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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광수·김동인 사활 건 '오기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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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자 롤랑 바르트는 '작가의 죽음'을 선언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텍스트를 인용하거나 반복해 언급하는 사람일 뿐이고, 텍스트는 인용문들을 조직한 것에 불과하다. 때문에 독창성이라고는 없다는 주장이다.

연세대 이상진 연구교수가 펴낸 '한국 근대 작가 12인의 초상'은 그런 입장과는 반대되는 자리를 바라보고 있다. 작가에 대한 전기(傳記)적 연구를 통해 작품 속에 남아 있는 작가의 흔적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이광수.김동인.현진건.나도향.최서해.염상섭.채만식.김유정.이상.이효석.김동리.황순원 등 일제 치하와 해방.한국 전쟁을 거치는 격동기 한복판에서 활동했던 12명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교수에 따르면 춘원 이광수는 평생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오갔던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두드러졌던 천재성과 그에 쏟아진 과도한 칭찬은 춘원을 영웅주의와 자기도취에 빠지게 했다. 한편 어머니가 뽕잎을 주워 생계를 꾸려야 했고, 그나마 열한살에 양친이 콜레라로 세상을 떠난 후 여동생들을 떠맡아야 했던 불우한 소년 가장 시절은 그를 열등감으로 몰고 갔다.

"세상에 나를 반가워하는 사람이 없을수록에 나는 더욱 사랑을 갈망하였다."

춘원은 자전적 소설 '나'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자신이 항상 사랑에 굶주려 있음을 내비친다.

소설 '무정'에서 주인공 형식이 스승의 딸 영채에 대한 책임감과 신여성 선형의 매력 사이에서 고민하다 선형을 선택한 것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춘원은 책임감 때문에 결혼했던 백혜순과의 결혼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춘원의 사랑에 대한 갈망은 소설 속 주인공 형식이 신여성과의 자유연애를 선택하도록 했을 것이다. 춘원은 실제로 백혜순과 합의이혼한 후 산부인과 의사 허영숙과 재혼한다.

작품과의 연관관계를 따지지 않더라도 '한국…'이 소개하는 '작가 12인의 초상'은 흥미롭다.

평양 갑부의 아들로 태어나 유산 3천섬을 물려받은 김동인은 오만했고 춘원을 평생의 라이벌로 여겼다고 한다. 김동인은 고급 호텔과 기생집 명월관을 전전하는 등 호화판 생활을 고집했지만 사업에 실패한 후 말년에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수면제에 의존하다 보니 저절로 수면제 박사가 된 김동인은 손에 닿기만 해도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독했던 포수크로랄이라는 싸구려 수면제를 2g이나 4g씩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30년 가세가 기운 김동인이 호구지책으로 신문소설 연재를 하고싶다고 하자 동아일보 편집국장이던 춘원은 "작가의 양심. 자존심을 죄다 쓰레기통에 집어넣고 독자 본위로 써달라"고 주문했다. 훗날 춘원이 수양동우회 사건 이후 친일로 돌아서자 김동인은 춘원을 찾아가 은근히 자살을 권유했다고 한다.

한편 채만식은 버럭 화내기를 잘하고 남의 집에서 식사를 할 때는 휴지로 수저를 다시 닦을 정도로 까다로운 면이 있었고, '빈궁 문학'으로 거론되는 '탈출기' '홍염' 등을 남긴 최서해는 실제로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만주의 가족을 떠나 서울로 향했다. 자전적인 글 한편씩과 연보가 작가마다 따라붙는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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