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부시가 빌게이츠 살려

중앙일보

입력

'정권교체가 마이크로소프트(MS)를 살렸다. '

빌 클린턴 행정부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MS의 반독점법 위반 행위가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와서 '없던 일' 이 돼 버리고 만 것을 놓고 이런 식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이번 상황은 약 두달 전 항소법원이 MS를 둘로 쪼개라는 1심 판결을 기각함으로써 어느 정도 예견되긴 했다.

결국 미 법무부가 이 소송에서 사실상 완전히 손을 떼기로 한 것은 공화당 정권은 민주당에 비해 자국 기업의 이익 보호에 훨씬 적극적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한 셈이다.

◇ 정권교체로 뒤집힌 소송=지난해 말 미 대통령 선거유세 때 부시 후보는 "기업들의 창의성을 보호해야 한다" 며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해온 MS 분할 방침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공화당 정부는 반독점 규제의 강화를 주장하는 민주당과는 큰 차이를 보여왔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반독점 국장에 발탁된 찰스 제임스도 취임 후에는 말을 아꼈지만 변호사로 일할 땐 "MS의 분할로 소비자들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갈지 확실치 않다" 며 분할에 부정적이었다.

전문가들은 법무부의 이번 결정에 대해 부시 행정부의 '친(親)기업' 성향에다 최근 경기부진에 따른 '기업들 기 살리기' 의도가 어우러진 것으로 보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MS는 1999~2000년 연방의회 및 대통령 선거와 관련, 정치인들에게 모두 4백70만달러의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등 정치권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다.

◇ 백악관은 일단 부인=이런 배경 때문에 이번 법무부의 후퇴를 놓고 말들이 많다.

퍼시픽 크레스트 증권의 분석가 브렌든 바니클은 "정권이 기업편에 가까운 공화당으로 바뀌는 바람에 MS의 회사분할이 무산됐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굳이 회사분할을 하지 않아도 적당한 시정조치를 통해 공정경쟁을 보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백악관은 논란에 휘말리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백악관의 스콧 매클러렌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5일 법무부의 결정을 보고받았지만 결정 과정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고 말했다.

◇ 그동안 소송 어떻게 진행됐나=시발은 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 연방공정거래위원회(FTC)는 MS사가 자사 컴퓨터 운영체제(OS) 윈도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업체들에 불공정한 계약을 강요한다고 보고 조사에 착수했다.

이후 MS는 PC 제조업체들과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들이 경쟁사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막지 않기로 하고 정부측과 타협을 봤다.

독점 논란이 다시 불거진 것은 인터넷 브라우저인 익스플로러의 출시가 계기가 됐다. MS는 97년 9월 익스플로러 4.0을 출시하면서 인터넷 브라우저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자인 넷스케이프를 고사시키기 위해 윈도와 익스플로러의 끼워팔기를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

법무부는 MS에 대해 끼워팔기를 중단시켜달라는 소송을 제기, 1심에서 승소했으나 MS는 승복하지 않고 항소했다.

그러자 법무부와 주정부들은 공동으로 98년 5월 MS에 대해 독점금지법 위반 혐의로 정식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지법은 99년 11월 독점금지법 위반을 인정하는 예비판결을 내린 데 이어 지난해 4월에는 정식 판결과 함께 회사분할을 명령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있은 항소심에서는 독점금지법 위반은 인정됐지만 회사분할을 명령한 1심 재판 결과는 지나치기 때문에 기각한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서울=주정완 기자 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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