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백범암살」진술 오락가락/안두희피습(추적 ’92:10)

    ◎“이 대통령이 암시” 발언한뒤 번복/권중희씨 “기필코 진상 규명할 것” 9월23일 오전 6시 인천시 신흥동 3가 동영아파트 백범암살 안두희씨(76)집에 민족정기구현회 회장 권중희

    중앙일보

    1992.12.27 00:00

  • 국방장관(분수대)

    오늘의 국방부에 해당하는 병조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고려말이었다. 충렬왕에 이르러 종래의 군부사를 병조로 개칭한 것이다. 조선조에 들어와 육조가 설치되면서 병조는 군정을 총괄하는

    중앙일보

    1992.12.23 00:00

  • (2)52년 헬싱키대회|최윤칠 군화밑창 신발로 마라톤4위

    한국의 올림픽출전 반세기를 되돌아보자면 마라톤의 최윤칠(64·현 진로 육상부 감독)씨처럼 아쉬움을 남기는 인물도 드물다. 우승을 눈앞에 두고 골인직전 전신경련으로 쓰러진 48년 런

    중앙일보

    1992.06.09 00:00

  • 신성모국방 이상 개입확실/관계인들 증언/안두희 진술은 대부분 거짓

    ◎「계획된 조직범죄」 윤곽 드러나/대통령 사전개입 여부가 관건/“포병사령관이 안에 거사자금 지원” 43년만에 백범 암살의 진상을 털어놓는 듯했던 안두희씨의 증언은 시간이 지나면서

    중앙일보

    1992.04.16 00:00

  • 안두희수사 검찰은 들러리/최대교 변호사 회고록 발췌

    ◎헌병이 관할경찰서장 폭행/현장검증까지 군에서 좌우 백범 암살사건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검사장이었던 최대교옹의 증언은 그동안 추리·심증에 머물렀던,치밀하게 계획된 「정치음모극」의 진

    중앙일보

    1992.04.16 00:00

  • 신성모 국방/암살듣고 “이제 민주주의”

    ◎최검사장이 밝힌 사건당시의 상황/백범피살직후 수상한 「실세」움직임/한독당 간부 조사도 없이 구속/한각만 법원장 “정말로 싫은 일”/그날 총리 꿩사냥,대통령은 낚시/면책 알리바이

    중앙일보

    1992.04.15 00:00

  • 여기서 1950년의 6·25 사변 때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한다. 남쪽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가 시작되고, 북쪽에서는 김일성 공산독재정치가 시작된 뒤에 김은 항상 남쪽

    중앙일보

    1991.11.25 00:00

  • 회고록 『풍운의 별』을 펴낸 박정인씨|「참 군인의 길」 후대에 알리고 싶어

    회고록 『풍운의 별』을 펴낸 박정인씨 (62)는 때와 곳을 가리는 법 없이 사람을 만나면『나 박정인 장군이오』라고 자기 소개를 한다. 그가 자기 이름 아래 무인으로서는 극존칭인 장

    중앙일보

    1990.10.28 00:00

  • 납북길 뒤처지면 마구 사살(재조명 6ㆍ25:4)

    ◎미아리 고개/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흔/「반동」몰아 41명 한구덩이서 학살 한실부락/억울한 희생 보상실마리 못찾아 거창학살/속초ㆍ고성 생이별 6만여명… 망향과 아픔의 40년 6ㆍ2

    중앙일보

    1990.06.21 00:00

  • 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13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강태무소령 월북은 충격적/여순반란사건후 구속위협 느끼자 결행 49년 5월5일이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

    중앙일보

    1990.06.09 00:00

  • 환상의 터널­그 시작과 끝:112

    ◎전 남로당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2부 해방정국의 좌우대립/김효석 내무때 남로당 수난/빨치산 토벌대 창설ㆍ유숙계 만들어 당원 색출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나기 얼마전으로 기

    중앙일보

    1990.06.06 00:00

  • 개각의 적기와 실기/송진혁(중앙칼럼)

