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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셋 코리아] “자치입법·행정권 확대 … 새 정부, 지방분권형 개헌해야”

    [리셋 코리아] “자치입법·행정권 확대 … 새 정부, 지방분권형 개헌해야”

    7개 광역 시·도 연구원장들이 지난 19일 중앙일보에서 이하경 본지 주필의 사회로 지방분권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들은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지방분권형 개헌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왼쪽부터 유재일 대전세종연구원장, 강기춘 제주발전연구원장, 정초시 충북연구원장, 이 주필, 박성수 광주전남연구원장, 강성철 부산발전연구원장, 육동한 강원발전연구원장, 남기명 인천발전연구원장. [전민규 기자]“차기 정부는 지방분권형 개헌에 나서야 합니다.” 지난 19일 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에서 이하경 주필의 사회로 진행된 ‘지방분권 간담회’에서 7개 광역 시·도 지역연구원장들은 한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이 자리에는 강성철 부산발전연구원장, 남기명 인천발전연구원장, 박성수 광주전남연구원장, 유재일 대전세종연구원장, 육동한(전국시·도연구원협의회 회장) 강원발전연구원장, 정초시 충북연구원장, 강기춘 제주발전연구원장이 참석했다. 강성철 원장은 “입법·행정 분야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권한을 공동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에 자치입법권 확대, 자치조직권 보장 등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재일 원장은 “국회가 법률 개폐를 통해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을 방지하고 지방자치의 내실화를 위해 지방자치형 개헌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남기명 원장은 “11년째 이어지는 국민소득 2만 달러대의 벽을 넘기 위해서라도 지방분권은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선후보들도 지방분권을 공약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광역 단위 자치경찰제 추진을 내걸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헌법에 ‘지방정부’를 명시하고 지방정부의 입법권·재정권 확대를 약속했다. 홍준표(자유한국당)·유승민(바른정당)·심상정(정의당) 후보도 중앙정부 업무의 과감한 지방 이양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다음은 간담회 주요 발언. ▶이하경=지방자치발전종합계획이 2014년 말 발표되는 등 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노력이 역대 정부에서 계속돼 왔으나 지방자치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남기명=지방자치발전종합계획에는 근거법이 있고 2014년 12월 국무회의에서 통과되었기에 법정 계획이다. 그런데 이 계획을 실행하려면 법을 제·개정해야 한다. 관련 법령만 103개인데 국회 상임위원회나 관할 부처가 다 달라서 개별적으로 처리하기가 불가능하다. 정치인들도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 입법 과정 참여가 부진하다. 주관 부처인 행정자치부 공무원들도 대부분 지방분권에 소극적이다. 협의 과정에 예산이 들기에 기획재정부의 협조도 필요한데 사사건건 반대하니 진척이 안 된다. 지방분권에 강한 의지를 지닌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이하경=새 정부 출범 초에 국가 어젠다로 추진하지 않으면 다른 과제들에 계속 밀리고 말 것이다. ▶유재일=새 정부는 시스템을 리셋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치·경제·사회가 정상화되는 것이 큰 과제다. 중앙과 지방 관계가 정상화되고, 지방의 역량이 커져 에너지를 창출하면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다. ▶강기춘=제주도는 특별자치도가 된 지 10년이 넘었고 잘 운영되고 있다. 제주도는 법 제정에 있어 독립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들이 있지만 재정은 그렇지 못하기에 반쪽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남기명=기업 유치가 지방 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자체 입장에선 골프장 유치가 인프라를 갖춰줘야 하는 중소기업 유치보다 이득이다. 골프장은 재산세가 20~30%씩 매년 꼬박꼬박 들어온다. 캐디만 100여 명이 넘고 주변 음식점이 많아지며 드라마 장소로도 개발된다. 중소기업 법인세의 상당 부분을 지방에 넘겨줘야 한다. ▶정초시=중앙정부가 여태까지 지방을 길들여 온 구조와 통제의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종속되고 의존적인 상황에서 갑자기 분권이 이뤄지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 충북의 재정자립도는 40%를 밑도는데 분권이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만큼 재정을 확충하는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 ▶이하경=중앙정부 차원에서 혁신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것들은 지방 실정에 맞게 제한적으로 성공 사례를 만든 후 전국화하면 좋을 것 같다. ▶육동한=지방정부도 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덕 R&D 특구의 경우 대덕이 성공하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이내 대구·부산·울산 등 다른 도시도 도입했다. 국가적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고 많은 비용을 발생시킨다. ▶정초시=사회적 자원을 지방정부가 선택해 배분하게 해주면 절대로 그렇게 안 할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줘야만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공짜라고 하니까 효율성을 따지지 않고 전부 하려고 한다. ▶남기명=지방자치단체장이 중앙에서 무슨 사업을 가져오지 않으면 주민들은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인식해 버린다. 자유경제구역은 인천만으로 족할 것을 다른 지역도 지정되니 여러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균형발전이 아니라 ‘특성 있는 발전’이 돼야 한다. ▶이하경=지방분권이 되지 않아 지방이 겪었던 피해가 있는가. 새 정부 초기 국가 어젠다로 추진을 ▶박성수=전남 지역은 ‘개천에서 용 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불우하거나 다문화 가정 등 사회적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학용품이나 방과후 수업을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행정자치부가 지방세와 세외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지자체에 대해 교육경비 보조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도록 해 전남 22곳의 시·군 중 16곳이 교육경비 보조 예산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열악한 농어촌 교육 여건을 외면한 조치다. ▶강기춘=분권 피해도 적지 않다. 이전에는 중앙정부에서 하던 국도 관리를 지방으로 이양했는데 이를 지방비로 하게 되니 재정 부담이 된다. 권한 위임으로 발생하는 비용은 중앙정부가 줘야 한다. ▶강성철=부산은 해양도시·항만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실상 해양과 관련된 중추 역할이나 권한은 다 중앙정부가 갖고 있다. 지역에선 항만 건설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해운회사 구조조정의 경우 직원들이 다 부산에 있고 업무도 부산에서 이뤄지는데 구조조정은 본사가 있는 서울에서 결정됐다. 지방이 해운산업에 대한 권한을 행사할 수 없기에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이하경=지방분권을 위해 헌법에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하나. ▶남기명=헌법에 많은 조항이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지방자치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기만 해도 성공일 것이다. ▶강성철=국가와 지방의 역할 배분은 ‘보충성의 원리’에 따라야 한다. 지역의 문제는 우선적으로 지역이 담당하고, 이를 진행할 수 없을 때 중앙이 도와준다는 의미다. 보충성의 원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헌법과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 모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분권에 대해 강력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리=정재홍 기자, 김혜진(연세대 대학원 사회복지학2) 인턴기자 hongj@joongang.co.kr

    2017.04.25 01:58

  • [시론] 미래 위해 나무 심는 교육 대통령 기대한다

    [시론] 미래 위해 나무 심는 교육 대통령 기대한다

    정제영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이번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많은 교육제도가 급격하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 공약을 살펴보면 대입 제도를 포함해 고등학교 유형과 고입 제도, 학제 개편과 교육부 폐지 등 교육제도의 전면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공약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정책이 모두 중요하지만 교육정책은 많은 국민의 관심사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교육열을 갖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뜨겁다. 대통령 선거는 교육 공약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인받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 과반수의 찬성을 받기도 어려울뿐더러 과반수의 국민이 지지했다고 해서 모든 교육 공약에 대해 찬성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교육 분야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공약은 대학 입시와 고등학교 정책이다. 학부모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제도이기 때문에 유권자를 겨냥한 공약으로는 안성맞춤이다. 대학 입시는 11명의 대통령 교체 기간 동안 14차례의 큰 변동이 있었다. 대입 전형의 요소는 정부가 관리하는 국가고사,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대학별 전형, 고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내신 성적으로 구성되는데 전형 요소의 비중을 달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가고사는 연합고사·자격고사·예비고사·학력고사를 거쳐 수능시험으로 변해 왔다. 대학별 전형은 대학별 고사, 본고사, 논술, 면접, 입학사정관제, 학생부 전형으로 바뀌어 왔다. 10년 전에는 세 가지 전형 요소를 고르게 반영하기도 했는데, 학생의 입장에서 세 가지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불렸다. 이번 대통령 선거의 논점은 수시 선발과 정시 선발의 비중을 어떻게 할 것인지인데, 결국 국가고사와 대학별 고사의 비중에 관한 정답 없는 논쟁이다. 고등학교 유형과 입학 전형의 변화 역시 선거의 단골 공약으로 제시돼 왔다. 1974년 고교 평준화 제도의 도입부터 시작해 과학고·외국어고·국제고 등의 특목고 제도 도입, 자립형 사립고, 공영형 혁신학교, 개방형 자율고, 자율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기숙형고, 마이스터고 등 많은 고등학교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외고와 자율형 사립고 폐지, 고등학교 선발 방식의 변경이 공약으로 제시됐다.   선거 결과에 따라 급격하게 변하는 교육정책은 교육 당사자들에게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학부모들은 교육정책에 대한 예측을 아예 포기하고 있다. 각급 학교와 교사들은 이미 교육 개혁 피로감이 수십 년간 누적돼 있다. 실제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교육부의 공무원들은 정권 변화에 맞춰 정책 방향을 바꾸다 보니 영혼이 없다는 비판을 듣는다.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는 논할 수준도 안 된다. 우리나라 헌법 제31조 제6항에는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교육제도 법정주의’라고 한다. 교육제도의 기본적인 사항은 대통령이 정하지 말고 국민의 대표 기관인 국회에서 법률로 정하고 신뢰받는 제도를 만들라는 게 헌법의 명령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동안 수많은 교육제도가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대통령령·교육부 부령으로 정해지거나 심지어 교육부의 내부 규정으로 만들어져 시행됐다. 대입 전형은 시행하기 3년 전에 정할 수 있고, 고교 입학 전형은 시행하는 당해 연도에 정하도록 돼 있다. 헌법 정신에 맞지 않게 정치적 영향을 심하게 받는 시스템은 교육정책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결과적으로 교육 당국을 불신하게 만드는 원인이었다. 대선후보들에게 올바른 교육정책 추진을 위한 제언을 하고 싶다. 첫째, 교육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입법 과정을 통해 안정적인 교육제도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 교육정책을 기획하는 사회적 합의기구인 국가교육위원회(미래교육위원회·교육미래위원회)가 제안됐다. 위원회를 통해 논의된 교육제도의 틀이 법률로 제정돼 추진되도록 해야 한다. 둘째,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제도가 예고되고 안정적으로 지속돼야 한다. 국민의 신뢰를 받는 교육제도의 운영을 위해 최소한 중학교에 입학하는 시기에 학생 본인에게 해당하는 고입 전형과 대입 전형이 결정돼 있어야 한다. 셋째,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때에는 우선 교육 현장에서 시범 적용을 통해 우수사례를 만들고, 이를 점차 확산해 가는 현장 중심의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학생과 교사는 실험대상이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들을 전국적으로 실험하는 과오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넷째, 미래 사회 변화에 대비해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과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시행해야 한다. 국가 수준에서 반드시 추진돼야 할 교육복지 정책, 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학교교육의 혁신, 저출산에 대비한 대학 구조개혁, 대학 교육과 연구의 국제 경쟁력 강화 등에 대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 임기 내에 성과를 내려는 조급한 교육정책은 반드시 실패한다. 당장의 열매를 바라지 않고 미래를 위해 나무를 심는 교육 대통령을 기대한다.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2017.04.24 02:49

