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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공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통령은 하오3시반 미8군사령부로 가서 특별실에 안치되어있는 고「월튼·S·워커」장군의 영전에 조의를 표하고 장군의 외아들「샘·심스·워커」대위를 위로했다.
그리고 용감한 장군을 잃고 슬퍼하는 우리국민의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하고 한국과 자유세계를 위해 큰공헌을 한 장군의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찬양했다.

<워커 영전에 조의>
장군은 크리스머스를 앞두고 영국군 27연대를 표창하러가는 도중에 의정부근방에서 반대편으로부터 달려오던 미군트럭을 피하려다 장군이 탄지프가 전주에 부딪쳐 세번이나 구르는 바람에 중상을 입고 곧 근처 야전병원으로 옮겼는데 애석하게도 아들「샘·워커」대위가 도착하기 직전에 숨을 거두었다고한다.
「워커」장군의 외아들「샘·워커」대위는 우리 한국의 최전방에서 싸우고있는 야군단에 배속되어 있었는데 「워커」장군은 24군단에도 표창장을 가지고 들를 예정이었다.
자랑스런 아들과 사령관인 아버지가 같은 전선에서 만나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다가 이 청천벽력같은 비보를 전해듣게된 동경의 「워커」장군부인이 얼마나 애통해할까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워커」장군의 유해는 아들의 호위를 받으며 내일 상오10시 간단한 고별식을 가진후 특별기편으로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동경을 거쳐 본국으로 운구될 예정이라고 한다.
연합군최고사령부는 「워커」장군의 뒤를 이어 미8군사령관으로 「매튜·리지웨이」중장을 급히 임명했다고 하는데 「리지웨이」장군은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국낙하산부대을 지휘하여 혁혁한 공훈을 세운 역전의 용감한 장군이라고한다.
다만 은밀한 정보에 의하면 「리지웨이」장군은 「맥아더」장군의 세력을 견제하기위해 임명된 인사조치라고해서 대통령은 은근히 염려하고 있다.
12월24일.
내일이 크리스머스이기 때문에 성탄일요일을 맞아 우리는 예배를 보러 상오11시 정동교회로갔다.
성탄절을 맞는 예배당안이 아무런장식도 없이 너무나 쓸쓸하고 황량해 난로불하나 없이 썰렁했다.
손발이 꽁꽁 얼어 감각이 없어질 정도로 추운 이 넓은 예배당 안에는 손으로 꼽아 약20명의 교인이 모여있었는데 목회를 인도할 사람이 없어 평신도의 한사람이 예배순서를 진행하고 있었다.

<트레일러가 막사>
그 신도의 설교는 매우 감동적이었고 교인들이나 대통령은 함께 예배를 보게되어 모두 기뻐하였다.
그 신도는 성경의 마태복음 10장29절을 봉독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울었다.
대통령은 그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니 아무리 강한 적이 쳐들어와도 우리는 기어이 물리칠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주도록 격려했다. 이 예배는 지금껏 우리가 참석해온 예배중 가장 감명깊게 우리기억에 새겨질 감동적인 목회의 하나였다.
우리는 예배가 끝나기전인 낮l2시에 교회를 떠나야만 했다. 12시30분에 의정부방면의 전선을 향해 떠나야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신성모국방장관의 지프를 타고 출발하였다. 대통령과 신국방장관, 그리고 나 이외에 운전기사가 타서 네사람이 함께갔다. 해는 맑게 빛나고 우리는 확트인 시골로 속력을 내어달렸다.
우리는 「워커」장군이 하루 전날 자동차사고로 참변을 당했던 지점을 통과했다. 우리가 맨처음 간곳은 의정부에 있는 「콜터」장군의 사령부인데 길에서 떨어진 벌판에 완전히 파괴되어있었다. 「콜터」장군은 트레일러(이동가옥차) 안에 있었다.
미군장군들은 모두 트레일러안에서 생활을 하는데 그안에는 침대와 책상과 세면대와 작은 냉장고가 있다.
우리는 그곳을 잠깐 방문하고 거기서 6마일 떨어져있는 한국군 제6사단으로 갔다.

<미고문단 행적 알만>
6사단은 「콜터」장군휘하에 배속되어 있는데 거기서 정보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길에서 떨어진 작은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데 그들이 쓰고있는 한 집은 전파출소건물인것 같았다. 미국고문관과 주둔부대원등 한 부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장도영장군은 젊고 유능한 사람으로 「콜터」장군의 많은 칭찬을 답고있었다,
그 부대의 미군사고문관은 피츠버그에서 최근에 온 「피어슨」대령인데 한국군인들과 일을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세명의 좀 계급이 낮은 고문단의 장교들은 오히려 실망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들은 위스키가 왔느냐, 안왔느냐에 대해 더 관심을 쏟고 있었으며 만약에 안왔으면 가질러 가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조금 이야기를 나누엇는데 전의 미군사고문단이 한국군에 대해 일을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도움에 감사를 표했다.
그들은 나에게 이번 전쟁이 시작되었을때 싸웠던 다른 8개의 군사고문단과 마찬가지로 자기네들도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을 것인가를물었다.
나는 「워커」장군이 이미 그 표창장을 그의 사무실에 가지고 있었으며 「처지」장군에게 미24군단의 표창장을 전달하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했었다고 대답해 주었다.
만일 「워커」장군에게 아무런 사고가 없었더라면 지금쯤은 장군이 군사고문단에 그 표창장을 수여했을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은 내가 그들도 표창장을 받게되리라는 말을 하고난 다음 다소 즐거운듯 하였다.

<족자용 붓글씨 부탁>
장장군은 적의 위치를 찾아내기 위해 그들의 부대원을 어디로 보내고있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대단히 신이 나는 태도로 지도를 하나하나 지적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통령에게 족자를 만들수있게 붓글씨로 무엇인가를 써달라고 했다.
우리는 거기서 약 한시간동안을 함께 보냈는데 대통령은 우리장병들을 만나는것을 무척 흡족해했고 그들의 사기 또한 충천해있음을 알았다.
미군사고문단의 「피어슨」대령은 대단히 좋은 사람이며 우리장병들의 존경을 받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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