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와이승만대통령 <4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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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0월20일.
어젯밤 대통령은 「올리버」박사에게 보내는 개인메모를 나에게 타이프하도록 했다.
『친애하는 「올리버」박사. 「스태거즈」씨가 현재 밝히고 있는 이야기나 그가 한국에서 한 이야기들에 관해서 그 사람과 조용히 만나주었으면 좋겠읍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비서들로부터 들었으나 믿지 않았읍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는 대한민국측에 사무실을 무료로 빌려주고 있으며 이박사가 워싱턴에 묵고있었던 옛날에도 그렇게 했노라고 말했다고합니다. 신문기사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또한 나를 재정적으로 도왔다고 밝히고 있읍니다.

<감언이설로 설득>
나는 내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 아무리 어려워도 외국의 내 친구들로부터 돈을 빌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자랑이었읍니다. 나는 결코 「존·스태거즈」든 누구든 단 한푼도 요구한 사실이 없읍니다. 그것은 모두 나의 신조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스태거즈」는 어느때에도 나의 수입금을 취급한 사실이 없읍니다.』
대통령의 오랜친구인 「스태거즈」씨는 그런 허튼 말을 할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은데 아뭏든 석연치 않은 점이 느껴졌다.
군장비구매에 있어 경제협조처의 대충자금의 5% 정도는 자체재량대로 사용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통령을 워싱턴정계에서는 비난하고 있다고한다. 대통령은 그돈으로 일본 대신 우리가 직접 탄약과 무기같은것을 만들어 쓸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는 대한민국정부는 국내에서 인기가 없으므로 그 권한을 북한까지 확대시켜서는 안된다고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한인그룹」이 막대한 돈을 뿌리며 국제연합대표들을 설득하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한다.
즉 『내란과 유혈극과 장기간의 끈질긴 투쟁을 초래케할 것이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을 과도기동안 자기네 문제를 스스로 해결짓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고 열심히 활동을 하고있다는데 장대사는 아무것도 모른다니….
대통령은 한국대사가 유엔에서 일어나고있는 일을 모른다는 것은 『우리 얼굴에 호되게 뺨을 치는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우리나라 대사는 『너무 바쁘다』고만 하면 만사가 해결될것으로 믿는 모양이라고 대통령은 한탄했다.
아뭏든 우리는 「올리버」박사에게 유능한 신문기자 한사람을 보내주도록 부탁했다.
특히 한국아내와 결혼한 사람이면 더욱 좋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그리고 몇주일전에 장대사에게 경제전문가 한사람을 부탁했었다. 김세선씨가 한사람을 추천했는데 2차대전때부터 우리가 잘아는 사람으로 그는 적임자가 아니다.

<대통령담요 보내줘>
대통령은 ECA와 유엔이 하고있는 구제사업을 점검할 우리측 전문가가 있어야한다고 느끼고 있다.
아뭏든 영어로 타자해야할 많은 일들이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나는 외국에 있는 교포친지들에게 담요와 구호물자를 경무대로 직접 빨리보내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경무대의 비서들과 경호경관들도 전쟁의 피해를 본 전재민들인데, 폭격받고 불탄 집터위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덮을것이 없어 고생하고 있다고한다.
이 보고를 받고 대통령은 한동안고생이 되겠지만 자기가 사는 동네의 동회나 적십자사에 각자 신청해서 차례를 기다려 구호품을 배급받도록 지시했다.
경무대직원이라고 해서 남보다 먼저 특전을 누린다면 다른 관청직원들도 모두 같은 특전을 원할 것이니 병든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직원에겐 대통령자신이 덮고있는 담요를 내주도록 나에게 지시했다.
서울시장 이기붕씨 부인도 나에게 자기집은 헐어빠진 쓰레기통처럼 지저분하게 파괴되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겨우 담요 한장이 있어서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가 두애들을 데리고 네식구가 함께 덮고 자는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그집의 귀여운 딸이 작년에 병사해서 아들만 둘이다.
중앙청에 있던 대통령비서실에서 민원담당비서로 일했던 나이 많은 유창준비서가 납북된후 전혀 소식이 끊어졌다는 보고를 받고 대통령은 무척 침통해했다.
유비서는 일제의 압정에 시달리던 암흑기에 YMCA지도자 이상재선생과 어깨를 견주어 우리민족을 위해 공헌했던 조선교육협회의 지도자 유진태씨의 아드님으로 이선직비서와 함께 대통령이 직접 채용했던 유일한 세교집안 자손들이었다.

<유비서 소식끊겨>
대통령은 이 비서들을 보면 옛어른들을 뵙는것같다며 퍽 든든해 했었는데 두 사람 다 이번 전쟁에 희생된것이 참으로 가슴 아프다.
경무대의 시인 김광섭비서가 대통령에게 전쟁전에 월북했던 그의 문인 친구 이태준을 구하러 평양을 다녀오겠다고 허락을 받으러 왔다.
그러지 않아도 경무대의 일손이 달리고 할일은 산더미같은데 찾은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 자기 친구를 구하러 가겠다는 김비서의 배짱이 부럽다.
나는 타이프치기가 지겨웠지만 대통령이 불러주는대로 워싱턴의 장대사에게 보내는 편지를 타이프했다.
『이민문제에 관해 태국대사관과 접촉을 가지시오. 외무부는 인원이 부족하여 귀하에게 쓸수가 없기에 내가 개인편지로 이문제를 언급하겠다고 그들에게 약속했습니다. 우리 이민들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얼마나 들것이며 우리 농민들만 이주할것으로 보아 토지는 얼마정도 배정을 받을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기타 조건들도 우리가 알고 싶습니다.
우리국민이 정당한 대우를 받도록 모든일을 확실하게 해야할것입니다.』
신성모국방부장관과 백낙준문교부장관, 이윤영사회부장관이 공보처장 「헬렌·킴」과함께 북한국민을 안심시키려고 준비한 포스터를 가지고 평양으로 출발했다. 「올리버」박사로부터 고려대의 이인수교수를 사면해주도록 간청하는 긴 전문이 왔다.
이교수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온 영문학자로 「올리버」박사와는 각별한 친구였다.

<이교수 구명호소>
공산당의 서울점령후에 그들을 위해 방송에 참여한 죄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에 그의 구명을 호소해온것이다.
우리도 이교수에 대해서 자라온 배경과함께 영국유학시절을 알고있다.
돈암장에 있을때 대통령은 그에게 영문번역을 시키려 했었고 김동성공보처장 후임으로 기용할 생각을 한적도 있었다.
대통령은 이런 인재를 희생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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