  • [대선 3차 TV토론] 하위후보 토론 주도, 1·2위 입장 들을 기회 적었다

    [대선 3차 TV토론] 하위후보 토론 주도, 1·2위 입장 들을 기회 적었다

    서정건 경희대·장훈 중앙대 교수, 윤석만 변호사,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왼쪽부터) 등 ‘리셋 코리아’ 정치분과 위원들이 23일 TV 토론회를 보고 있다. [장진영 기자] 23일 열린 세 번째 대선후보 TV토론을 지켜본 중앙일보·JTBC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정치분과 위원들은 “지지율이 낮은 후보들이 토론 초반을 주도해 1, 2위 후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유권자들의 희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정치분과 위원 4명은 정치·외교안보 분야 대선후보 TV토론의 관전평을 위해 이날 중앙일보에 모여 후보들의 의견 전달력과 정책 콘텐트, 상황 대처 능력을 평가했다. 현장 평가에는 정치분과장인 장훈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윤석만 변호사,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참여했다.  ◆“하위 후보들이 토론 지배”=장 교수는 “1, 2위 후보가 하위 후보들과 같이 토론하는 방식이 문제다. 이 때문에 후발 후보들의 공격적 토론이 사실상 토론회를 지배하는 결과를 낳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서 교수는 “후보들끼리만 토론하게 하면 배가 산으로 간다. 토론 방식을 변경해야 한다”며 “대통령 후보 토론을 보는 것 같지 않고 방송사 심야 토론을 보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이번 토론은 사회자의 역할이 거의 없는 토론의 문제점을 보여줬다”고 꼬집었다. 온라인으로 토론 평가에 참여한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주제와 다른 내용, 상대 후보 비난으로 심도있는 정책 토론은 없었다"며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주요 후보에 대한 검증이 5명 후보 토론회로는 어렵기 때문에 주요 후보 토론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보다 과거 말해”=윤 변호사는 “후보들이 지난 두 번의 TV토론보다는 토론 능력이 나아졌으나 여전히 앞으로 당선되면 어떤 정책을 펼쳐나가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기보다 상대 후보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장 교수는 “미래보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토론이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토론 방식으로 자유 토론을 정했는데 후보들이 자신의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과거 이야기만 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토론 때 발언 되풀이”=장 교수는 “문 후보의 개성공단 확대와 관련한 홍 후보의 질문과 문 후보의 답변은 지난 19일 토론 때와 똑같았다. 시간 낭비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결정 논란과 관련해 문 후보는 지난 19일 2차 대선 토론 때와 마찬가지로 했던 ‘찾아봐라’ ‘지난번 토론 때 말했던 내용이다’는 식의 대응을 했다”고 평가했다. 윤 변호사는 “문 후보는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등으로 청와대에 5년간 근무했는데 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안 후보가 토론 초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와 관련해 당론을 변경한 것에 대해 분명하게 이야기했고,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의 역할에 대해서도 당선 후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밝힌 점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보수의 새 희망인 유승민 후보가 안보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 의아했다”고 말했다. 온라인으로 토론 평가에 참여한 전성 변호사(통일분과 위원)는 "문 후보는 송민순 회고록 관련 공세가 정직성과 신뢰성의 문제로까지 확전되는 것을 막아내고 '색깔론' 공방 수준에서 차단하므로써 중대한 고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단순히 '색깔론'이라고 맞받아치는 데 그치고, 냉전시대적 안보관과 구분되는 변화된 시대의 새로운 안보 철학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안 후보는 진보·보수, 영·호남의 민심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중도통합적 정체성'의 제시라는 당면 최대 과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유의미한 시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홍 후보와 유 후보는 모두 지엽말단에 매몰되어 보수층이 자존감 회복의 근거로 삼을만한 새롭고 큰 보수의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홍 후보는 벗어나기 힘든 돼지 발정제 문제에 묶여서 인상적인 토론을 전개하지 못했고, 유 후보는 경제 문제에 있어서의 개혁적 이미지와는 달리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구태의연한 냉전 수구적 이미지를 강하게 남겼다"고 평가했다. 그는 "심후보는 주제에 대한 명확하고 깊이 있는 식견을 보이며 토론을 주도하였으나, 노골적으로 문 후보의 호위 무사를 자처하여 진보 정당의 독자성에 의문을 남겼다"고 밝혔다. 정재홍 기자  김혜진(연세대 대학원 사회복지학2) 인턴기자 hongj@joongang.co.kr 다음은 온라인으로 참여한 위원들의 대선 후보 TV 토론 평가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 교수(정치분과 위원) 성범죄 모의 논란에 따른 홍준표 후보 사퇴 요구가 토론회의 첫 번째 화두가 되었다. 뒤를 이어 보수 후보들은 지난 토론회의 주적 논란과 더불어 송민순 문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제2의 안보 논쟁을 이끌었다.  이에 대해 진보후보들은 안보 장사, 주적 개념은 시대 착오적이라며 대응했다.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보수 후보들과 진보 후보들의 연합전선도 형성되었다.  그러나 주제 토론보다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에 몰두하다 보니 지금의 안보위기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해결책을 진지하게 국민에게 설명한 후보가 없어 아쉬웠다.  정치 개혁 주제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 국회, 그리고 검찰 개혁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의원정수에 대한 후보들의 다른 생각이 들어났지만 후보들의 정치개혁안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후보들은 각자의 선거 전략에 따라 주요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공격했다. 문 후보에 대해서는 송민순 문건과 대북관, 안 후보에게는 안보정책 말바꾸기와 박지원 대표의 거취 문제, 홍 후보의 인권관 및 성범죄 모의 논란이 토론의 중심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문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집중 포화에도 여유롭게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자신의 안보와 정치 개혁 철학을 제대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안 후보는 미래에 대해 얘기하자면서도 자신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의 근원을 문 후보로 부각시키려하는 등 주제와 다른 측면에 치중하여 주제에 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아쉬웠다. 홍 후보는 사퇴 요구로 다소 수세적인 자세로 일관했고 기존의 주장과 안보 위기를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유 후보와 심 후보는 상대 후보의 정책적 약점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의 정책적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전략으로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토론회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주제와 다른 내용, 상대 후보 비난으로 심도있는 정책 토론은 없었다. 후보들이 주제와는 상관없이 상대 후보 비방에 많은 시간을 섰다. 현재의 자유토론방식과 더불어 주제별로 후보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방식이 같이 진행되는 것이 후보 차별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는 주요 후보에 대한 검증이 5명 후보 토론회로는 어렵기 때문에 주요 후보 토론회가 필요하다. 전성 법률사무소 창신 대표변호사   전성 법률사무소 창신 대표변호사(통일분과 위원)1. 문 후보는 송민순 회고록 관련 공세가 정직성과 신뢰성의 문제로까지 확전되는 것을 막아내고 '색깔론' 공방 수준에서 차단하므로써 중대한 고비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단순히 '색깔론'이라고 맞받아치는 데 그치고, 냉전시대적 안보관과 구분되는 변화된 시대의 새로운 안보 철학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는 못했다.2. 안 후보는 진보·보수, 영·호남의 민심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중도통합적 정체성'의 제시라는 당면 최대 과제와 관련하여 어떠한 유의미한 시도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3. 홍 후보와 유 후보는 모두 지엽말단에 매몰되어 보수층이 자존감 회복의 근거로 삼을만한 새롭고 큰 보수의 논리를 제시하지 못했다. 홍 후보는 벗어나기 힘든 돼지 발정제 문제에 묶여서 인상적인 토론을 전개하지 못했고, 유 후보는 경제 문제에 있어서의 개혁적 이미지와는 달리 안보 문제에 있어서는 구태의연한 냉전 수구적 이미지를 강하게 남겼다. 4. 심후보는 주제에 대한 명확하고 깊이 있는 식견을 보이며 토론을 주도하였으나, 노골적으로 문 후보의 호위 무사를 자처하여 진보 정당의 독자성에 의문을 남겼다.      

    2017.04.24 02:35

  • [리셋 코리아] 지방자치 성패 가르는 건 부·학력 아닌 주민 네트워크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가 뜨겁다.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 등 지방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도를 바꾸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지방분권·자치의 성공은 법·제도만으로 안 된다. 시민의 참여 의식과 역량이 따라야 한다. 이 점은 미국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이탈리아 연구서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원제 Making Democracy Work:Civic Traditions in Modern Italy)』가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는 1970년을 시작으로 전격적으로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한다. 권한·재정·인사권이 지방으로 이양되기 시작하고 20년이 흐른 후 이탈리아 20개 지역 정부의 성과를 비교한 퍼트넘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한 나라 안에서 같은 시기에 도입된 똑같은 제도임에도 지역마다 성취도에 있어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단순화하면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는 높은 객관적 성취도와 주관적 만족도를 보인 반면, 남부 지역의 경우 그 반대로 낮은 성취도와 만족도를 나타냈다. 왜 동일한 지방자치제도가 북부에서는 성공하고 남부에서는 실패했는가. 이는 제도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요인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동네 민주주의 … 주민에게 마을 사업·예산 결정권 주자  퍼트넘의 연구 결과는 경제적 부와 교육 등 사회·경제적 요인도 답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언뜻 생각하기엔 그럴 것 같지만 잘사는 곳, 많이 배운 곳이라고 지방분권과 자치가 성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퍼트넘은 성공의 근본적 원인을 시민사회에서 찾고 있다. 한마디로 능동적이고 평등주의적이며 공익 지향적인 시민들이 서로 신뢰하고 네트워크를 이루며 의욕적으로 참여하는 시민공동체가 관건이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파편화되고 고립된 사회, 불신의 문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로 점철된 지역, 가령 마피아로 잘 알려진 남부 시칠리아 같은 곳에서는 지방자치제도가 뿌리내릴 수 없었다. 시민공동체가 구축된 곳에서는 주민들의 조직화가 수월하고 이들의 보다 효율적인 공공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정부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또 공동 이익을 위해 협력할 줄 아는 시민성을 소유한 주민들이 정책 실현의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정부 정책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너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덜 ‘시민적인’ 지역의 시민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냉소적인 방관자가 되거나 위계적 후견주의의 그늘 아래서 간청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지방분권과 자치, 오래된 숙제이자 시대적 과제다. 마침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이 모두 지방분권형 개헌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법·제도 도입을 넘어 지역의 시민적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시민사회를 활성화해 풀뿌리 시민정치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광장의 촛불을 동네 안의 시민정치로 이어 가야 한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2017.04.24 02:07

  • [리셋 코리아] 동네 민주주의 … 주민에게 마을 사업·예산 결정권 주자

    [리셋 코리아] 동네 민주주의 … 주민에게 마을 사업·예산 결정권 주자

     ━ 주민 자치 키우자   서울 성북구 주민들이 지난해 타운홀 미팅을 통해 올해 주민 참여 예산사업을 선정하고 있다.[사진 성북구청] 서울 성북동 심우장(만해 한용운 유택)으로 이어지는 길 한편에 마련된 ‘만해의 산책 공원’(591㎡, 약 179평). 지난 20일 찾은 이 공원 내 비탈(165㎡, 50평)엔 분홍색 복숭아나무 21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성북동 주민 40여 명으로 이뤄진 ‘성북동 마을계획단’(지난해 6월 결성)이 지난달 29일 직접 심은 나무들이다. 당초 이 비탈은 잡풀이 우거져 쓰레기 무단 투기로 몸살을 앓아왔다. 경고문으로도 해결되지 않자 동네 주민들은 올 초 나무를 심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런 뒤 마을계획단은 구 예산 3000만원으로 공원 나무 심기(200만원)를 포함해 총 9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북구엔 이런 마을계획단이 20개 동 중 8개 동에서 활동 중이다. 중구에선 전체 15개 동별로 주민 30여 명이 모인 ‘마을 골목 협의체’가 활동 중이다. 동네 골목 환경을 바꾸자는 중구청 제안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주민이 스스로 골목 개선 사업을 정하면 구청에서 행정적 지원을 해주는 식이다. 이 활동으로 한때 광희동 먹자골목(200m 구간, 을지로44길)을 빼곡히 차지했던 ‘에어라이트(풍선형 입간판)’ 30대가 지난달 사라졌다. 다산동 주민(다세대주택 30여 가구)들은 무단 투기로 골치를 앓던 골목 쓰레기 문제를 한 달에 한 집씩 ‘쓰레기 관리 당번’을 둬 해결했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지방자치 성패 가르는 건 부·학력 아닌 주민 네트워크  김정희 중구 골목문화창조팀 주무관은 “과태료 부과 등으로 구청이 단속을 하면 잠시 효과가 있을 뿐”이라며 “주민 스스로 결정하니 문제가 근본적으로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서울시는 올해 25억원을 들여 84개 동에서 주민 참여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주민들이 마을 문제에 직접 나서고 필요한 예산 사업을 자신들이 직접 결정하는 ‘동네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 또는 시·구청이 정책을 결정한 뒤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이 정책을 정한 뒤 위로 전달하는 식으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충남도민 400여 명이 참가한 2013년 복지 관련 타운홀 미팅이 열리고 있다. [사진충남넷] 서울시만이 아니다. 충청남도는 올해 천안시 성정1동 주민자치위원회 등 30곳을 ‘충남형 동네자치 시범 공동체’로 선정했다. 공동체에 참가한 주민에게 동네 문제 해결 방법과 사업 비용을 지원한다. 충남은 내년까지 시범 공동체를 1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선 2014년부터 해마다 두 차례씩 전체 21개 동을 돌며 ‘더 좋은 자치공동체 주민회의’가 열린다. 주민들이 마을 의제를 정한 뒤 주민회의 때 모여 토론과 투표를 한다. 여기서 정해진 방향대로 구청이 사업을 진행하는 식이다. 현재까지 회의에 오른 의제만 700건이 넘어섰다. 시민 참여 유도 위해 ‘흔적 남겨주기’ 해야  그러나 ‘동네 민주주의’가 정착되려면 보완돼야 할 대목이 많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주민 모임이 특정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로 전락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전체 주민의 의견과 동떨어져 목소리 큰 사람들의 이권 사업으로 변질될 수 있어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주도는 지난해 7월부터 읍·면·동 주민자치위원을 추첨 방식으로 뽑고 있다. 중앙일보·JTBC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시민정치분과 위원인 신용인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민자치위원은 지역 유지의 감투이거나 행정의 하부 기관장 자리가 돼선 안 된다. 추첨제는 관청과 가까운 특정인이 자리를 독차지하던 관행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마을 문제에 관심을 갖는 주민들의 지속적인 참여 유도는 시민 참여 정치가 성공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사활적 문제다. 전문가들은 ‘흔적 남겨주기’를 제안한다. 김의영(시민정치분과장)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주민 참여 예산제(주민이 직접 사업 예산을 편성하는 제도)가 활성화된 브라질은 주민 제안으로 놀이터가 만들어지면 그들의 이름을 놀이터 명패에 새겨줘 참여 의지를 북돋는다”고 말했다. 지자체 앱, 홍보 아닌 온라인 공론장 활용을 그래픽: 김영옥기자 yesok@joongang.co.kr  정보기술(IT)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주민 참여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 회사 근무 등으로 주민 모임에 참가할 시간이 부족한 주민이 많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평소 느끼던 동네 문제점을 말할 수 있는 ‘온라인 공론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조희정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현 지자체별 애플리케이션을 지역 홍보용으로 쓸 게 아니라 주민 공론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앱상에서 주민들이 정말로 관심 있는 생활 정치 의제를 발견할 수 있고, 주민·정부의 소통도 수월해져 주민 만족도가 높은 제도 개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이런 변화는 IT 강국인 한국에선 정부·지자체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시민 정치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들이 동네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이론 지식을 쌓아주자는 의미다. 이지문(정치학 박사) 연세대 SSK 연구교수는 “시·구청들은 주민 대상으로 스포츠·교양 프로그램만 운영할 게 아니라 헌법·인권 등을 가르치는 ‘정치 아카데미’를 적극적으로 열어야 한다. 수료자에겐 주민자치위원 선정 시 우선권을 주는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서울대는 2015년부터 학생들이 동네 현장을 찾아가 동네 민주주의의 보완점을 직접 찾은 뒤 그곳 주민과 소통하는 수업을 진행 중이다. 전문적인 동네 일엔 공동체 지원센터 필요  동네 문제를 해결하려다 보면 시민 교육으로 감당할 수 없는 전문성이 필요한 사업이 있을 수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간 지원조직 운영’이 활성화돼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신용인 교수는 “전문가 네트워크를 갖춘 마을공동체지원센터 등에서 주민들이 사업 시행 전에 상담·조언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이런 센터가 관공서의 하부 조직이 되지 않으려면 센터장 임명 동의와 해임 건의권 같은 인사권을 주민에게 주는 방식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동네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동네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데 이견을 낸 전문가는 없다. 김의영 교수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국민들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직시했다.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어 자신의 목소리를 낸 게 직접 민주주의의 한 모습”이라며 “전국에 동네 민주주의가 정착돼 국민 개개인의 목소리를 담을 때 국정 운영이 한 단계 도약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최상연 논설위원, 조한대 기자, 정인철 인턴기자 choisy@joongang.co.kr

