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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맛나요] 고추장 맛 나는 크렘브륄레, 조선간장 향 나는 시저 샐러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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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고급 서양요리다. 그런데 먹으면 한국의 맛과 향이 난다. 국적불명이라고 말하지 말라. 한국에서 한국인 셰프가 한국 식재료를 사용해 만든 요리다. 이른바 ‘뉴 코리안 퀴진(cuisine)’ 혹은 ‘컨템퍼러리 코리안 퀴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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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간장·고추장이 모두 맛을 내는 재료로 활용된 퓨전 한식당 ‘밍글스’의 디저트 크렘브륄레. ‘장 트리오’라고 불린다. [임현동 기자]

 ‘새로운 한국식 창작요리’ 정도로 번역될 수 있을 이런 음식들이 요즘 서울 파인 다이닝(fine dining) 레스토랑의 대세다. 그 핵심에 전통 발효장(醬)이 있다. 찬장 속 간장, 장독에서 퍼온 된장이 재능 있는 셰프들의 손을 거쳐 최고급 드레싱 재료로 탈바꿈했다. 보다 공정하게 말하면 간장·된장·고추장에 힘입어 이들의 요리가 트렌디해졌다. 음식 전문가, 미식 애호가들이 손꼽는 레스토랑 셰프들이 숨은 병기 ‘장맛’을 공개했다.

한국 장맛에 빠진 셰프들 요리 실험
양갈비 잡내를 된장으로 없애고
스테이크를 말린 장아찌로 꾸며
“장 같은 발효음식이 세계적 트렌드”

나쁜 맛은 감추고 풍미 살리는 효과

 “한국의 미식·요리를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너무 이질적이면 거부감이 들잖아요. 익숙한 형태인데 새로운 맛이 나거나 새로운 형태인데 익숙한 맛이 나게 하자. 그래서 한식에 잘 쓰지 않던 재료들에 전통 장을 맞물리는 실험을 많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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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에 5~6시간 재운 뒤 구워내는 ‘밍글스’식 양갈비 숯불구이. [임현동 기자]

 강민구 오너셰프가 이끄는 서울 청담동 ‘밍글스’는 요즘 가장 ‘핫’한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장독대를 모티브로 한 인테리어나 단아한 옹기 접시들은 여느 한정식집 느낌인데, 나오는 건 서양식 코스요리다. 오물오물 씹으니 은근한 조선의 맛이 배어난다. 메뉴판에는 발효초·간장·고추장·된장 등이 쓰인 빈도가 표시돼 있다. 디저트를 포함한 모든 요리에 한 가지 이상 사용됐다.

 통념을 깬 대표 메뉴가 ‘장 트리오’로 불리는 크렘브륄레다. 간장에 피칸을 졸이고 고추장 물에 곡물을 삶아서 바삭바삭 튀겨냈다. 짭짤하고 달콤하고 어딘가 매콤하다. 프렌치 디저트의 대명사인 크렘브륄레의 파격 변신이다. 강 셰프는 “허니버터칩처럼 짭짤하면서 단 맛은 세계 누구나 좋아한다. 이걸 한국식 재료로 풀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일식 레스토랑 ‘노부’ 바하마 지점에서 최연소 주방장으로 일하던 시절 품고 있던 아이디어였다. 미소(일본식 된장)를 활용한 케이크와 크렘브륄레를 서양인들이 즐겨 먹는 데 자극받았다.

 주메뉴는 ‘양갈비 숯불구이’다. 한국인 입맛에 익숙지 않은 양갈비를 된장에 5~6시간 재운 뒤 당을 섞은 장을 발라 비장탄에 구워낸다. 한국식 양념 숯불구이를 양고기에 접목시킨 것이다. 강 셰프는 “장의 쓴맛이 더해져 고기의 나쁜 맛은 감춰지고 풍미가 살아난다”면서 “외국인들도 좋아하는 양고기라 요즘은 관광객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전면에 장을 내세우지 않아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셰프도 많다. 한남동의 ‘앤드다이닝’을 이끄는 장진모 셰프의 경우 장에 대한 접근이 이지적이다. “외관은 단순하지만 맛이 복합적인” 것이 첫째 특징이라고 했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노르딕 스타일에서 활용성이 높은 재료란다. 둘째론 “염도와 풍미가 동시에 강하다”는 점을 들었다. 온전히 쓰면 다른 재료의 풍미를 덮어버릴 정도인데, 이걸 해결하는 데서 그의 창작요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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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다이닝’의 샐러드. 로메인 상추에 조선간장 향미를 살짝 더했다. [강혜란 기자]

