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자동차] 일왕 아키히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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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한 때 일본 제국을 움직이던 최고 권력자인 국왕.

제2차세계대전 패배 이후 일본의 상징적 존재로만 남아 있다. 그러나 일본인, 특히 구세대는 국왕에 대한 존경심이 여전히 남다르다.

일본 왕실의 자동차 역사는 그들의 권력만큼이나 화려하다.

일본 왕족의 마이카 1호는 1905년에 수입된 프랑스산 '다라크'다. 당시 독일 황태자 결혼식 때 메이지 국왕의 사절로 갔던 다케히토 왕세자가 들여왔다.

이후 일본 왕실과 국왕은 최고급차인 영국산 롤스로이스와 독일산 벤츠만을 애용했다.

그러다가 54년 현 국왕인 아키히토(明仁.70) 왕세자가 처음으로 자국에서 생산된 차를 탔다. 바로 닛산이 만든 '프린스 로열'이다. 아키히토는 역대 국왕 중에서 자동차를 가장 좋아하고,또 많은 종류의 차를 타봤다.

아키히토는 대학생 시절 궁내에서 운전연습을 한 뒤, 일반인과 같이 보통시험장에서 면허를 땄다.

그는 54년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된 프린스를 직접 운전하기 시작, 모델이 바뀔 때마다 총 9대의 프린스를 구입해 탔다. 최초의 프린스는 자신이 직접 시승한 뒤 생산을 결정할 만큼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대학생 시절 친구들의 차를 모두 몰아볼 만큼 운전을 좋아했다. 이 바람에 경호원이나 경찰을 당황케 하는 일이 많았다. 아키히토는 운전뿐만 아니라 자동차 개조도 즐겨했다. 그가 탔던 프린스는 외형만 그대로이고 내부는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개조했다.

60년대 차 색상으로 유행하지 않았던 녹색을 주문하는가 하면, 부인을 위해 프린스 최고급 모델인 '프린스 그랜드 글로리아'의 뒷좌석을 1백㎜ 늘리기도 했다.

아키히토는 국왕에 즉위한 89년 이후에는 손수 운전을 하지 않았다. 그는 화려하고 낭비하는 것을 싫어해 귀빈 접대나 의전용으로 사용할 때만 왕실 전용 프린스 로열에 몸을 싣는다. 평상시에는 시판차인 닛산 프레지던트나 도요타 센트리 등을 타고 다닌다.

전영선<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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