    2017.04.24 02:06

  • [리셋 코리아] 베드타운 된 혁신도시, 혁신의 실험실로

    [리셋 코리아] 베드타운 된 혁신도시, 혁신의 실험실로

    지난해 연말 기준 105개 공공기관이 10개 혁신도시 이전을 완료했다. 혁신도시는 지역 인재 채용이나 지방세 세수 증대 등에 기여하고 있지만, 베드타운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가족동반 이주 비율이 낮고, 산·학·연 협력 사업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날 콘퍼런스에 참여한 혁신가들은 혁신도시를 명칭 그대로 ‘혁신의 실험실’로 바꾸자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일명 ‘혁신도시 2.0 프로젝트’다. 강수훈 광주창업지원네트워크 사무처장은 “소규모 기업도시 수준에서 벗어나서, 혁신도시가 특정 신산업의 국가적 혁신을 이끌어내는 실험 마당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혁신도시 2.0 프로젝트의 핵심은 ‘신산업 산·학·연 클러스터’다.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의 산업 특성과 해당 지역의 전략 산업을 일치시켜서, 특정 지역을 신산업 허브로 키우자는 주장이다.  혁신도시 2.0프로젝트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혁신도시의 일환으로 한국전력공사·한전KDN 등 전력 관련 공공기관이 본사를 나주로 옮겼다. 이곳에 자리한 전력 공공기관은 전기차의 에너지원인 전력 기술에 투자해 원천기술을 확보한다. 광주시청·자동차산업밸리사업추진위원회 등은 행정 지원을 하고 광주과학기술원(GIST)과 기아자동차는 ‘기아차 채용 조건형 계약학과’를 운영하는 식이다. 이색 제안에 대해 문재인·심상정 캠프는 동의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채이배 안철수캠프 정책본부 공약단장은 “취지에는 동의하고, 구체적 방법론에는 이견이 있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로 승격하고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승격하는 식으로 지방정부 입법권을 강화한 다음,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혁신도시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게 채 단장의 설명이다. 다만 이종훈 유승민캠프 정책본부장은 “혁신도시 2.0 프로젝트는 국가가 주도할 수 밖에 없는데, 하향식 정책은 한계가 있다고 보고 민간이 주도할 수 있는 지역 육성 정책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희철 기자

    2017.04.24 01:00

  • [리셋 코리아] 대기업에 기술 빼앗긴 중소기업에 직접 고발권 주자

    [리셋 코리아] 대기업에 기술 빼앗긴 중소기업에 직접 고발권 주자

     ━ 여시재 대선 정책 포럼   재단법인 여시재가 23일 서울 신촌 르호봇 G 캠퍼스에서 개최한 ‘한국 사회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한 콘퍼런스.’ 혁신가 100여명이 대선 후보 캠프에 정책을 제안했다.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김형탁 심상정 캠프 조직2본부장, 이종훈 유승민 캠프 정책본부장, 채이배 안철수 캠프 정책본부 공약단장, 하승창 문재인 캠프 사회혁신·사회적경제위원회 공동위원장, 이원재 재단법인 여시재 기획이사. [전민규 기자]‘중소기업의 기술 보호제, 창업 초기 사무공간 제공, 과학기술의 역할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 구성’. 적어도 이 세 가지 제안은 차기 정부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23일 열린 ‘한국사회 혁신생태계 조성을 위한 콘퍼런스’에서 제안된 여러 정책 중 대통령 후보를 낸 4당 정책 책임자들이 이 세 가지 정책에 대해선 이견 없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이날 콘퍼런스는 여시재·중앙일보·사회혁신공간 데어 등이 주최했다. 벤처기업·사회적기업·비영리단체·연구원 등 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100여명이 사전 협의를 통해 제안한 정책에 대해 문재인·안철수·유승민·심상정 대선후보캠프 정책 최고 책임자가 후보들의 의견을 내놨다. 주최 측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캠프 정책 담당자도 초청했지만 홍 후보측이 응하지 않았다. 일단 차기 정부에선 누가 되던 중소기업 기술을 보호하는 제도가 등장할 전망이다. 황승익 한국NFC 대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빼앗는 하도급법 제도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3년~2015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접수받은 하도급법상 기술탈취 혐의신고는 14건에 불과하다. 황 대표는 “대기업에 기술을 뺏겨도 소송하면 고작 1000만원 받는데다, 대기업은 형사처벌도 안 받는다”고 말했다. 대기업이 벤처 기술을 탈취하면 징벌적 손해배상, 과징금 부과(5억원)와 함께 형사처벌을 해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핀테크·자율주행차 2년 간 규제 없애야 4당 대표는 모두 공감했다. 하승창 문재인캠프 사회혁신·사회적경제위원회 공동위원장(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대기업이 벤처기업 기술을 뺏어가면 공정거래위원회만 고발할 수 있지만, (문 후보가 집권하면) 중소기업이 직접 고발할 수 있게 하고, 대기업이 불공정거래를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이 창업 초기 필요한 사업공간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공공 유휴 공간자원 정보시스템’을 구축해서, 놀고 있는 공공기관 공간을 벤처 사무실로 빌려주자는 생각이다. 또 정권 변화에 무관하게 과학기술의 역할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일명 과학의회)를 구성하자는 제안도 등장했다. 이런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4당 정책 담당자는 전원 동의했다. 주로 스타트업 대표들이 제안한 ‘신산업 규제 샌드박스’는 이번 콘퍼런스의 뜨거운 감자였다. 넘어져도 안전한 모래놀이터(sandbox)처럼 신사업이 기존 규제 적용을 받지 않게 해달라는 요구다. 권소진 사회적기업 CHRD 대표는 “자율주행차·핀테크 등 기존에 없던 산업이 태동할 때는 기존 관행이나 규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데, 규제가 혁신을 억제하고 있다”며 “정부가 지정한 특정 산업은 2년 동안 일괄적으로 규제를 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 정책 담당자들은 한 목소리로 “(법적으로 가능한 행위를 규정한) 포지티브 규제를 (불가능한 행위만 나열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김형탁 심상정캠프 조직2본부장은 “샌드박스 때문에 반드시 규제가 필요한 부분을 규제하지 못할 수 있어 면밀하게 검토 중이다”라고 설명했다. 혁신의 전제는 공정한 경쟁이다. 이날 콘퍼런스는 혁신가들이 대기업에게 ‘양보’를 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벤처 생존을 위해 대기업이 일부 기득권을 포기해 달라는 것이다. 대기업 보유 SI업체 계열 분리 주장도   특히 대기업들이 보유한 시스템통합(SI) 업체가 도마에 올랐다. 김병권 사회혁신공간 데어 이사는 “AI·빅데이터·로봇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은 소프트웨어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대기업계열 SI 회사가 계열사 물량을 독점하고 있어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기업 소유 SI업체를 강제로 계열분리해 달라는 주장에 문재인캠프를 제외한 전원이 동의했다. 다만 하승창 공동위원장도 “적극 검토는 하고 있다”고 밝혀 누가되던 차기 정부가 SI 업체를 강제 계열분리할 가능성이 커졌다. SI 계열분리나 기술 탈취 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대기업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대-중소 상생 생태계가 조성되면 결국 대기업도 유리해진다는 이날 콘퍼런스 참석자들의 주장이다.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는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이 경쟁하는 환경이 조성되면 가장 품질 좋은 솔루션만 생존한다. 그럼 대기업도 저렴한 가격에 훌륭한 SI업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하경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중앙일보 주필)은 토론회 인사말에서 “미지의 세계에 뛰어들 수 있는 용기와 결단이 경제 발전을 이끈다”며 “혁신가들이 제안한 정책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없이 즉각 출범할 새 정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청년 사업가들이 대선 후보에 제안한 정책은 지난 4개월여 동안 100여명의 의견을 취합해 추려졌다. 5차례 그룹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수렴했고, 대전·광주·대구 등 에서 워크숍이 열렸다. 여시재 혁신생태계연구팀은 10개 정책을 엄선해, 23일 4당 캠프 정책 책임자에게 이를 전달했다.   ■◆여시재(與時齋) 「지난해 8월 설립된 재단법인이다. 이념·정파를 초월하고 서양(물질문명)과 동양(정신문명)의 문명을 조합해 새로운 지혜를 찾겠다는 취지로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사재 4000억원을 출연해 출범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여시재 초대 이사장,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가 상근부원장이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2017.04.24 01:00

  • [리셋 코리아] 후보들 국정 비전 제시엔 실패 … 심상정·유승민 가장 선전

    [리셋 코리아] 후보들 국정 비전 제시엔 실패 … 심상정·유승민 가장 선전

    지난 19일 열렸던 두 번째 대선후보 TV토론을 지켜본 중앙일보·JTBC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위원 20명은 대체로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선전했다는 분석을 20일 내놨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북한 주적 논란’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대북정책 등에서 명쾌한 설명을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처음 도입된 스탠딩 토론방식에 대해선 “과거 틀에 얽매인 방식보다 진일보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5명이나 되는 후보가 토론회에 참여하다 보니 깊이 있는 검증보다는 입장 확인에 그쳐 아쉬움이 남는다”(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지적도 있었다. 백충현 태양철관 회장은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큰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의 끝장토론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리셋 코리아 교육분과 위원인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토론회를 통해 특별히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거나 새롭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후보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심상정 후보가 소신과 철학을 비교적 잘 드러냈고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국방분과 위원인 김병기 전 청와대 국방비서관은 “유승민 후보가 안보 관련 핵심을 잘 파고들었다”고 말했다. 평가에 참여한 위원 20명 중 14명이 심 후보를, 10명은 유 후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관련기사 문, 끊어지는 말투 설득력 반감 … 안, 손짓·표정 아직도 어색  “문, 4대 1 구조서 선방, 안도 경직 벗어” 후보들이 국정 철학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외교안보분과 위원인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이번 토론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후보자의 자질과 준비를 잘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선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국정 비전에 대한 철학을 확인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통일분과 위원인 이종석 한국건설관리학회 한반도통일건설산업위원장은 “(토론) 전반의 정치·외교·안보 분야에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흘러간 사건에 대한 진실 공방으로 정책 설명 기회를 빼앗겼다”고 지적했다. 통일분과 위원인 전성 변호사는 “문 후보는 자신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얘기하기 어려운 4대 1의 토론 구조 속에서 차분함을 유지하며 대체로 선방했다”며 “한반도 전쟁 위기 대처방안과 관련해 막연한 일반론을 개진한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지금 당장 대선후보들이 공동으로 입장을 표명하자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안한 점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안 후보는 지난번 토론 때의 경직된 모습에서 벗어나 나름의 안정감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박영호 강원대 정치외교학부 초빙교수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좌우파 프레임 논쟁을 전개했고, 유승민 후보를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에 빗대는 등 다소 대통령 후보답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유 후보에 대해서는 “대북 선제타격에 확실한 개념을 견지했다”고 했고, 심상정 후보에 대해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 문제가 미·중 간 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정에서 흥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에 주목한 유일한 후보였다”고 밝혔다.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 절박성 안 보여” 고용노동분과의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후보가 일자리·격차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원론적인 말로 넘어가는 등 청년실업과 같은 일자리 문제가 국민과 청년들에게 얼마나 시급하고 절박한 것인지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보였다”고 지적했다. 같은 고용노동분과의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도 “과연 우리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와 문제 진단의 수준 등에서 후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회의가 드는 답답한 토론이었다”고 토로했다. 경제분과장인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간 관계상 일자리 문제와 재벌 개혁에 관한 토론이 없었던 것은 아쉬웠다”고 말했다. ■평가에 참여한 리셋 코리아 위원 「●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경근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 김병기 전 청와대 국방비서관● 김형철 공군 예비역 중장● 마용철 공공제안연구소장● 박영호 강원대 정치외교학부 초빙교수● 백충현 태양철관 회장● 손영동 한양대 초빙교수●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윤석만 법무법인 여명 변호사● 이광형 KAIST 문술미래대학원장●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 이종석 한국건설관리학회 한반도통일건설산업위원장●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상학 전 민주노총 정책실장●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전성 변호사」  ■평가에 참여한 스피치 전문가 「●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 소장● 김미경 아트스피치 원장● 조에스더 엘컴퍼니 대표● 최영미 나비스피치 원장 ※가나다순」  정재홍 기자 hongj@joongang.co.kr

