 현황 촬영과 기록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당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문화재연구실이 보유하고 있는 촬영 장비는 일제 니콘 카메라 한대가 전부였다. 카메라는 워낙 비싼 물건이었다. '이 나라 경제가 살길은 자나깨나 수출뿐'이라고 부르짖을 때였다. 필름조차 금쪽같은 달러를 유출시킨다는 논리에 밀려 완제품을 수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롤 형태의 원 필름을 겨우 수입해 암실에서 적당히 되감아 파는 것을 구입해 사용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능이 우수한 카메라 추가 구입과 완제품 필름 구입을 요청했다가는 나라의 경제 사정은 생각지도 않는 정신 나간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불과 30년 전이지만 당시는 모든 물자 상황이 그만큼 열악했다. 지금이야 디지털카메라·캠코더·1회용 카메라 등 널린 게 휴대용 촬영 장비여서 개인 액세서리 정도에 불과하지만 당시에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는 재산 목록 1호로 취급될 정도였고, 그만큼 고가였고 귀했다. 보도진에 먼저 왕릉 내부를 공개하는 바람에 왕릉 입구를 막았던 벽돌(塼)을 다 들어낸 후 내부의 생생한 상태를 충분히 촬영하는 일은 애시당초 물건너 간 일이었다. 현황 촬영을 끝내고 무덤 내부 현상실측(現狀實測) 작업에 들어가야 했다.

발굴 조사보고서에는 무령왕릉 내부의 유물 배치상태가 표시된 도면이 실려 있다. 바로 그 도면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어쨌든 현황 촬영을 끝내고 정해진 일의 순서에 따라 지금은 고인이 된 김세현(金世鉉) 문화재관리국 토목기사와 함께 왕릉 안으로 들어가 다양한 수치들을 실측했다.

실측을 위해 무덤 안으로 발을 디뎠을 때 분노마저 치밀었다. 언론에 사진촬영을 허락하기 전 왕릉 내부를 둘러봤을 때의 모습과 천양지차로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사진촬영을 하느라고 그랬는지 바닥에 깔린 유물들을 아무렇게나 밟은 흔적들이 난무했고 석수(石獸)의 머리에 꼽혀있던 철제(鐵製)장식은 아예 떨어져 나가 있었다.

또 바닥에 놓여 있던 청동 숟가락은 밟혀 휘어진 채 원래 위치에서 벗어나 있었다. 어수선했다. 보도진에 먼저 촬영을 허락한 결정의 당연한 결과였다. 졸속 발굴의 전주곡이었다.

나와 김기사는 실측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독촉을 받으며 무덤 안으로 들어갔다. 정식 조사를 위해 무령왕릉 안으로 들어간 최초의 조사원이었던 셈이다. 우선 널길에 놓여있는 부장품 실측을 마쳤다. 다음, 벽돌방에 폭삭 내려앉아 있는 관재(棺材)를 실측해야 했다. 그런데 실측을 하기 위해서는 무너져 깔려 있는 관재를 건너가야 했는데 도저히 발 디딜 틈이 없이 널려 있어 어디를 밟고 넘어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밟고 넘어가려니 관재가 바스러질 것 같아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는 못하겠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밖에서는 빨리 실측을 끝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날아가기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절박한 상황에서 생각 끝에 밟아 바스러지더라도 서쪽 벽에 붙어 깔려있는 관재를 밟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조심스럽게 몸무게를 천천히 실어보았다. 그런데 관재는 의외로 튼튼했고 바스러지지 않았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1500여년을 견디면서 썩어 내려앉은 관의 두텁게 옻칠된 관재가 내 몸무게 61㎏을 거뜬히 견뎌냈던 것이다. 2시간 여만에 실측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밤 10시가 지나 있었다. 그때까지 보도진들과 구경꾼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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