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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의 문화난장] 청년 이어령 “왜 수레 타지 않고 지게 지나”
이지영 문화팀장 ‘시대의 지성’을 잃은 상실감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지난 토요일, 이어령(1934∼2022) 선생의 부고가 전해졌다. 그의 암 투병이 알려지며 예고됐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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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나이차 극복한 문인 부부… 감동의 공동 산문집
박연준, 장석주 부부 [사진 이해선]1955년생 시인 장석주와 80년생 시인 박연준. 무려 스물다섯이라는 나이 차이를 '극복'한 것으로 모자라 남들 다 올리는 결혼식 대신 공동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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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김동리 탄생 100주년
하현옥 기자올해는 한국 근대소설의 새 장을 연 김동리(1913~95) 선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역마’와 ‘무녀도’ 등을 쓴 김동리는 미당(未堂) 서정주(19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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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의 날 선 비판, 나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라이벌-. 애증이 엇갈리는 묘한 관계다. 일합을 겨룰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라이벌은 부담스럽긴 해도 스스로를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한국문학도 수많은 작가와 학자들의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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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스러움에 반해100만원 빌려 덜컥집 한 채가 보통230만원 할 때였죠
1 조선 위원화초연 연벽묵치(硯癖墨痴). 벼루와 먹 수집에 미친 선비를 뜻한다. 요즘말로 ‘벼루바보’쯤 될까. 한국시조시인협회장(1994)과 한국시인협회장(2002)을 역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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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 의대 2년 중퇴,김기림 좇아 南으로...70년대 반체제 동참
집 앞 골목길을 산책하고 있는 김규동 시인. [사진 중앙포토] 1984년 10월 16일 재야인사 96명을 발기인으로 한 민주통일국민회의가 발족했다.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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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문학 vs 참여문학 가는 길 달랐지만 평생 서로 바람막이로
1984년 무렵의 김동리(사진 위)와 2001년 무렵의 이문구. [사진 중앙포토] 1988년 8월 말.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제52차 국제 펜대회 개막식이 열린 다음 날 ‘민족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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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혈육처럼 지내며 한국문학의 산맥 형성
1980년대 중반까지 서울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전광용(1919~88)·정한모(1923~91)와 고려대 국문과 교수를 지낸 정한숙(1922~98)은 광복 직후부터 동인활동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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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스승 미당 앞에 술 한 잔 못 올린 사연
이문구의 문인기행 이문구 지음, 에르디아 328쪽, 1만3000원 이 사람의 자기 소개를 들어보자. “여느 때는 통 구변(口辯)이 없어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이면서 느닷없이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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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는 두 여성에게 남성 이전에 스승이었다
1977년 열린 손소희 도화전에 참석한 김동리-손소희 부부(왼쪽 사진). 김동리-서영은 부부의 1993년 모습. [중앙포토 손소희가 세상을 떠난 지 두어 달 후인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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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전’ 사건과 김남주
1979년 10월 초에 발표된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은 매우 충격적이었지만 문단에도 적잖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구속된 ‘남민전’ 조직원 84명 가운데 평론가 임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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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이문구의 ‘우리 동네’
1977년 무렵의 이문구. 모윤숙을 새 회장으로 선출한 펜클럽 한국본부의 총회가 열리기 한 달 전인 1977년 1월 한국문인협회도 임원 개선을 위한 총회를 열었다. 73년 총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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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문인들의 저항운동
옥고를 치르고 1975년 출감하는 시인 김지하 이른바 ‘문인 간첩단 사건’ 1심 공판이 끝나고 항소심 공판이 진행 중이던 1974년 7월 13일 비상 보통 군법회의 법정은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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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김현의 ‘말 트기 주의’
젊은 날의 김현 1990년 김현이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김병익은 추모의 글을 통해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8할이 그의 덕택’이라고 했다. 비단 김병익뿐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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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이문구와 청진동 시대
이문구 작가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문인협회 사무실이 지금 세종문화회관 뒤 예총회관에 있을 무렵, 문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지방에서 상경한 문인들이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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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 청송 주왕산
태백산맥의 우렁차고 담대한 지맥은 한반도의 남쪽을 기운차게 뻗어 내리며 설악산과 오대산, 그리고 속리산 같은 명산을 잉태시켰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지니고 있는 기백과 탄력이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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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계한 작가 박경리, 창작 열정 반세기 … 한국문학의 극점을 이루다
강원도 원주의 집 마당에서 텃밭을 손보는 박경리. 1978년 외손자와 함께. 그는 폐암 선고를 받고서도 담배를 끊지 않았다. [사진제공=세계사]박경리가 끝내 흙으로 돌아갔다. 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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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경리 선생 "시련 없었다면 토지도 없어"
박경리가 끝내 흙으로 돌아갔다. 영정 앞에서 외람된 언사일 수 있겠지만, 마냥 슬퍼할 일은 아닐는지 모른다. 기억 속에서 박경리는 목숨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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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있음에 대천 앞바다 새봄도 오고-소설가 이문구 5주기
명천(鳴川) 선생님! 대천 앞바다도 당신의 이름 따라 울고 있음인가. 서해 바다를 멍들게 한 것도 모자라 조상님의 넋으로 우뚝 서 우리 잘잘못 말없이 지켜봐 주시던 숭례문마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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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6. 심상건의 산조
심상건 선생이 1926년 발표한 가야금 병창 음반. [사진=김문성씨 제공] 심상건(1889~1965) 선생은 가수 심수봉의 아버지와 사촌 간이다. 국악인들은 “심수봉이 물려받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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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눌러쓴 그 애틋함 고이 접어 내 마음에…
소설가 조정래씨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일본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소설가 한무숙씨에게 보낸 편지(下), 화가 오승우씨가 이어령 전문화부 장관에게 보낸 편지(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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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 읽기] '왜 나는 시인인가'
어른의 말씀은 늘 고맙다. 그러나 우리는 고마움을 당장에 알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 어른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뒤늦게 고마워 할 뿐이다. 아니면 어른이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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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광수·김동인 사활 건 '오기싸움'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자 롤랑 바르트는 '작가의 죽음'을 선언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인용하거나 반복해 언급하는 사람일 뿐이고, 텍스트는 인용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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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으로 돌아간 문단 터줏대감
"한국 문학과 문단의 마당쇠이자 터줏대감을 잃었다." 소설가 이문구의 부고 소식을 듣고 몰려든 문인 등 문화예술인들은 깊은 슬픔과 상실감을 쏟아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승에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