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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 성패 가르는 건 부·학력 아닌 주민 네트워크

중앙일보

입력 2017.04.24 02:07

업데이트 2017.04.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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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지방분권형 개헌 논의가 뜨겁다. 자치입법권과 자치재정권 등 지방의 자치권을 강화하는 쪽으로 법·제도를 바꾸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지방분권·자치의 성공은 법·제도만으로 안 된다. 시민의 참여 의식과 역량이 따라야 한다. 이 점은 미국 하버드대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이탈리아 연구서 『사회적 자본과 민주주의(원제 Making Democracy Work:Civic Traditions in Modern Italy)』가 잘 보여준다.

이탈리아 지방자치 사례 보니
시민공동체 구축된 북부와 달리
마피아 등 위계 있는 남부선 실패

이탈리아는 1970년을 시작으로 전격적으로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한다. 권한·재정·인사권이 지방으로 이양되기 시작하고 20년이 흐른 후 이탈리아 20개 지역 정부의 성과를 비교한 퍼트넘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한다. 한 나라 안에서 같은 시기에 도입된 똑같은 제도임에도 지역마다 성취도에 있어 차이를 보였던 것이다.

단순화하면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는 높은 객관적 성취도와 주관적 만족도를 보인 반면, 남부 지역의 경우 그 반대로 낮은 성취도와 만족도를 나타냈다. 왜 동일한 지방자치제도가 북부에서는 성공하고 남부에서는 실패했는가. 이는 제도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요인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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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트넘의 연구 결과는 경제적 부와 교육 등 사회·경제적 요인도 답이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언뜻 생각하기엔 그럴 것 같지만 잘사는 곳, 많이 배운 곳이라고 지방분권과 자치가 성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퍼트넘은 성공의 근본적 원인을 시민사회에서 찾고 있다. 한마디로 능동적이고 평등주의적이며 공익 지향적인 시민들이 서로 신뢰하고 네트워크를 이루며 의욕적으로 참여하는 시민공동체가 관건이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파편화되고 고립된 사회, 불신의 문화,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로 점철된 지역, 가령 마피아로 잘 알려진 남부 시칠리아 같은 곳에서는 지방자치제도가 뿌리내릴 수 없었다.

시민공동체가 구축된 곳에서는 주민들의 조직화가 수월하고 이들의 보다 효율적인 공공 서비스에 대한 요구를 정부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또 공동 이익을 위해 협력할 줄 아는 시민성을 소유한 주민들이 정책 실현의 일익을 담당함으로써 정부 정책이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시너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덜 ‘시민적인’ 지역의 시민들은 모래알처럼 흩어져 냉소적인 방관자가 되거나 위계적 후견주의의 그늘 아래서 간청자의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지방분권과 자치, 오래된 숙제이자 시대적 과제다. 마침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이 모두 지방분권형 개헌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법·제도 도입을 넘어 지역의 시민적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고 시민사회를 활성화해 풀뿌리 시민정치의 힘을 키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광장의 촛불을 동네 안의 시민정치로 이어 가야 한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모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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