    집권자들은 누구나 개각하라는 소리를 싫어하는 것 같다. 과거 4,5공 때는 신문이 개각설을 보도만 해도 기사를 빼라고 압력을 넣고 기자를 불러 기사의 출처를 캐기가 일쑤였다. 개각

    중앙일보

    1990.03.02 00:00

  • 드라마

    □····MBC-TV 『제 2공화국』 (26일 밤 9시30분)=「작전명령」. 출신구인 거창에서 죄 없는 양민들이 국군에 의해 사살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한 신중목 의원은 어떤 어려움

    중앙일보

    1989.11.25 00:00

  • 전 남로당 지하총책 박갑동씨 사상편력 회상기|제1부 독립을 위하여|아버지는 일인과 상종안해국교지어준 조부 손녀 등교 막아|형의 장인은 김창숙씨에 독립운동자금

    『우리조선이 일본하고 싸워야한다?…』 그 때 형은 나에게는 최대이상의 인물로 생각되었다. 나도 크면 형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나도 빨리 커 서울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중앙일보

    1989.08.28 00:00

  • 거창사건 유족들“한 풀어달라”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도 죄인아닌 죄인생활을 해왔습니다. 꼭 풀어야할 한을 못풀고 이대로 죽을 순 없읍니다.』 경남 거창사건의 양민희생자 유족회장 문병현씨(63·부산시 반송3동25

    중앙일보

    1988.11.07 00:00

  • (4)채병덕 장군 의문의 전사

    한국전 개전당시 육군총참모장이던 채병덕 소장이 하동전선에서 미군부대를 안내하다 적탄에 맞아 숨졌다. 이는 6·25전란 또 하나의 수수께끼로 장군의 죽음에 대한 의문과 억측들이 많았

    중앙일보

    1986.06.30 00:00

  • (108)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2월8일. 「무초」대사가 대구에서 돌아와 대통령을 방문하고 서울로 진격중인 미기갑부대의 맹공격으로 공산군들은 큰 타격을 입고 패주하고 있다는 현재의 전황을 보고했다. 「무초」대사는

    중앙일보

    1984.03.27 00:00

  • 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2월3일. 상오 10시에 장면박사는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임명장을 받았다. 우리는 낮12시에 「스트러블」해군소장의 점심초대를 받아 부산에서 6마일 밖 해상에 정박하고있는 미국의·항

    중앙일보

    1984.02.23 00:00

  • (90)|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1월12일 (계속). 「파트리지」 장군의 사령부에 이르니 장군은 전방에 나가 있었다. 대통령은 전방을 돌아본 후 우리 군인들의 소총 쏘는 훈련장을 시찰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중앙일보

    1984.01.18 00:00

  • (71)-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대통령은 하오3시반 미8군사령부로 가서 특별실에 안치되어있는 고「월튼·S·워커」장군의 영전에 조의를 표하고 장군의 외아들「샘·심스·워커」대위를 위로했다. 그리고 용감한 장군을 잃고

    중앙일보

    1983.11.28 00:00

  • 6ㆍ25와 이승만대통령

    하오5시께「챔프니」대령이 찾아왔는데 자기가 방금 받은 극비명령서때문에 대통령을 뵙기를 원했읍니다. 민사담당의「챔프니」대령은 8군사령부로부터 교사·기술자·의사들을 포함하여 저명한 민

    중앙일보

    1983.11.09 00:00

  • (61)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12월7일. 신성모 국방장관은 전국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민심동요를 막기 위해 담화를 발표했다. 사회부는 긴급구호대책본부를 설치하여 피난민구호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허정

    중앙일보

    1983.10.22 00:00

  • 6·25와 이승만 대통령|프란체스카 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대통령은 「맥아더」장군을 직접 만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맥아더」장군에게 전보를 보냈다. 변영태 박사가 29일 미국으로 뗘나기로 결정되어 변박사편에

    중앙일보

    1983.09.30 00:00

  • 6·25와이승만대통령

    10월20일. 어젯밤 대통령은 「올리버」박사에게 보내는 개인메모를 나에게 타이프하도록 했다. 『친애하는 「올리버」박사. 「스태거즈」씨가 현재 밝히고 있는 이야기나 그가 한국에서 한

    중앙일보

    1983.09.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