    2017.04.21 02:30

  • [리셋 코리아] 대통령이 공천도 법원 인사도 개입 못하게 법 바꿔야

    [리셋 코리아] 대통령이 공천도 법원 인사도 개입 못하게 법 바꿔야

    김선택 교수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반을 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파면하는 역사적인 결정을 선고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며 국가원수도 예외일 수 없다는 법치국가 제1의 원리를 확인한 결정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여섯 차례나 대통령을 교체해 오면서도 제왕적 대통령과 정경유착의 폐습이 계속되었다. 이번 결정은 주권자인 국민의 요구와 국민 대표기관인 국회의 소추, 최고 사법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완성된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위대한 승리였다. 향후 어떠한 집권자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는 한국 헌법의 기본 원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며, 정치 권력과 시장 권력은 제자리를 찾아가게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돌아봐야 할 것은 현직 대통령이 사인의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동시에 사익 추구를 광범위하게 도와주었음에도 이러한 사실이 어떻게 철저하게 은폐될 수 있었고 또 그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았을 수 있었는지 하는 점이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야당 의원들과 자주 만나고 토론하는 '소통령' 뽑자  법치국가인 한국에서는 모든 국가기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설치·운영되고, 상호 간에 견제와 균형이 가능하도록 구성된다. 이번 탄핵 결정은 대통령의 헌법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제재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도록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예방할 제도적·비제도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일부에서는 미국의 경우처럼 백악관 법률고문(White House Counsel)이나 연방 법무부 산하의 법무실(Office of Legal Counsel)을 두는 방안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대통령 휘하의 기구로서 대통령의 정책적 의지를 법률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테러 용의자로 장기 구금 중인 무슬림들에 대한 고문을 정당화하는 의견을 내어 심하게 비판을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사정은 우리나라도 비슷하다. 청와대 민정수석 아래 법무비서관실이 있고, 법무부에도 법무심의관실이 있으며, 법제처도 정부에 법률적 의견을 낼 수 있다. 이들이 그동안 엄격하고 공정한 법률적 판단하에 대통령의 의사에 반하는 의견을 낸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공무원들에게 위로부터 내려오는 위법·부당한 명령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광범하게 제도화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하도록 통제하는 방법은 대통령과 수평적 권력 분립으로 맞설 수 있는 국회와 대법원·헌법재판소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첫 번째다. 그러자면 대통령이 국회의원 공천이나 사법기관의 인적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헌법과 법률이 바뀌어야 한다. 다음으로 자유로운 언론과 사법권의 독립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모든 국정행위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고, 언론에 의한 자유로운 감시와 사법기관의 법적 견제가 작동해야 한다. 최근 미국의 지방법원 연방판사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위헌적인 행정명령을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건강한 시민사회야말로 마지막 보루다.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 지식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의 연대활동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의 촛불집회가 증명했다고 지금 전 세계가 소리 높여 증언하고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7.04.19 02:20

  • [리셋 코리아] 야당 의원들과 자주 만나고 토론하는 ‘소통령’ 뽑자

    [리셋 코리아] 야당 의원들과 자주 만나고 토론하는 ‘소통령’ 뽑자

     ━ 이런 대통령 원한다 대선까지 20일 남았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정치분과는 바람직한 차기 대통령의 조건을 놓고 시민들과 토론하는 장을 마련했다. 촛불 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구속을 거치면서 변화하고 진화한 국민의 ‘대통령관’을 알아보려는 취지였다. 20~60대 시민 10명과 정치분과 소속 전문가 7명이 각자 생각하는 바람직한 대통령의 조건을 써 내고 이를 바탕으로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소통’과 ‘책임감’이 차기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핵심 조건으로 집약됐다.   리셋 코리아 정치분과 위원들과 시민 패널은 합동 토론회에서 바람직한 차기 대통령상으로 국민·야당과 소통하고 책임감 있는 지도자를 꼽았다. [박종근 기자]▶장훈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분과장·진행)=참석자들이 꼽은 새 대통령의 조건은 ‘소통하는 대통령’이 압도적이었다. 누구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이세정(59·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 경영기획실장)=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제살리기 법안이 가로막히자 김무성·원유철 의원과 ‘소통’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법안에 찬성하는 이들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법안에 반대하는 야당 의원들과 소통했어야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 해방 반대파를, 오바마는 ‘오바마케어’(건강보험) 반대파를 직접 만나 설득했다. 대통령이 반대파에게 손을 내밀어야 그들도 움직일 것이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대통령이 공천도 법원 인사도 개입 못하게 법 바꿔야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한국에선 오바마가 소통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2013년 미 상원에서 총기규제법이 부결되자 뉴욕타임스는 ‘대통령은 어디 있었나’고 비꼬았다. 민주당 의원 몇 명에게만 전화를 걸어도 통과될 법안이었는데 오바마가 하지 않아 비판한 것이다. 오바마는 대중을 끌어모아 마음을 뜨겁게 하는 소통은 잘한다. 그러나 법안 통과를 위해 의원들에게 전화하는 노력은 부족했다. 의원들에게 자주 전화하고 매일 만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 미국에선 여야가 주고받으며 법안을 만들어 가는 것을 ‘소시지 메이킹(sausage making)’이라 한다. 우리는 이게 없어 국민이 갈증을 느낀다.   2013년 백악관에서 공화·민주당 지도부를 초청해 시리아 사태를 설명하는 오바마 대통령. [중앙포토]▶이세정=대통령이 지자체와 하는 소통도 미흡하다. 사드 배치 결정도 해당 지자체장이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한다. 대통령이 매달 광역자치단체장들과 정례회의를 해야 한다. 또 대통령의 비리 의혹은 독립된 감찰기구가 파헤치게 해야 한다. ▶양현준(26)=박근혜 전 대통령 혼자 얘기하는 것으로 그친 신년 기자간담회에 충격 받았다. 대통령이 기자들 질문에 성실히 답변하는 게 소통의 시작이다. ▶김홍석(41·회사원)=우리 헌법 구조에선 대통령이 소통할 이유가 없다. 미국은 의회가 입법권을 독점하니 대통령이 의원들을 설득해야 하지만 우리는 대통령이 입법권과 거부권을 다 갖고 있어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인사권도 엄청나 청와대 입김이 안 닿는 곳이 없다. 이런 권한들을 제한해야 한다. ▶장훈=두 번째로 꼽힌 새 대통령의 조건은 책임지는 대통령이다. 무슨 의미일까. ▶김홍석=촛불집회로 인해 시민들이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새 대통령도 공약을 어기거나 거짓말하면 바로 탄핵당할 것이다. 확실한 것만 공약하고 집권 뒤 실천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인사청문회 확대도 필수다. ▶이세정=맞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지지 않으면 국민이 언제든 탄핵시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치적·도의적 책임지는 대통령 필요   ▶박기남(59)=새 대통령이 뭐든 할 수 있다는 기대는 금물이다. 일자리도 대통령이 만드는 게 아닌데 후보들마다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이러면 누가 대통령이 돼도 실패를 답습할 수밖에 없다. ▶한고운(20·대학생)=‘과거를 잊지 않는 대통령’이 책임지는 대통령이다. 대선 때 발언·공약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회성 멘트조차 큰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양현준=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대통령도 중요하다.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이 컨트롤타워 역할만 제대로 했어도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이세정=대통령은 자신의 인사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구설에 올랐지만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이유였는데 변명에 불과하다. ▶박예린(20·대학생)=국민은 대통령을 리더라고 믿는다.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신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대통령이 져야 할 책임은 법적·정치적·도의적 책임이다. 박 전 대통령은 법적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나 국민이 원하는 책임은 자신들의 대표로 뽑힌 리더로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이다. 기업도 사원이 문제를 일으키면 사장이 책임을 진다. ▶김창환(50·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 선임연구원)=맞다. 대통령의 책임은 정치적 책임이다. 미국은 9·11 테러 직후 왜 그런 비극을 당했는지 시스템적으로 해명하려 노력했다. 우리는 세월호 사고 당시 책임자 처벌에만 집중했다. 대통령이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다. 국민이 납득할 만큼 시스템이 바뀌지 못한 것도 당연하다. ▶장훈=소통하고 책임지는 대통령이 되려면 청와대 개혁이 필수다. ‘작은 청와대’를 만들 방안은. ▶김홍석=청와대가 경호실만 480명이다. 여성가족부(246명)와 통일부(225명)를 합친 것보다 많은 수다. 비서·안보실까지 합치면 1000명에 육박한다. 너무 비대하다. 청와대 조직을 법률로 제한해 무분별한 인력 증원과 사조직화, 직권 남용을 막아야 한다. 예산도 국회에서 규제해야 한다. 비서실도 10명인 수석을 6명으로 줄여야 한다. 민정·경제·미래전략·교육문화 수석은 정책조정수석 산하로 가도 충분하다. 국민과 SNS 직접 소통은 바람직하지 않아 ▶조윤진(24·대학생)=리셋 코리아의 ‘작은 청와대’ 제안에 아쉬운 점은 제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정말 리셋이 필요한 건 ‘사람’이다. 청와대의 국민신문고도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민원이 올라오면 답변만 다는 하향식 시스템이었다. 어떤 민원은 답변이 달리기까지 500일 넘게 걸렸다. 제도 신설에 앞서 관리자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 ▶박기남=대통령이 SNS로 직접 국민과 소통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참모들과 숙의하지 않은 내용이 걸러지지 않고 나갈 수 있어서다. 대신 기자회견을 정례화하고 의원들과 자주 토론해야 한다. ▶윤석만 변호사=박근혜 정부에서 특별감찰관 제도가 도입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감찰 대상이 대폭 축소돼 국정 농단을 막지 못했다. 제도보다는 제도를 올바로 운용하려는 권력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이희관(65·기업인)=모든 것은 국익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뿐 아니라 국민의 책임도 크다. ▶김동윤(66)=미국도 제왕적 대통령 논란이 많지만 공사를 구분하고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민주주의 문화가 있어 폐해가 적었다. 우리도 의식 변화가 병행되고 의원들의 자질이 향상돼야 한다. 그랬다면 국정 농단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이세정=국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눈물 흘리는 따뜻한 대통령, 그리고 용기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메르스 사태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국립의료원을 찾았지만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방역복을 입고 직접 환자를 만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토론회 참석자 「◆시민 패널=김동윤(66), 김홍석(41·회사원), 김창환(50·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 선임연구원), 박기남(59), 박예린(20·대학생), 양현준(26), 이세정(59·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 경영기획실장), 이희관(65·기업인), 조윤진(24·대학생), 한고운(20·대학생) ◆정치분과 위원=장훈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분과장), 구본상 연세대 통일연구원,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석만 변호사,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성학 서울시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강찬호 논설위원 김혜진(연세대 대학원 사회복지학2) 인턴기자 stoncold@joongang.co.kr

    2017.04.19 02:17

  • [리셋 코리아] 계약직 줄이고 사소한 차별 없애니 회사 매출도 뛰었다

    [리셋 코리아] 계약직 줄이고 사소한 차별 없애니 회사 매출도 뛰었다

    전북 군산에 있는 이스타포트는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의 여객서비스 부문 자회사다. 직원 250명 정도의 중소기업이다. 대다수의 직원은 김포·청주 등 여러 공항에서 탑승 수속과 발권 등의 업무를 한다. 임한별(26)씨는 2015년 11월 이 회사에 인턴으로 입사했다. 원래 이스타포트의 규정은 인턴 6개월, 계약직 1년 후 정규직 전환이었다. 그러나 임씨는 예정보다 빠른 2016년 9월 정규직이 됐다. 회사의 방침이 ‘인턴 후 즉시 정규직 전환’으로 바뀌면서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비정규직도 목소리 내게 '종업원 대표제' 도입하자 이스타포트는 2016년 7월 노사발전재단의 비정규직 고용구조 개선 컨설팅을 받고 60% 이상이던 비정규직 비율을 30%대로 낮췄다.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인건비는 고용노동부의 정규직 전환 지원금을 활용했다. 임씨는 “임금은 물론 무료 항공권 등 복지 면에서 계약직과 정규직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이전보다 훨씬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장영선 관리부장은 “ 신분 때문에 같은 일을 하면서도 벽이 생긴다는 지적이 많아 대승적 차원에서 결정했다” 고 말했다. 컨설팅 이후 이스타포트는 명절 휴가비도 동일한 금액(2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바꿨다. 기존엔 정규직 20만원, 계약직 10만원, 인턴 5만원 등으로 차등 지급했다. 이스타포트의 선택이 주목받는 건 항공·여행업계가 워낙 비정규직 비율이 높고, 정규직과의 격차가 크기로 유명해서다. ‘공항에서 눈에 띄는 사람의 99%는 비정규직’이란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인턴 6개월 후 곧바로 정규직으로 채용된 김지연(27)씨는 “대형 항공사의 비정규직 보다 내 임금과 복지 수준이 더 낫다”고 말했다. 회사도 득을 봤다. 근로자의 소속감과 생산성이 높아진 덕분에 2년 전보다 매출액이 2배 이상으로 뛰었다. 사소한 건 때로 사소하지 않다. 월급 1만~2만원, 밥값 1000~2000원도 경우에 따라선 근로자의 가슴을 후벼파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한국 노동시장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각종 격차를 단기간에 좁히는 건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사소한 차별이라도 없애라”고 조언한다. 기업들은 2010년 설립한 노사발전재단 ‘차별 없는 일터지원단’을 활용할 만하다. 지원단은 기업의 고용차별 여부를 진단하고, 개선 방안을 제시해 준다. 농협중앙회는 컨설팅을 받은 후 지역 농·축협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1만8000여 명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식대와 교통비를 지급하도록 바꿨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정규직에게만 지급하던 위험수당(월 4만원)을 비정규직 근로자에게도 동일하게 주기로 했다. 특별취재팀=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장원석 기자, 이영민(이화여대 언론정보학4) 인턴기자 wolsu@joongang.co.kr

