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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의 날 선 비판, 나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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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라이벌-. 애증이 엇갈리는 묘한 관계다. 일합을 겨룰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라이벌은 부담스럽긴 해도 스스로를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한국문학도 수많은 작가와 학자들의 라이벌 의식이 빚어낸 무늬이자 자취다.

 문학평론가 김윤식(77) 서울대 명예교수가 이들 무늬와 자취 중 도드라진 것을 골라 신간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그린비)을 냈다. 계간지 ‘문학의 문학’에 ‘문학사의 라이벌’이란 표제로 연재했던 22편 중 5편을 골라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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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저자인 김윤식 교수가 문학평론가 김현(1942~90)과의 라이벌 의식을 논한 부분이다. 두 사람이 함께 쓴 『한국문학사』(1973)는 김윤식의 실증주의 정신과 김현의 실존적 정신분석이 행복하게 조우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이후 각자의 길을 걷고, 김현은 김윤식을 향한 날 선 비판을 이어간다. 저자인 김윤식은 김현의 비판이 자신의 글쓰기의 참 모습이자 자신의 궤적을 추적한 김현의 사랑이었다고 고백한다. 두 사람은 라이벌임에도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지음(知音)이었던 셈이다.

 한국의 대표적 문예지였던 ‘창작과비평’(이하 ‘창비’)과 ‘문학과지성’(이하 ‘문지’)의 대립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1966년 백낙청(75) 서울대 명예교수가 창간한 창비가 ‘너희가 세계문학을 아느냐’는 무언의 일성을 던졌다면, 70년 김현의 주도로 시작된 문지는 ‘네가 한국문학을 아느냐’고 맞받아쳤다는 것. 이들 문예지는 이후 각각 ‘논리로서의 문학’과 ‘해석으로서의 문학’을 천명하며 한국 문학의 토대를 다졌다.

 소설가 김동리의 제자인 박상륭(73)과 이문구(1941∼2003)의 라이벌 의식은 문학사에서 가장 극적인 것으로 꼽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서라벌예대 동급생인 전라도 장수면의 욕심쟁이 박상륭과 충청도 보령 관촌 마을 출신의 ‘독종’ 이문구의 만남의 기묘함은 소설 쓰기와 술 먹기의 절묘한 균형감각에 서 있었다. 하지만 스승의 샤머니즘을 자신의 색깔로 재창조하면서 이 균형에는 균열이 생긴다. 그 결과 두 사람의 라이벌 의식은 ‘샤머니즘의 세계화’(박상륭)와 ‘샤머니즘의 움막 짓기’(이문구)라는 성과를 낳았다.

 김 교수는 “책에서 다룬 라이벌 의식은 이 나라 문학사의 한 가지 높고 귀한 가능성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덧붙여 “일종의 장관이자 기적”이라고도 강조했다. 라이벌 의식이 빚어내는 장관과 기적은, 지금도 문단의 어딘가에서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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