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 월드컵' 향해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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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는 13일 대전 월드컵경기장 개장식. 주요 인사들이 한줄로 늘어서 있다. 여느 행사라면 테이프 커팅이 있겠지만 그들 앞에는 자를 테이프도 없고, 장갑과 가위를 쟁반에 받쳐들고 선 도우미들도 없다. 대신 1m55㎝ 키의 바퀴로 움직이는 로봇이 등장한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만든 휴먼로봇 ''아미'' . 간단한 말은 알아듣고 대답도 한다.

반도체 칩을 VIP들에게 하나씩 나눠주는 아미. "칩을 앞의 소켓에 꽂으세요" 라는 아미의 지시에 따르자 경기장 현판의 커튼이 걷히고, 오색 풍선이 하늘을 수놓는다.

대전시가 계획하는 개장식 행사다. 내년에 열리는 월드컵은 이처럼 첨단 IT 기술의 경연장이 될 전망이다.

월드컵 개막 전까지 10개 경기장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경기장 안에 무선 랜(LAN.근거리통신망) 시스템이 구축되고, 나라 안 곳곳에서 IT기술 시연 이벤트가 벌어진다.

정보통신부는 ''e-월드컵'' 이라는 기치 아래 월드컵 기간 중 한국이 IT 강국임을 만방에 알리겠다며 각종 행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 손가락 끝마디만한 수신기로 13개국어 동시통역 서비스를 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우리 기술력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겠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축구연맹(FIFA)과 월드컵조직위에는 국내 월드컵 전산 시스템 구축 업체인 쌍용정보통신을 비롯해 많은 업체로부터 IT기술을 활용한 첨단 서비스 제안이 몰려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미아 추적 시스템. 입장할 때 어린이 손등에 작은 반도체 칩을, 부모의 손등에는 그 칩의 고유번호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준다. 아이를 잃어버리면 미아찾기 부스의 단말기에서 스티커의 번호를 입력한다. 그러면 화면에는 경기장 내부 지도와 아이의 현재 위치가 표시된다. 첩보영화에서 모니터 상의 지도에 사람의 위치가 빨간 점으로 나타나는 바로 그 기술이다.

현재 피파와 월드컵조직위는 이런 기술들 중 어떤 것들을 2002년 월드컵에 채택할지 고심 중이다. 월드컵 기간 중 경기장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를 위해 한국통신은 무선 랜과 함께 초고속 인터넷 공중전화도 설치한다. 보통 때 전화로 사용하다가 인터넷을 쓸 때는 접속 단자를 빼 노트북 PC에 연결하도록 돼 있다.

인터넷이 생활의 일부가 돼 버려 ''언제 어디서든''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 수 있는 한국의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경기장에는 또 내부에서만 수신가능한 전용 FM 방송국이 생긴다. 라디오를 들고가 주파수를 맞추면 안내방송과 경기장 자체의 중계를 들을 수 있다.

경 기장을 떠나도 첨단 IT 일색. 정보통신부는 가로 11m, 세로 7m의 초대형 3D TV로 축구 경기를 생중계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3D TV는 입체 방송 영상을 내보내는 기기로 입체영화를 상상하면 된다.

슈팅을 하는데 골키퍼 뒤에 방송 카메라가 있다면, 마치 자신이 골키퍼인 것처럼 공이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TV를 양국에 한대씩 놓고 한국에서는 일본의 경기를, 일본에서는 한국의 경기를 초고속 위성통신망을 통해 입체 영상으로 중계방송한다는 것이다.

또한 월드컵조직위는 경기 개최 도시의 광장에서 가로 15m, 세로 3m의, 옆으로 길쭉한 파노라마 스크린 위에 축구경기를 생중계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축구장이 한 화면에 들어오는 가로.세로 비율로 이런 영상을 만들어내는 기술은 최근 일본 JVC가 세계 최초로 개발, 조직위에 이용을 제안했다.

대전시는 교통에까지 IT를 끌어들였다. 월드컵 개막 때까지 지능형 교통체계를 완성하겠다는 것. 사람 없이도 교통량을 파악해 신호등이 알아서 바뀌고, 시내 곳곳의 교통 상황을 실시간으로 무선 인터넷을 통해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집에서 TV를 보는 시청자들은 디지털 방송을 통해 IT기술의 위력을 만끽할 수 있다. 디지털 방송은 보통 방송과 함께 각종 데이터도 동시에 받아볼 수 있다. 리모컨으로 데이터 방송을 선택하면, 주 화면은 크기가 줄어들고 여백에 선수 프로필 등 각종 데이터가 나타나는 식이다.

KBS 뉴미디어본부 김태환 부장은 "커서로 지금 드리블하는 선수를 클릭하면 그 선수에 대한 자료가 데이터 창에 뜨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 말했다. 유니폼 색이나 등번호 등을 스스로 파악하는 영상인식 기술을 이용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이밖에도 월드컵 개최 전에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 상용 서비스가 시작되므로 외국인들은 휴대폰으로 동영상 인터넷을 즐기는 한국인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과연 그들에게 각인된 한국의 모습이 IT 수출로 이어져 한국 경제가 또 한번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될까.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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