    2017.04.18 02:42

  • [리셋 코리아] 비정규직도 목소리 내게 ‘종업원 대표제’ 도입하자

    [리셋 코리아] 비정규직도 목소리 내게 ‘종업원 대표제’ 도입하자

     ━ 근로자 차별 해소하자  청주공항에서 일하는 김지연씨는 회사가 계약직을 없앤 덕분에 인턴에서 바로 정규직이 됐다. [사진 이스타포트]김규한(30·가명)씨는 2014년 한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별 불만 없이 다녔지만 대기업에 취업한 동기들과의 모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김씨는 “서로의 연봉을 이야기하던 차에 5000만~6000만원이란 소리를 들으니 내 연봉(약 2700만원)은 입 밖으로 꺼낼 수조차 없었다”며 “ 좁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니 더 막막했다”고 말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둔 김씨는 지난해 말 한 지방 공기업에 합격했다. 노동시장에 만연한 격차는 예사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학력별·성별 격차도 그 뿌리가 깊다. 핵심은 임금이다. 올 1월 상용근로자 300인 이상 대기업의 1인당 월 임금은 679만9000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8.7% 늘었다. 그러나 5~300인 미만 사업체는 348만5000원으로 대기업의 51.3% 수준이다. 증가율도 14.7%에 머물렀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높은 청년실업률과 밀접하다. ‘현저한 출발선의 격차’ 앞에서 청년도 대기업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료:고용노동부·한국노동연구원정규직·비정규직 간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 임금을 100으로 봤을 때 비정규직 임금은 2012년 56.6에서 지난해 53.5로 하락했다. 국민연금 가입률, 상여금 수혜율도 정규직의 절반에 미치지 못한다. 계량할 수 없는 차별도 적지 않다. 복지나 연수 기회 등 정규직만 활용할 수 있는 혜택이 수없이 많다.  자료:고용노동부·한국노동연구원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계약직 줄이고 사소한 차별 없애니 회사 매출도 뛰었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의 고용노동분과 위원은 ‘노동시장의 격차를 내버려둔 채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나아갈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일하는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하는데 지금은 약한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고 있다”며 “임금을 포함해 일하는 문화, 근로자 간 관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단 이기주의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상학 한국투명성기구 이사는 “ 정부·기업·노동자 내부의 리더들이 구체적인 행동을 보여줄 때 물꼬가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실행과제1. 종업원 대표제 도입 때가 됐다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격차는 주로 기업 내부의 분배 문제다. 분배가 제대로 이뤄지려면 적절한 협상 테이블이 마련돼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300인 이상(대기업)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53.9%이지만 30인 미만 사업장은 0.1%에 불과하다. 주완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분과장)는 “중소기업은 노조를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도 조합비가 잘 걷히 는 대기업 노조 조직률 제고에만 신경 쓰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마저도 정규직 중심이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이라면 사실상 목소리를 낼 창구 자체가 없는 셈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 다양한 노동자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전체 종업원 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대표를 뽑아야 한다”며 “이를 통해 경영진과 분배의 공정성을 논의할 종업원 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이나 여성이 포함된 대표를 선출해 교섭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행과제2. 여성 고용현황, 보고의무 강화해야   국내 노동시장의 성별 정규직 비중은 남성이 61.5%, 여성이 38.5%다. 반면 비정규직은 여성이 54.9%로 더 많다. 지위부터 차이가 있는 셈이다. 임금 등의 격차도 심각하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 ‘메이드 인 코리아’엔 남녀 차별과 장시간 근로, 비정규직 차별의 산물이란 인식이 있다”며 “윤리적 기업이 생산한 제품에 더 높은 가치를 매기는 시대가 이미 왔고, 한국도 이젠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남녀 격차를 완화하는 시급한 대안으로는 여성 고용 공시제가 꼽힌다. 지금도 일부 기업이 여성 임직원 비율 등을 공시하지만 의무는 아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남녀 간의 임금을 동일한 수준으로 가정해 임금이나 임원 비율, 신규 채용 현황 등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여성 노동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열쇠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실행과제3. 대·중소기업, 초봉이라도 비슷하게 한국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신입사원 초봉부터 차이가 극심하다. 이와 달리 일본은 기업 규모별이든 산업별이든 초봉이 연 27만8000~32만 엔(약 292만~336만원)으로 균일한 편이다. 대기업 스스로 중소기업과의 임금 격차를 일정하게 유지하려 노력한다. 제품의 품질을 보장하는 것이 중소기업 근로자이고, 이들을 피폐하게 만들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어서다. 한국도 대기업이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과 질을 높이는 데 직접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권순원 교수는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일본식 조절자본주의’를 제시했다. 기업별 노조 중심인 일본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하청 관계를 형성하고, 이 덩어리 안에서 자원이 배분·순환된다. 권 교수는 “한국도 대·중소기업이 하청이라는 관계를 통해 발전했고, 경제가 성장할 땐 중소기업도 낙수효과의 덕을 봤다”며 “그러나 지금은 대기업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비용을 하청업체에 전가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한국도 중소기업을 착취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기업 생태계를 지속 성장시키는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종의 연대 임금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어느 정도 눈높이를 맞추려면 기업과 대기업 노조가 중소기업에 주는 납품가를 최대한 낮추고, 이윤을 나눠 먹는 지금의 구조로는 안 된다. 결국 중소기업의 이익이 늘고 신입사원에게 높은 임금을 주려면 대기업이 납품가에 적정한 인건비를 반영해 줘야 한다. 대기업 노조가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통 큰 양보도 절실하다.   실행과제4. 지자체와 함께 클 중소기업 키우자 독일 볼프스부르크는 인구 12만 명의 소도시다. 하지만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 1위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곳이다. 1990년대 후반 경기 침체로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폴크스바겐 경영진은 공장을 헝가리로 이전하려 했다. 지방정부가 중재에 나섰고, 고민 끝에 노조를 비롯한 시민들은 양보를 택했다. 새 공장을 지역 내에 설립하고, 실업자 5000명을 채용하되 연봉을 5000마르크(약 4000만원) 수준에 맞추는 조건이었다. 본사보다 20% 적은 임금이었지만 그들은 안정된 고용을 택했다. 이후 생산이 활기를 띠면서 이들은 2009년 본사 조직에 통합됐다. 상생을 택한 결과 기업과 근로자, 지방자치단체가 위기를 넘긴 셈이다. 결국 격차를 줄이려면 기업이 자체 경쟁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 한국은 대기업 본사가 수도권에 몰려 있고 지방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향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박지순 교수는 “지자체가 말로는 기업 유치를 내세우지만 결국 도로·건물 등 인프라에만 집중한다”며 “지자체가 지역의 특성을 살린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체질을 강화하는 데 더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와 생멸을 함께할 중소기업을 키워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영기 대한산업안전협회장은 “기업과 노조 지도부도 시민과 연대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머리를 맞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장원석 기자, 이영민(이화여대 언론정보학4) 인턴기자 wolsu@joongang.co.kr 

    2017.04.18 02:41

  • [리셋 코리아] 육군 휴전 직후 36개월, 2011년부터 21개월

    [리셋 코리아] 육군 휴전 직후 36개월, 2011년부터 21개월

    군 복무기간은 한국전쟁 이후 꾸준히 줄어든 추세다. 전쟁 중에는 전역제도가 없었다. 그러나 1953년 7월 휴전 이후 4년 이상 장기 복무자는 전역시켰다. 또 육·해·공군의 복무기간은 36개월로 정했다. 이후 병역 부담 완화 차원에서 육군 복무기간은 36개월→33개월(59년)→30개월(62년)로 줄었다. 해·공군은 그대로 36개월을 유지했다.  그러나 68년 1·21사태(청와대 무장공비 침투사건) 후 복무기간은 다시 늘어났다. 육군이 30개월→36개월, 해·공군은 36개월→39개월로 각각 연장됐다. 70년대 베이비붐 세대(1955~63년 출생)의 입대가 시작되면서 병역 자원이 넘쳐났다. 또 본격적인 산업화와 함께 산업일꾼 수요가 많아졌다. 77년 육군이 먼저 3개월 줄어든 33개월이 됐고, 2년 후인 79년 해·공군도 35개월로 줄었다. 84년 육군은 병역 부담을 덜어준다며 30개월로 다시 줄였다. 해군 지원이 줄자 90년 해군이 32개월로 단축했다. 93년 방위병 제도가 없어지면서 병력 자원이 또 남았다. 이에 따라 육군은 복무기간을 26개월로, 해·공군도 30개월로 줄였다. 그러나 해군 지원이 부족하자 94년 28개월로 단축됐다. 노무현 정부 초반인 2003년에는 육·해·공군 복무기간이 각각 24개월, 26개월, 28개월로 단축됐다. 2004년에는 공군이 지원자가 줄어 28개월→27개월로 1개월 더 줄였다. 더 나아가 노무현 정부는 정치적 고려로 현역병 복무기간 단축을 검토했다. 2005년 9월 국방개혁안 보고 때 정부는 북한 핵 문제가 해소되고 군사적 위협이 감소할 것이라고 가정한 뒤 2008∼2016년까지 복무기간을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검토했다. 2006년 육군 18개월, 해군 20개월, 공군 21개월로 정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천안함 폭침 등 도발이 계속됐다. 군은 인구 감소로 병역 자원 부족을 호소했다. 이에 따라 복무기간 감축은 2011년 육군 21개월(해군 23개월, 공군 24개월)로 동결됐다. 특별취재팀=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이철재 기자,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인철 인턴기자 kimseok@joongang.co.kr 

    2017.04.13 02:10

  • [리셋 코리아] 군 PX·취사 등은 민간 아웃소싱, 전투 임무에 집중하자

    [리셋 코리아] 군 PX·취사 등은 민간 아웃소싱, 전투 임무에 집중하자

     ━ 인구절벽 대비한 병역 플랜 만들자   충남 논산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현재 21개월인 군 복무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없다.”(이병), “19개월로 줄여야 한다.”(일병) “사병 월급은 지금 받는 16만원이 괜찮다.”(이병), “5만∼10만원 더 오르면 좋겠다.”(일병), “최저임금 수준인 월 130만원 정도 받아야 한다.”(상병) 서울역 인근에서 현역병들을 대상으로 복무기간과 월급에 관해 물어봤다. 복무기간은 현재 수준이 적절하다고 답하는 병사들과 17∼19개월이 좋겠다는 입장이 비슷했다. 병사 월급은 현재의 16만∼22만원에 만족한다는 의견이 많았으나 최저임금 수준을 요구하는 답변도 있었다. 북한의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 중국과 일본은 군사력 팽창을 멈추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군은 인구절벽 현상으로 2025년 이후에는 병력 48만 명을 유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군 복무기간 단축론은 대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다. 모병제도 공약으로 나왔다.  자료:국방부·국회 미래안보포럼 발표 자료(한국국방연구원 조관호 박사)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육군 휴전 직후 36개월, 2011년부터 21개월 [리셋 코리아] 모병제 전환 중인 대만, 지원자 줄어 고민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국방분과(분과장 정승조 전 합참의장) 위원들은 “병역제도를 선거 때마다 인기몰이를 위해 포퓰리즘식으로 거론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10∼15년 뒤를 내다보는 대안을 제시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현역병 복무기간처럼 안보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자료:국방부·국회 미래안보포럼 발표 자료(한국국방연구원 조관호 박사) 먼저 복무기간을 21개월에서 더 줄이면 전투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병기(전 청와대 국방비서관) 위원은 “한국은 산악·하천·도시에 4계절까지 있어 병사들이 전술을 숙련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며 “ 현행 21개월을 더 줄이는 것은 안 된다”고 말했다. 북한군 병사는 복무기간이 10년이어서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자료:국방부·국회 미래안보포럼 발표 자료(한국국방연구원 조관호 박사) 한국군의 무기가 우수하지만 병력이 더 줄면 2배 이상인 북한군에 대처하는 데 부담이 커진다는 판단이다. 현재 한국군은 62만5000명이지만 북한군은 128만 명이다. 국방개혁 목표로 최소 병력을 52만2000명으로 설정했지만 복무기간 단축(24개월→21개월)과 인구 감소로 이마저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한국군 구조가 근본적으로 취약해진다는 것이다. 민간 아웃소싱하면 일자리 창출 효과도 이에 따라 국방분과에서는 앞으로 축소될 병력구조를 감안해 전투병력을 최대한 보전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1차적으로 현역병은 전투 임무에 최대한 투입하고, 후방부대 비전투분야는 과감하게 민간에 아웃소싱하자는 것이다. 그 방안으로 군 부대의 식당은 민간에게 맡겨도 된다는 생각이다. 그럴 경우 취사병과 부사관 등의 소요가 크게 준다. 부식 차량과 식당 유지비·관리비 등을 고려하면 아웃소싱을 하더라도 비용에 큰 차이가 없다는 계산이다.  또 영내 청소와 군마트(PX), 부대 경계까지 민간에 용역을 줄 필요가 있다. 미국 국방부가 있는 펜타곤이나 일본의 방위성은 민간 청원경찰이 경계를 맡고 있지만 한국 국방부는 현역이 경계한다. 이라크 자이툰부대 사단장을 지낸 정 분과장은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들은 부대 호송까지도 민간인에게 용역을 맡기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미군에는 운전병·취사병·당번병·공관병·경비병 등이 거의 없다. 민간 아웃소싱을 확대하면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를 살리는 효과도 있다. 군과 지역주민 모두 윈윈(win-win)인 셈이다. 민간 아웃소싱을 확대하려면 비전투분야에 근무하는 현역 군인들의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활용해 군대를 확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 군내의 많은 업무를 자동화·무인화하자는 것이다. 경계 로봇과 드론을 활용하면 야간이나 혹한기에도 더 꼼꼼하게 경계·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인식표(군번줄)에 병사들의 혈액형 등 개인 기록을 입력해 두었다가 필요시 원격 진료로 해결할 수 있다. 의경·소방 등 전환복무제 최소화 필요 모병제는 남북이 분단돼 있고 북한과 대치 중인 상황에서는 부적절하다는 게 국방분과 전체 의견이다. 모병제를 실시하면 병력의 질은 떨어지고 예산은 더 들어간다는 것이다. 정 분과장은 “현실적인 위협을 맞대고 있는 나라가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고 강조했다. 모병제는 독일처럼 통일한 뒤에나 검토할 수 있다고 매듭지었다. 병력을 더 확보하는 방안으로 전환복무제를 최소화하자는 방안이 제시됐다. 지난해 의경과 소방 등 전환복무 인원은 1만6700명이다. 연 2만∼3만 명 수준인 청년 빈곤층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이들은 아르바이트 등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경제적 취약계층으로 현재는 군복무 면제 대상이다. 그러나 병무청은 부족한 병력 수급을 위해 이들을 군에 보내는 대신 가족을 위해 생활안정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군을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여군을 더 늘리기 위해선 보직 등 인사 관리를 개선해야 한다. 군 복무를 장려하기 위해 군인에 대한 사회적 예우를 잘해 줘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현역병 예우 차원에서 봉급을 더 인상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세금 등 추가적 부담을 부과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특별취재팀=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이철재 기자,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인철 인턴기자 kimseok@joongang.co.kr