 예컨대 샐러드. 시저 샐러드에 흔히 쓰이는 로메인 상추인데 씹어보면 여느 샐러드와 다른 뒷맛이 있다. 조선간장이다. 그 때문에 겉절이 같은 느낌도 난다. 장 셰프는 “극소량의 간장을 넣어 풍미를 더하되 서양식 샐러드 같은 밸런스를 주기 위해 신맛을 레몬과 유자로 조절했다”고 말했다. ‘한국적 뉘앙스’가 풍기는 샐러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채끝살 스테이크의 경우 곁들이는 가니시(garnish·완성된 음식의 모양이나 색을 좋게 하고 식욕을 돋우기 위해 음식 위에 곁들이는 장식)가 말린 장아찌다. 장으로 담근 콩잎과 명이나물을 바삭하게 건조해 바스러뜨려 먹을 수 있게 했다. 장 셰프는 “간장의 짠맛과 감칠맛은 고기의 감칠맛을 높여준다. 단, 간장 향이 너무 세서 고기 향을 해치지 않도록 직접 적용하기보다 사이드디시로 느낌만 줬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이라면 이런 스테이크에서 ‘뭔가 다른 맛’을 느끼는데, 이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한국의 음식 스토리텔링이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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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에 재운 달걀 노른자를 치즈처럼 뿌린 ‘프라이빗 133’의 돼지고기. [강혜란 기자]

 삼청동 ‘프라이빗 133’의 장경원 셰프는 프렌치 혹은 이탈리안식 메뉴를 내면서도 모든 걸 한국 식재료로 시도한다. 그 때문에 치즈 대신 계란 노른자를 된장에 재웠다가 말려서 갈아 쓴다. “달걀 자체가 가진 지방 성분이 발효 향을 만나 고소하면서 감칠맛을 내게 되죠.”

 그의 지론은 지역 재료로 좋은 요리를 하는 것이다. “특히 장은 감칠맛을 강하게 주고 싶을 때 좋은 자연식 재료죠. 전 세계적으로도 발효음식이 트렌드라 외국인들도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한국 장, 세계 연구자·요리사도 큰 관심

 과학자와 요리사가 함께 음식을 연구하는 스페인 알리시아연구소는 2012년부터 한국업체 샘표와 장 연구를 해왔다. 이들의 목표는 한국 장을 종류별로 분석해 유럽 셰프가 활용할 수 있는 가이드를 마련하는 것. 이에 따라 색상표처럼 맛을 설명한 장맵(JANG-MAP)과 함께 응용 가능한 150여 개 레시피가 나왔다. 미슐랭 3스타 셰프인 파스칼 바르보(프랑스) 등 여러 스타 셰프가 한국 장을 활용한 창작요리에 나서고 있다.

 최근 방한한 알리시아연구소 수석 셰프 자우마 비아르네즈는 “장은 한국인에게 너무 익숙하기에 오히려 다른 활용가능성을 못 볼 수 있다”면서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파인 다이닝 셰프들이 다양한 현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좋은 징조”라면서 “연구소는 다른 문화권에도 접목될 수 있는 표준을 마련하고, 맛과 향을 덜 부담스럽게 낮추는 등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음식상식] 사과, 껍질째 먹어야 더 맛있다

사과를 껍질째 먹는 게 좋다고 할 때 대부분은 영양소를 생각한다.
실제 사과 껍질에 든 다양한 성분은 각종 성인병 예방 및 노화 방지에 효과가 있다.
나아가 사과 껍질엔 대부분의 사과 향이 들어 있다. 과일 맛의 90%는 맛이 아니라 향에서 결정된다. 껍질째 먹어야 사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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