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웅의 문단 뒤안길-1970년대 <16>문인들의 저항운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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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호 13면

옥고를 치르고 1975년 출감하는 시인 김지하

이른바 ‘문인 간첩단 사건’ 1심 공판이 끝나고 항소심 공판이 진행 중이던 1974년 7월 13일 비상 보통 군법회의 법정은 대통령 긴급조치 4호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지하에게 사형을 선고(일주일 뒤 무기로 감형)했다. ‘1974년 1월을 죽음이라 부르자…’는 시구로 유신정권을 자극했던 김지하는 긴급조치 발동과 함께 도피 생활을 하다 흑산도의 한 여관에서 체포돼 ‘민청학련’ 사건의 주모자로 군법회의에 기소됐다.

이 두 개의 사건은 30~40대 젊은 문인들로 하여금 체계적인 저항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게 했다. 정치체제에 대한 저항도 저항이지만 문인들의 잇따른 수난이 한국 문학과 문단 전반에 걸친 위기감을 고조시킨 것이다. 앞서 1월 ‘문인 61인 선언’을 주도했던 고은·백낙청·신경림·박태순·황석영 등 10여 명의 문인은 이문구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청진동의 ‘한국문학’ 편집실에서 자주 모여 저항운동의 방향과 방법을 논의했다.

‘한국문학’ 편집실이 문인 저항운동의 산실 역할을 한 셈인데, 당시 ‘한국문학’ 발행인이던 김동리는 반체제니 저항이니 운동이니 하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상근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비교적 자주 편집실에 들러 이문구를 비롯한 김년균·서영은 등 편집진을 격려하고 식사도 함께했다. 따라서 편집실에서 일어나는 정황을 대개는 파악하고 있었다.

김동리와 이문구의 관계는 단순한 사제관계 이상이었다. 이문구는 존경하는 만큼 스승의 뜻을 거스르는 법이 없었고, 김동리는 이문구를 아끼고 사랑하는 만큼 제자가 하는 일을 정면으로 나무라거나 반대한 적이 없었다. 김동리는 뭔가 ‘일을 꾸미려는’ 모임이 ‘한국문학’ 편집실에서 열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있었으나 모른 체한 것이었다. 묵시적인 허락이었던 셈이다.

스승의 마음을 꿰뚫은 이문구는 이문구대로 스승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모임이 있을 때마다 늘 좌불안석이었다. 훗날 김동리의 세 번째 아내가 되는 서영은은 그 무렵 스승과 제자 사이의 인간적 이해와 문학의 존엄성으로 맞선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다고 술회했다.

어쨌거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돼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문인이 40명이나 늘어 101인이 되었다. 주도적인 문인들이 11월 15일 저녁 청진동 ‘귀향’ 다방에 모여 최종적인 점검에 들어갔다. 백낙청·박태순 등의 의견을 종합해 모임의 공식 명칭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약칭 자실)’로 정해졌다. 대표간사는 고은이 맡기로 했고 상임간사로는 신경림·염무웅·박태순·조해일·황석영이 선출됐다. 김지하 등 긴급조치 위반 구속 인사 즉시 석방, 언론·출판·집회·결사 및 신앙·사상의 자유 보장 등 5개 항을 결의한 ‘문학인 101인 선언’도 만들어졌다.

마침내 디데이인 11월 18일 오전 10시 30여 명의 문인이 광화문 네거리에 집결해 ‘문학인 101인 선언’을 낭독하고 곧바로 시위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인 시위대는 몇십 분을 버티지 못했다. 인근 종로경찰서에서 수십 명의 경찰이 시위대를 에워싸고 해산을 종용한 것이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던 고은·이문구·박태순 등 7명의 문인은 종로경찰서로 연행돼 갔고, 나머지 문인들은 뿔뿔이 흩어지다가 몇몇 문인은 예총회관(지금의 교보빌딩 자리) 안의 문인협회 사무실로 몰려가 농성을 벌였다.

이렇게 해서 출범한 ‘자실’은 한국 최초의 문인들의 독자적인 문예운동기구로 기록되었다. ‘101인 선언’ 이후 ‘자실’은 간사회의를 열고 앞으로의 구체적인 운동 방향을 논의했다. 대외적으로는 반체제적인 문학단체의 성격을 부각시키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문학운동의 이념성과 실천성을 확보한다는 기본 방침을 정하고 회원 수를 계속 늘려 나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듬해인 75년 3월에 이르러 회원 수는 165명에 달했다. 3월 14일 동아·조선 기자 해직 사태와 ‘기자협회보’ 폐간 조치, 그리고 김지하의 재구속에 항의해 ‘자실’의 이름으로 ‘문학인 165인 선언’을 발표한 것이다. 문인 165명은 문인협회에 등록된 전체 문인의 10%를 약간 상회하는 수치였다.


중앙일보 문화부장·논설위원 등을 역임했다. 문학 평론가로 추리소설도 여럿 냈다. 1960년대 문단 얘기를 다룬 산문집 『글동네에서 생긴 일』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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