    2017.04.13 02:09

  • [리셋 코리아] 모병제 전환 중인 대만, 지원자 줄어 고민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미국의 병역제도는 안보 여건에 따라 변했다. 남북전쟁과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등 대규모 전쟁 때는 징병제를 택했다. 당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도 전쟁에 나가 화제였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모병제로 전환했다. 징병제에 따른 인종 갈등 등 문제점 때문이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 때에도 모병제를 유지했다. 대규모 전쟁이 아니어서다. 그러나 모병제가 불법 이민자들이 시민권 획득을 위해 전쟁에 참여한다는 윤리 문제가 있고, 소수민족과 저소득층의 입대가 많아 사회적 갈등을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스라엘의 병역제도는 한국과 비슷하다. 안보적 위협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력한 군대를 유지하고자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모든 국민은 36개월(여성 21개월)간 현역 복무하고 44세까지 예비군에 편성된다. 장애인 등 현역 복무 부적합자는 군 행정 업무를 한다. 병역이 면제된 아랍계 시민과 정통 유대교 종교인은 3년(여성 2년)간 병원 등 공공 분야에서 대체 복무를 한다. 대만도 한국과 사정이 비슷해 징병제를 시행하다 최근 모병제로 전환 중이다. 대만은 ‘작지만 강한 군대’ 전략의 군사 개혁에 따라 지난해 1월부터 단계적으로 모병제를 도입하고 있다. 모병제를 통해 첨단 무기를 운용할 정예 인력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내년부터 모병제를 전면 실시할 예정이지만 지원자가 줄어 이미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대만은 모병제로 전환함에 따라 봉급이 올라 예산 부담이 1.5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 일부 국가들은 모병제로 전환했다. 냉전 이후 안보 위협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벨기에를 시작으로 네덜란드·프랑스·독일 등이 모병제를 택했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징병제 도입을 논의 중이다. 특별취재팀=김민석 군사안보전문기자, 이철재 기자, 박용한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인철 인턴기자 kimseok@joongang.co.kr 

    2017.04.13 01:27

  • [시론]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지식재산 정책 만들자

    [시론] 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지식재산 정책 만들자

    이민화창조경제연구회(KCERN)이사장 4차 산업혁명은 지식재산 혁명이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보다 지능적인 사회로 전환되는 4차 산업혁명은 필연적으로 창조성의 산물인 지식재산의 폭발적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4차 산업혁명 관련 핵심 기술의 전 세계 특허가 최근 5년간 12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세계 특허 소송시장이 연간 500조원에 달하고 있음에 주목하자. 기업의 가치가 제조에서 기술을 거쳐 이제 지식재산으로 이동하고 있다. 전 세계 선도 기업들은 지식재산을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오션토모사의 분석에 따르면 S&P 500대 기업의 가치에서 지식재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유형자산을 초과한 지 오래다. 창업도 지식재산을 중심으로 차별화가 진행되고 있다. 2016년 MIT의 구즈만 교수 연구에서 창업 자체는 경제 성장과 관련 없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창업이 아니라 차별화된 창업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동일 연구에 따르면 지식재산을 보유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35배 빨리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재산의 경쟁력은 결국 대학과 연구소 같은 혁신 생태계의 역량에 달려 있다. 결국 혁신 생태계의 활성화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지식재산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혁신 생태계와 산업 생태계의 긴밀한 결합과 선순환을 촉진하는 국가 제도가 4차 산업혁명의 경쟁력이라는 의미다. 특히 결합을 저해하는 규제의 개혁이 지식재산 정책에서도 최우선 과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지식재산은 전통적 개념을 벗어나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인공지능(AI) 발명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지식재산이 나타나는가 하면, 하나의 제품이나 콘텐트에 전통적 개념의 지식재산들이 함께 녹아들어 특허·상표·저작권 같은 전통적 지식재산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닌텐도의 캐릭터(저작권)와 나이앤틱 랩스의 증강현실 기술(특허권)이 융합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한 ‘포켓몬고’가 대표적 사례다. 분리된 전통적 지식재산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지식재산 융합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정책의 통합적 접근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국의 지식재산 정책은 특허와 저작권이 분절화돼 있어 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지식재산 경쟁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범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주요국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선도 국가들은 새롭고 다양한 지식재산을 ‘아이디어 보호’라는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시각에서 접근하기 위해 집중형 지식재산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국은 특허·상표·저작권 등 지식재산권을 통합 관장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은 단일특허제도 출범과 통합특허법원 설립 등 지식재산과 관련한 행정·법체계의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특허청을 지식재산청으로 확대 개편한 영국을 위시해 캐나다·스위스·싱가포르 등도 산업재산권(특허·상표·디자인)과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관련 핵심적 행정 기능을 하나의 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세계 주요 국가는 지식재산을 더욱 강력하게 보호하고 집행하기 위해 최고 통치권자 직속의 지식재산 정책 추진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은 대통령 직속의 지식재산집행조정관(장관급)을 두어 지식재산 보호·집행 정책을 총괄하게 하고 있고, 일본은 총리 직속의 지식재산전략본부를 통해 지식재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기술 발전만큼이나 지식재산제도의 혁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분산된 지식재산권 행정체계와 경직성은 그 자체가 규제의 장벽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신기술은 특허, 캐릭터는 저작권, 명칭은 상표 등과 같이 지식재산이 전통적 경계에서 소관 부처마다 분산돼 운영되기에 포켓몬고 같은 긴밀한 지식재산권 융합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이 어렵다. AI 발명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지식재산 등장에 유연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긴 더욱 곤란하다. 전통적인 지식재산 분류는 아이디어를 효율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편의상 구분한 것이다. 그 경계가 모호한 지금, ‘아이디어 보호’라는 시각에서 지식재산을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는 집중형 행정체계는 분산과 경직성의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국가 지식재산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11년 지식재산위원회를 발족했다. 하지만 범부처 지식재산권 컨트롤 타워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출범 당시와는 달리 위상이 축소됐기 때문이다. 주요국에 비해 늦거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우리의 지식재산권 체제를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선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와 관심이 중요하다. 지식재산집행조정관을 대통령 직속으로 두어 지식재산 정책의 동력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을 벤치마킹하는 것은 어떨까. 지식재산을 강력히 보호해 혁신가가 몰리고, 부를 창출하는 나라가 되기 위해 지식재산 행정체계의 혁신적 통합이 필요하다. 기술 융합을 저해하는 국가 제도의 혁신이 시급한 과제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KCERN) 이사장 

    2017.04.10 02:58

  • [리셋 코리아] 국가 R&D 선정부터 상용화까지, 기업이 이끌게 하자

    [리셋 코리아] 국가 R&D 선정부터 상용화까지, 기업이 이끌게 하자

     ━ 연구개발 ‘관치’ 비효율 이제 그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이 2013년 11월 무인 발레 주차 기술을 시연하고 있다. [중앙포토]국책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2013년 11월 스마트폰으로 자동차를 주차하고, 주차된 자동차를 사용자가 내렸던 위치까지 호출할 수 있는 ‘무인 발레 주차’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차량에 장착된 5개의 카메라 센서와 10여 개의 초음파 센서를 바탕으로 한 이 기술이 향후 완전 자동주차 시대를 열 것이라고 ETRI는 설명했다. 후속 과제 연구를 통해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 기술을 무인 셔틀에 탑재해 운용하는 게 목표라는 말도 덧붙였다. 2010년 당시 지식경제부가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의 목적으로 제시한 164개국 연구개발(R&D) 과제 중 하나였으며 4년간 총 64억원의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이 기술은 개발 성공 뒤 3년이 넘은 최근까지 ETRI 연구실 캐비닛에서 잠을 자고 있다. 성우모바일을 비롯한 5개 중소기업에서 ETRI 기술을 전수해 LG전자와 함께 모듈 양산을 하려 했으나 LG전자의 담당 임원이 바뀌면서 중단됐다. 그사이 무인 발레 주차 기술이 필요한 현대자동차는 2010년부터 자체적으로 자사 양산 차량에 단계적으로 도입했으며 최근 ETRI 수준의 무인 발레 주차 기술 수준에 도달했다.   자료:OECD·세계경제포럼(WEF)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독일 R&D 전략은 기업·연구소 합작품 … 정부는 예산 지원만 ETRI 사업화본부장을 지낸 현창희 연구위원은 “연구 기획 단계부터 기술이 필요한 기업의 참여가 있었다면 혈세 수십억원이 들어간 국책 연구과제가 헛일이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ETRI의 무인 발레 주차는 연간 19조원이 넘는 세금을 쏟아붓고도 제대로 된 성장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 R&D의 대표 사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한국의 국가 R&D 투자는 세계 1위 수준이다. 하지만 투자에 대한 성과는 기대치를 한참 못 미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이런 모습을 ‘코리아 R&D 패러독스’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최근 들어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한국의 과학기술 수용성(새 기술을 흡수해 활용하는 능력) 평가지수는 2012년 세계 180개국 중 18위였으나 지난해에는 28위로 10계단이나 내려앉았다. 기업혁신지수 역시 2012년 14위에서 지난해 20위로 떨어졌다.   자료:OECD·세계경제포럼(WEF)게다가 국가 R&D 과제는 2011년 4만1600건에서 2015년 5만4400건으로 해가 갈수록 잘게 쪼개지고 있다. R&D에 선택과 집중이 이뤄지지 않고 나눠 먹기식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얘기다. 가짓수가 늘어나다 보니 관리·감독할 눈도 덩달아 많아지고 있다.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연구 관리를 위한 전담기관 수는 2009년 10개에서 지난해 22개로 배 이상 늘어났고, 같은 기간 예산도 1조1900억원에서 2조400억원으로 71.4%나 불어났다.   국가 R&D 과제 갈수록 나눠 먹기식 변질 원인이 뭘까. 전문가들은 국가 R&D의 큰 문제점으로 ‘관치(官治)’를 꼽는다. ‘ETRI의 무인 발레 주차’처럼 응용개발 기술에 대한 국가 R&D 과제 기획·선정에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국가 R&D는 관(官)이 주도해 큰 그림을 그리고 나면 산하에 있는 연구 관리 전담기관이 교수와 연구원 등을 불러 모아 세부 과제를 정하고 여기에 출연연구소와 대학·기업 등이 응모해 과제를 따내는 방식이다.   자료:OECD·세계경제포럼(WEF)지난해 8월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 주재로 제2차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열고 인공지능(AI) 육성 방안 등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9대 국가 전략 프로젝트를 선정했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9대 국가 전략 프로젝트는 단 2개월 동안 산하기관들을 쪼아 급조해 만든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며 “기업의 의견도 전문가의 식견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 위원들은 한 나라의 신성장엔진을 발굴하기 위한 국가 R&D가 이 같은 비효율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한국은 거세게 밀려오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어설 수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김태유(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분과장은 “정부가 어젠다를 선정한 뒤 연구 아이템을 공모하는 방식이 여전하다”며 “국가 연구개발 기획과 과제 선정에 기초·원천 연구는 제쳐 놓더라도 응용개발 기술 연구개발만이라도 기술이 필요한 기업이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료:OECD·세계경제포럼(WEF)고영주 한국화학연구원 본부장은 “정부의 연구개발 평가 관행이 양적·단기 성과 위주이기 때문에 연구 성과의 상용화보다는 연구 과제 수주와 논문·특허에만 몰두하는 구조가 돼 버렸다”며 “정부의 예산 지원도 기술 개발이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는 단계까지 지속돼야 한다”고 했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연구개발 지원에 대기업을 배제한다든지 실업이 우려되는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빠지는 등 정무적 요인이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며 “이러다 보니 나눠 먹기식의 형식적 연구개발 프로젝트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환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는 “정부가 앞에서 이끌려 하지 말고 뒤에서 밀어주면서 민간이 주도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 R&D 양적평가 관행에 논문만 양산   중앙일보·JTBC의 시민 의견수렴 사이트 ‘시민 마이크’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보여 주기에 급급한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이 문제인 겁니다. 관료주의가 연구개발 분야에도 만연하다는 뜻이겠죠”(김민****), “공적 자금을 사유재산으로 여기는 도둑놈들이 많아서 그렇겠지요”(Rowa***), “정권이 바뀔 때나 알파고 같은 것 등 분위기에 휩쓸려 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겠죠”(baef****), “자본을 가진 대기업과 투자자들이 단기 성과나 자체 투자에만 급급하지 않고 멀리 내다보고 투자하는 생태계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연구개발에 지금보다 많은 돈을 쏟아부은들 결코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겁니다”(offr***), “기간이 오래 소요되고 막대한 투자를 요하는 기초과학 분야 연구는 국가 주도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기술 개발 등 응용 분야 연구는 해당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 등이 담당하는 것이 맞다.”(박기*****)  최준호 기자·이영민(이화여대 언론정보학 4) 인턴기자 joonho@joongang.co.kr 

    2017.04.10 02:34

  • [리셋 코리아] 독일 R&D 전략은 기업·연구소 합작품 … 정부는 예산 지원만

    [리셋 코리아] 독일 R&D 전략은 기업·연구소 합작품 … 정부는 예산 지원만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세계경제포럼(WEF)의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이 주창한 것이지만, 그 모태(母胎)는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 중심의 첨단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글로벌 생태계를 주도하면서 전통 제조업 중심이던 독일은 국가 경쟁력과 혁신 역량의 위기에 대한 대책이 절실했다. 독일의 대표적 과학 연구기관인 막스플랑크와 프라운호퍼에서도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연구소가 신산업 개발에 기여하는 것이 없다’ ‘과학자들이 연구소를 떠나고 싶어 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왔다. 인더스트리 4.0은 그 고민의 결과였다. 제조업의 완전한 자동생산 체계 구축, 생산 과정의 최적화가 핵심이다. 이를 통해 창의적 기술 개발은 물론 제조업의 경쟁력도 끌어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독일 사회가 맞고 있는 고령화와 인구 감소 문제 역시 이런 전략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국가 R&D 선정부터 상용화까지, 기업이 이끌게 하자 리셋 코리아 4차산업혁명분과 위원들은 인더스트리 4.0 전략의 내용보다 전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독일 정부가 주관해 만든 ‘10대 전진 프로젝트’ 중 하나인 인더스트리 4.0은 독일 제조업과 연구계의 합작품이다. 예산은 독일 연방교육연구부(BMBF)에서 댔지만 자동차 부품기업 보쉬와 과학공학한림원에서 총괄 작업을 하고, 지멘스·BMW·도이체텔레콤 등 대기업들과 연구기관들이 참여했다. 홍성주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연구위원은 “독일은 국가의 연구혁신 전략을 짜는 단계에서부터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전략을 도출해 제조업 혁명을 일궈냈다”고 말했다. 독일은 연구소가 수행하는 개별 국가 R&D 프로젝트에도 기업의 참여가 활발하다. 기업 중심의 응용·개발 연구에 주력하는 프라운호퍼연구소가 대표적 사례다. 프라운호퍼의 연구 예산은 출연금 30%, 공공계약연구 35%, 기업계약연구 35%로 구성되며, 기업은 연구 기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R&D 과제 기획에서 기업의 연구인력을 형식적으로 참여하게 하고는 이를 산·학·연 공동연구라고 표현하는 한국 국가 R&D와는 대조적이다. 국가 R&D 과제를 선정하고 예산을 나누는 방식도 차이가 크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과 같은 국가 R&D의 큰 전략을 짜고 나면, 막스플랑크 같은 연구소에 큰 덩어리의 예산을 던져준다. 개별 과제를 정하고 예산을 배분하는 것은 연구소의 몫이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한국연구재단·산업기술평가관리원과 같은 부처 산하 연구관리 전담 기관을 통해 6만 개에 가까운 개별 과제를 정하고 출연연·대학 등이 과제에 응모하게 한다. 국가 R&D와 기술이 필요한 기업 간의 연결고리가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준호 기자·이영민(이화여대 언론정보학 4) 인턴기자 joonho@joongang.co.kr

    2017.04.10 01:42

  • [리셋 코리아] 중국이 껄끄러워하는 인권에도 목소리 내야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 조치는 도를 넘는 수준이다. 한국 관광 전면 금지 등 정경 분리의 원칙도 저버린 지 오래다. ‘한국에 대한 보복은 정당하지 않다’는 중국 내 비판론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분과위원들은 애초에 원칙 없는 대중외교가 이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중국과의 관계는 꿀단지 속으로 벌이 빠져들 듯 경제적 이익에만 몰입해 한국이 추구하는 원칙과 가치에 대한 주장은 사라져 버렸단 것이다. 그나마도 수교 25년이라는 짧은 기간 레토릭과 의전에 더 집중했다. 위성락 전 주러 대사는 “2008년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었지만, 우리가 ‘하나의 중국’ 정책과 달라이 라마 방한 문제 등에서 중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는 동안, 중국은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 등) 우리의 전략적 이익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각수 전 대사도 “한·중처럼 제대로 된 전략 대화가 없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며 “애초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는 한·미 동맹으로 인한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다”고 비판했다. 호주의 경우를 보자. 호주 역시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호주는 중국에 할 말을 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필리핀-중국 국제중재재판소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있어 필리핀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자 호주 정부는 중국에 판결 준수를 촉구했다. 필리핀 외 성명을 낸 나라는 미국·일본·호주밖에 없었다. 섬나라로서 항행의 자유 원칙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수출 물동량의 30%, 수입 에너지의 90%가 남중국해 수역을 지나지만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중국이 갖고 있지 않은, 상대하기 껄끄러워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규범과 인권, 국제법”이라며 “지금까진 경제 일변도 대중 외교를 해 왔지만, 우리가 우위를 점하는 가치에 있어선 목소리를 내는 균형 잡힌 외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각수 대사는 “중국에 한국을 몰아세울 경우 비용이 이익보다 훨씬 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며 “패악을 일삼는 북한에는 유엔 제재에 국한하고, 방위적 조치인 사드에 대해선 갖은 제재와 압력을 가하는 것에 대해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수정 외교안보선임기자, 차세현·유지혜 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2017.04.06 02:30

  • [리셋 코리아] 미·중 편식외교 탈피, 러·호주·동남아와 네트워크 외교를

    [리셋 코리아] 미·중 편식외교 탈피, 러·호주·동남아와 네트워크 외교를

     ━ 세계 스트롱맨 시대, 외교 체질 바꾸자   임성남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지난달 28일 인도에서 프리티 사란 인도 외교차관(왼쪽 둘째)과 회담하고 있다. 리셋 코리아 위원들은 미·중 편식에서 벗어나 인도·베트남등과 네트워크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 외교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중국이 보여준 무례한 외교적 행태와 무차별 보복 조치는 한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우리에게 한·미 동맹은 무엇이고, 현 시점 한국을 위협하는 세력·국가는 어디며, 이른바 4강(미·일·중·러)을 제외한 국가들이 우리에게 어떤 외교적 의미를 지니는가. 힘의 외교가 판치는 신국제질서 속에서 날로 악화되는 한국의 외교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분과장 위성락 전 주러 대사) 위원들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미·중에 치중된 ‘편식외교’에서 벗어나 우리 외교의 허약 제칠을 바꿔야 한다”고 답을 냈다. 대전제는 좌우 진영이 합의한, 흔들리지 않는 국익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외교안보전략에서 제일 중요한 출발점은 앞으로의 위협이 어디(어느 나라)에서 오느냐를 설정하는 것”이라며 “우리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를 합의하면 방법론에 있어 좌우 진폭을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한국에 가하는 위협의 정도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면 이를 풀기 위한 해법을 찾을 때도 의견 차를 줄이기 더 쉽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외교가 그간 뚜렷한 외교의 핵심 이익(core interest)과 가치, 목표 등을 제대로 정의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장은 “우리 외교는 중심이란 걸 정의해본 적이 없다. 대중국 외교만 보더라도 중국이 펼치는 힘의 외교에 맞설 방향과 목표, 원칙이 없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정권마다 지도자의 이익 안에서 국익을 규정한 나머지 상대국이 지도자만 보고 외교를 하게 만들었다. 5년 주기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엄청난 ‘매몰비용’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는 한국이 추구하는 외교적 가치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과도 연결된다. 한국은 경제 규모 등에 있어 이미 중견국 중에서도 선두 그룹에 있지만, 정작 한국 하면 떠오르는 외교적 ‘가치 브랜드’는 없다. 캐나다의 경우 전통적 국가 안보 개념을 확대해 ‘인간 안보’라는 개념을 추구한다. 캐나다 자국의 안보와 번영이 전 세계 인류의 안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신념이 반영된 것이다. 캐나다는 유엔 평화 유지 임무에 정기적으로 인력을 보내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호주는 중견국 그룹의 선봉장 역할을 맡고 있다. 연합세력 형성에 능하다. 1984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된 사실이 확인되자 이듬해 화학·생물학 무기 수출 통제 조치를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협의하자고 제안했다. 15개국이 이에 동참해 ‘호주그룹’이 결성됐다. 덴마크·스웨덴·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은 개발협력 분야에서 국제 규범을 선도한다. 미국 대 소련의 냉전 구도에서 이들은 하드파워 발휘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으로 국익을 증대하면서도 국제사회의 보편적 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했다. 한국 역시 다른 중견국들처럼 다자외교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해 국익을 증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지금 역내에선 부상하는 중국이 사드 문제로 한국을 괴롭히고, 균형자 역할을 하던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변심’이 의심되는 상황이다. 동아시아의 패권 다툼과 세력 전이 상황에 낀 새우 신세를 한탄할 게 아니라 시야를 넓혀 한국의 외교적 레버리지 확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원군’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인도와 외교·국방 차관 연석회의 ‘만시지탄’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이런 외교 다변화를 ‘네트워크 외교’라고 부르며 일본의 예를 들었다. 윤 원장은 “일본은 미·일 동맹을 굳건히 하면서도 아시아 지역에서 네트워크를 충실히 만들어 가는 전략을 쓴다”고 말했다. 또 “중국 주변 나라 15개국을 합치면 중국보다 인구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모두 크다. 러시아·인도·베트남·호주·유럽국 등과 네트워크를 만들면 중국을 견제할 수도 있다”며 “원사이드가 아니라 네트워크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외교를 해야 전략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중국의 부상은 압도적 비중으로 인해 유럽 내 독일의 부상과는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피하기 위해 중국에 1개 투자를 하면 중국 아닌 지역에도 1개 투자를 하는 일본의 ‘1+1 전략’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베트남 등에 대해선 준동맹 수준으로 관계를 발전시킬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달 28일 한국이 인도와 외교·국방 차관 연석회의(2+2)를 연내 가동하는 데 합의하고,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의 조속한 마무리와 방산 및 관광 분야 교류 증진에 합의한 것은 ‘만시지탄’이라 할 만하다. 일본은 이미 미국·호주·인도와 각각 2+2 채널을 보유하고 있다.  “동맹이라고 요구 무조건 들어줄 순 없어” 분과위원들은 이처럼 외교 다변화를 꾀하는 것과 한·미 동맹을 한국 외교의 주축으로 유지하는 것이 상충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오히려 강고한 한·미 동맹이 중국과 일본에 대한 레버리지를 더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동맹이 만능이던 시대는 지났다.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천명하고 있고, 미·중 양국이 서로의 편에 설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천영우 전 수석은 “동맹의 편에 서긴 하겠지만 무조건 들어줄 수는 없는 것”이라며 “이런 경우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한계점(threshold)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덕민 원장은 “그런 의미에서 새 정부에선 전작권 환수 문제도 제대로 다뤄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방어할 능력을 갖추고 미국에 도움을 줄수 있어야 서로 듬직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며 ‘동맹 업데이트’를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김수정 외교안보선임기자, 차세현·유지혜 기자 kim.sujeong@joongang.co.kr

    2017.04.06 02:30

  • [시론] 한국 대변혁의 7가지 조건

    [시론] 한국 대변혁의 7가지 조건

    신각수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우리는 초고속 불균형 성장 후유증으로 비정상이 겹겹이 쌓인 대사장애증후군을 앓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대통령 탄핵 사태가 그 한 단면이다.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똬리를 튼 각종 비정상을 떨쳐 내지 않으면 국가 과제인 선진 통일 한국 달성은커녕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중국 부상과 북한 위협의 증대로 한반도 환경이 불안정해지고 우리 경제와 안보를 지탱해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또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고 저출산·고령화·도시화로 사회 구조도 큰 변혁을 겪고 있다. 이렇듯 대내외적으로 복잡다기한 문제의 해결에는 정치권으론 안 되고 모든 이해 당사자가 참여하는 범사회적 대응이 요구된다. 이런 관점에서 대한민국 대개혁을 위한 ‘리셋’의 방향을 생각해 본다. 첫째,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빨리빨리’에 쫓겨 절차를 등한시했고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여겼다. 민주주의의 기본은 실체적 적실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있다. 우리는 1987년 민주주의 체제를 쟁취한 뒤 이를 뒷받침하는 민주적 가치와 문화를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 민주 질서는 상호이해·존중·신뢰, 관용과 타협에 의존한다. 그러나 우리는 효율성 추구에만 치중해 초경쟁사회를 만들었고, 우리 편과 적을 구분하면서 패거리 문화에 젖어들어 기본을 망각했다. 이제는 상생사회 건설을 위해 민주주의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둘째, 인본(人本)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고속 성장에 매진하면서 물질주의와 금권주의에 휩쓸렸다. 우리 사회의 작동 원리가 인간 중심이 아닌 물질적 욕구로 치환되면서 많은 폐해를 양산했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경제를 지향하고, 각 분야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과 가치가 우선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양성평등이 모든 분야에 뿌리내리도록 하며, 인명 경시 풍조를 없애 안전한 사회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법치로 돌아가야 한다. 예측 가능하고 공정한 선진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법치에 충실해야 한다. 반칙·변칙이 성행하고 법을 어기는 자가 성공하는 풍토를 청산해야 한다. 법치 부족으로 인한 신뢰 자산의 상실과 사회적 비용은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의 하나다. 입법에 신중을 기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적 인식이 바뀌도록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법 앞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 넷째, 환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환경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토대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자산이다. 중후장대형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는 에너지 다소비국이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세계 9위다. 에너지 해외 의존도가 98%로 에너지 안보도 매우 취약하다.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화를 생활화해야 한다. 전 사회적으로 녹색성장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환경기술 개발을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에 힘써야 한다.   다섯째, 미래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지난 세기 식민지 지배, 분단, 전쟁으로 참담한 비극을 겪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새 국가를 건설하는 힘든 과정에서 민족주의가 국가 발전 동력의 일부가 됐고 힘들었던 과거에 대한 기억의 공유는 공동체의 밑받침이 됐다. 그러나 오늘날같이 국가 생존이 걸려 있는 격변의 시기에는 한정된 국력과 자원을 새로운 미래 패러다임 구축에 써야 한다. 이념 대결의 연장선상에서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를 열어갈 동력 유지에 필수적인 사회 통합을 해치고 국제적 흐름에서도 뒤처진다. 올바른 역사를 위한 진실 규명과 교육은 꾸준히 추구하되 역사와 화해하면서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여섯째, 탈정치하여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처럼 정치가 모든 영역에 침투해 정치화함으로써 본질이 왜곡되는 경우도 드물다. 경제는 경제인, 교육은 교육자, 문화는 문화인, 과학은 과학자가 주역이 되고 행정과 정치는 이를 지원하는 체제가 돼야 한다. 이제 공만 쫓는 동네 축구에서 토털사커처럼 분야별로 정치의 간섭 없이 스스로 맡은 역할을 소화하면서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곱째,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사회는 건전한 개인주의를 넘어 이기주의와 님비현상으로 공동체 의식이 매우 엷어졌다. 양극화로 심화된 빈부 격차, 3불 세대인 청년층과 노후준비가 모자란 노인층 간의 세대 격차, 집중 현상이 심화되는 수도권과 소외·공동화에 힘들어 하는 지방 간의 지역 격차가 공동체의 일체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격차 해소의 출발점은 개개인이 ‘함께, 더불어’의 공동체 의식을 회복함으로써 이해 당사자들의 양보와 타협을 꾀하는 데 있다. 전환기의 위기 상황을 기회로 바꾸려면 철저한 구조적 변화가 요청된다. 우리 모두가 내 안에 있는 비정상을 털어내야 하며, 특히 지도층이 솔선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한다. 비정상의 청산을 넘어 기본을 토대로 ‘제2의 건국’을 한다는 각오로 매진한다면 반드시 선진 통일 한국의 길은 열릴 것이다.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주일대사 

    2017.04.03 03:07

  • [리셋 코리아] 18세 이하 입원진료비, 나라서 95% 보장을

    [리셋 코리아] 18세 이하 입원진료비, 나라서 95% 보장을

     ━ 아동 복지 투자 늘리자 “민구의 꿈이 궁금해요.” 걸그룹 걸스데이의 혜리가 병상에서 민구를 안고 있는 아빠에게 묻는다. 민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빠와 혜리를 번갈아 본다. 민구(11)는 뇌를 다쳐 말을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병을 앓고 있다. 딱한 사정이 나갈 때마다 TV 화면의 자동응답전화(ARS) 모금 액수가 가파르게 올라간다. 2014년 7월 방영된 KBS 1TV의 ‘사랑의 리퀘스트’의 한 장면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이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마다 시청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1997~2014년 868억원을 모금해 의료비·주거비 등으로 지원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외국에서 보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선진국은 아동 진료비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 한국은 이런 제도가 없어 측은지심(惻隱之心·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의존했다. 박근혜 정부는 ‘암·뇌질환·심장병·희귀병 100% 건강보험 보장’으로 제도화를 시도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전신 85% 화상으로 매년 수술을 받아야 하는 민혁(가명·15)군. 오른팔을 잘 쓸 수 없어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사진 김춘식 기자] 2004년 3월 어느 날 한순간의 사고가 인천에 사는 민혁(15·가명)이네 가정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생후 18개월 민혁이가 주방과 연결된 문이 열리면서 펄펄 끓는 가마솥에 빠졌다. 전신 85% 화상이었다. 치료비를 대기 위해 서울의 아파트를 팔았다. 엄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극심한 조울증을 앓는 정신장애인이 됐다. 아빠 박혁기(54)씨는 민혁의 간병과 재활치료를 보조하기 위해 직장을 관뒀다. 민혁이는 매년 수술을 받는다. 지금까지 17차례 받았다. 한 번에 1400만원이 든다. 민혁과 엄마 약값으로 50만원이 나간다. 박씨는 빌딩 청소와 식당일로 월 100만원을 버는데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생계비 지원금(68만원)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금(20만원), 병원이 수시로 연결해주는 수술비 후원금으로 버틴다. 박씨는 “화상 치료비가 건강보험이 안 되는 게 많은 데다 계속 치료해야 하므로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며 “후원금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벨기에 19세 미만은 연간 진료비 최고 78만원만 내면 돼  아동 의료비 지원, 저출산 극복에 도움   ※18세 이하 기준, 본인 부담률 5% 가정했을 경우, 자료: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저출산이 심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민구 같은 아이들이 아파도 걱정 없이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 못지않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복지분과는 세 차례 회의에서 ‘아동 의료비 국가 보장’을 어젠다로 제시했다. 송인한(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분과장은 “국가 보장을 통해 ▶아동 복지 투자 확대 ▶건강지수 향상 ▶출산율 제고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모든 어린이가 사회적·경제적·지리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아동 의료비 지원 정책이 아이에 대한 사회 투자이고, 양육·건강을 사회가 책임진다는 점에서 찬성한다”며 “장기적으로 저출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위원들은 18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 95% 보장(5% 환자 부담)을 선호했다. 여기에는 건강보험 진료비뿐만 아니라 비보험 진료비 비용도 포함한다. 입원이 외래 진료보다 중증도가 높은 점을 고려해 외래 진료비는 제외하자고 제안했다. 김윤 교수는 아동의 한 해 입원진료비(104만 건, 2014년 기준)를 기준으로 할 때 4594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환자 부담률을 10%로 하면 2300억원이 필요하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언제까지 어린이 병원비를 방송 모금에 의지해야 하는가”라며 “건보 재정 흑자(20조원)의 3%인 5000억원이면 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6세 미만 무상 입원 실패 답습 말아야   다만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 불필요한 진료가 늘 수 있는 점을 경계했다. 2006년 6세 미만 무상 입원을 시행했다가 전년에 비해 비용이 11.7%(6~10세는 7.3% 증가) 늘어 2년 만에 폐지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자는 뜻이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공공전문진료센터로 지정된 어린이병원의 중증 진료비에 한해 지원하되 연간 환자 부담을 100만원으로 묶자”고 제안했다. 진미정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희귀병과 중병 치료비 지원에 집중하되 가족의 간병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보 재정 20%는 국고 지원 자료:각 후보, 국회예산정책처 *건보 재정 20%는 국고 지원 자료:각 후보, 국회예산정책처중앙일보·JTBC의 시민 의견 수렴 사이트인 ‘시민마이크’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18세 이하 (무상 의료) 지원은 너무 나간 것 같다. 15세 이하가 적당하다”(아이디 dlwl****), “5세→10세→15세로 단계적으로 확대하자”(memu****), “재정을 고려한다면 단순 의료비 지원은 논란이 예상된다. 주기적 건강검진 지원이나 돌봄·재활서비스 등을 단계적으로 지원했으면 한다”(anan****)고 제안했다. 반면 조모씨는 “무릉도원에 핀 복숭아꽃 같은 얘기”라며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보건복지전문기자, 추인영·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2017.04.03 01:50

  • [리셋 코리아] 벨기에 19세 미만은 연간 진료비 최고 78만원만 내면 돼

    외국에선 아동 의료를 무상으로 보장해주거나 진료비 상한선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공 의료가 발달한 유럽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지난해 말 발표된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벨기에는 19세 미만에게 본인 부담 상한제를 적용한다. 아동은 원칙적으로 진료비를 연간 650유로(약 78만원, 2015년 기준)까지만 내면 된다. 이를 넘어가는 비용은 국가가 모두 부담한다. 제도의 혜택을 받은 아동은 한 해 1만1226명(2013년 기준)으로 적지 않다. 프랑스는 16세 미만에게 본인 부담금 경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은 어른처럼 ‘주치의’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주치의가 아닌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건강보험 혜택을 진료비의 70%까지 받을 수 있다. 의사 선택의 폭과 혜택이 상대적으로 넓은 것이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18세 이하 입원진료비, 나라서 95% 보장을  이탈리아는 저소득 가정의 6세 이하 아동에게 본인 부담금을 전액 면제해준다. 16세 이하와 장애인·희귀질환자 등 취약 계층은 치과 진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영국은 16세 미만 아동이 약 처방을 받을 경우 본인 부담이 전혀 없다. 또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유아·청소년의 치과 진료는 모두 무료로 이뤄진다. 일본도 아동 의료를 적극 보장한다. 중앙 정부는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거나 장애가 있는 아동의 진료비를 대부분 보장해준다. 우리나라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적어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거의 없다. 지원 체계도 질환별·증세별로 세분화해 우리보다 보장해주는 폭이 넓다. 김한석 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는 “일본은 건강보험으로 거의 모든 치료를 보장할 수 있다. 중증이거나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아동도 기저귀 등 소모품 비용을 빼면 거의 무료로 진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일본은 비용 지원 외에 인프라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어린이병원에는 진료 수가를 올려줘 수익성을 맞춰주고 시설 설치도 지원한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면서 치료·간호를 받을 수 있는 재택 의료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꼭 필요한 아동 의료를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다만 감기 같은 경증 질환의 치료비까진 정부가 따로 지원해주지 않는다. 이런 진료는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재정 여건이 괜찮은 지자체를 중심으로 아동 진료비를 전혀 받지 않는 ‘무상 의료’가 이뤄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상 의료에 가까운 국가에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종종 부작용으로 나타나곤 한다. 입원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하는 등 꼭 받지 않아도 되는 의료서비스를 추가로 더 받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김한석 교수는 “일본에서도 응급실이 공짜라서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편하게 드나드는 풍경이 나타나곤 한다. 의료비를 완전 무상으로 하면 모럴 해저드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섬세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보건복지전문기자, 추인영·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2017.04.03 01:29

  • [리셋 코리아] 해외 첨단인력 끌어들이게 기술창업비자 벽 허물자

    [리셋 코리아] 해외 첨단인력 끌어들이게 기술창업비자 벽 허물자

     ━ 신통상정책으로 4차산업혁명 이끌자   말레이시아 쿨림 첨단산업단지 세계 첨단산업의 메카인 미국 실리콘밸리.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라면 하나같이 놀라는 사실이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첨단 인력의 근 절반이 외국 출신이라는 점이다. 2015년 현재 45%가 해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다. 첨단 분야 내 외국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곳은 실리콘밸리뿐이 아니다. 스타트업 업체 내 외국인 비중이 53%에 달하는 런던을 필두로 싱가포르(52%), 베를린(49%) 역시 해외 인재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듯 해외 인재를 끌어모으는 한편 세금 감면 등 온갖 혜택을 주면서 첨단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선진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오래전 제쳤다고 여기는 동남아 국가도 집약적인 노력으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관련기사 [리셋 코리아] 최첨단 기업엔 법인세 면제 … 말레이시아, 외국인 투자 4배 급증  단적인 사례가 말레이시아에 자리 잡은 ‘쿨림 첨단 산업단지(Kulim Hi-Tech Park)’다. ‘동남아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이곳은 해외 인력에 대한 융통성 있는 이주·취업정책 등으로 나날이 커 나가고 있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에서 취업비자를 받은 외국인들의 경험담을 들으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기술창업비자(D-8-4)를 받으려면 국내에 회사를 세우고 사업자 등록을 끝내야 한다. 여기에 지식재산권 보유 및 출원, 발명·창업대전 수상 등 까다로운 조건도 만족해야 한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기술창업비자를 받은 경우가 20건에 불과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 때문에 리셋 코리아 통상분과 위원들은 “첨단산업, 특히 최근 화두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이 같은 인력 이동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제 통상정책이 제품과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데에서 발전해 첨단산업 육성과 같은 정책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열띤 토론 끝에 위원들이 추려낸 신(新)통상정책의 핵심 과제는 세 가지였다. 첫째 국민의 이익, 둘째 첨단산업 발전, 셋째 개도국 지원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선 국민의 이익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의견은 그간에 추진된 통상정책의 과실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때가 많았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이를 두고 분과장인 김현종(전 통상교섭본부장) 한국외대 교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가 인하됐는데도 와인 등 여러 품목의 가격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누구를 위해 FTA를 하는지 자문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칠레, 한·미, 그리고 한·유럽연합(EU) FTA를 막론하고 발효 후 싸질 걸로 기대됐던 품목 중 상당수가 비싸진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칠레산 포도주 몬테스 알파는 관세율이 12.5%에 달했던 2004년에는 3만8000원이었던 게 관세 한 푼 안 내게 된 2009년에는 4만7000원으로 올랐었다. 미국산 오렌지주스·맥주 등도 마찬가지로 관세가 떨어졌는데도 가격은 뛰었다. “이는 중간 유통업자들이 관세 하락 폭 이상으로 가격을 올린 결과로 이 같은 파행은 막아야 한다”고 위원들은 말했다.  자유로운 인적 교류를 통한 첨단산업 육성도 통상정책 차원에서 촉진돼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4차 산업이 성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는 바로 지식이다.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최첨단 지식을 이 땅에 가져오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을 불러들이는 게 최선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범수 KL파트너스 변호사는 “헬스케어·바이오 등 최첨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들이 한국에서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국내외에서 공부한 외국인 인재는 물론 한국과 인연이 없는 해외 전문가라도 우리의 4차 산업혁명에 어려움 없이 진입할 수 있는 프레임을 만들어 통상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데이터 국경이동 금지 풀어야 미래산업 발전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 스마트 팩토리 육성을 달성하려면 주변국들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며 “주변국과의 디지털 단일 시장 구축 및 인적 이동 장려 등을 통해 산업과 통상정책을 연결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이 강조한 대목은 데이터 이동에 대한 규제 완화였다. 송 위원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데이터지만, 현재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은 금지돼 있다”며 “인력과 함께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규제를 풀어줘야 미래 먹거리 산업이 발전한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형편이 어려운 개발도상국을 통상정책을 통해 지원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종범 연세대 교수는 “옛날에는 선진국들이 경제 원조 등으로 가난한 나라를 도왔지만 이제는 FTA를 맺어 후진국 특정 분야의 발전을 돕는 방법을 쓴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개도국과 FTA를 맺을 때는 효율적으로 일을 추진해야 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가급적 많은 나라와 통상협정을 맺는 게 좋지만 그렇다고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와의 협상에 너무 힘을 빼선 안 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FTA 협정의 기본 틀을 만들어 상대 국가에 맞게 수정하면 업무가 훨씬 간편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개도국 지원하는 통상정책 적극 검토해야 한편 신통상정책의 실행 방안으로 제시된 해외 인력의 이주 허용에 대해 중앙일보의 온라인 시민 수렴 사이트 시민마이크(peoplemic.com)에 글을 올린 시민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양하고 우수한 인력은 향후 우리나라의 경쟁력 제고 및 기술산업 발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첨단 분야 인력에 대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민을 허용한 후 점차 그 문호를 개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식의 의견이 나왔다. 심지어 “이미 세계화된 시대에 살고 있는 마당에 허용할지 말지를 이야기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반면 첨단 해외 인력이라고 해서 이민자 문제를 무시해선 안 된다는 반대도 적지 않았다. “‘첨단’이란 단어에 현혹돼선 안 된다”며 “미국·캐나다·프랑스·독일 등이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어떻게 됐는지 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남정호 논설위원 nam.jeongho@joongang.co.kr

    2017.03.31 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