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측 “저쪽서 수정안 거부” 안철수 측 “양보 요구하곤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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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안철수 무소속 대통령 후보가 지난 6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발표한 단일화 합의문 7개항 중 네 번째 항목은 이렇다.

 ‘단일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유리함과 불리함을 따지지 않고 새 정치와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국민의 뜻만 보고 가야 하며 국민의 공감과 동의가 필수적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당시 두 후보는 단일화 추진 시 “유불리를 따지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실제 상황은 정반대다.

 두 후보 측은 첫 TV토론을 앞둔 21일 밤에도 룰 협상을 타결하지 못하고 설전만 벌였다. 문 후보 측은 “안 후보 쪽에서 협상을 타결 지을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두 후보의 지지도를 조사하는 걸로 수정안을 냈음에도 저쪽은 요지부동”이라고 비난했다. 다른 인사는 “안 후보 측 협상팀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문·안 두 후보의 가상대결로 여론조사 설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동어 반복만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안 후보 측은 “문 후보 측이 거짓으로 브리핑을 하고 있다”며 “문 후보 쪽에서 비슷한 수정안을 가져와선 우리에게 양보를 요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날 양측은 ‘역선택’ 문제를 갖고도 공방을 벌였다. 역선택은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이 박 후보가 이기기 수월할 것이라 생각되는 ‘약한 후보’를 골라 여론조사 때 지지한다고 답하는 것을 말한다.

 문 후보 측의 한 인사는 “내게 여론조사 전화가 와서 ‘박 후보와 안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겠냐’고 물으면 (문 후보를 이기게 하기 위해) 박 후보를 대겠다”며 “(안 후보 측이 주장하는 가상대결 여론조사는) 이런 전략적 선택이 가능하므로 불합리한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안 후보 측 관계자는 “역선택을 따지면 (박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를 빼야 하니) 여론조사 샘플 수가 절반 가까이 빠져나간다”며 “역선택을 감수하더라도 가장 선명하게 누가 경쟁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상대결 방식이 이기는 단일화에 적합하다”고 맞섰다.

 야권 후보를 뽑으면서 새누리당 지지층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를 놓고 논란을 벌이는 모습이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EAI)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역선택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하겠지만 두 후보를 찍지 않을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을 판단의 첫째 기준으로 삼아 야권 후보를 결정하겠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결국 양측에서 서로 유리한 조사 방법을 밀어붙이기 위한 명분 싸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양측의 단일화 룰 싸움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과정보다 더 지체된 상태다. ‘단일화 피로’ 현상에 대한 우려가 양 캠프 내에서도 나올 정도다. 10년 전에는 후보 등록 첫날(11월 27일)에서 D-5일인 11월 22일 룰 협상이 끝났다. 여론조사는 24일 실시됐고, 후보가 확정된 건 25일이다. 이번엔 후보 등록 첫날에서 D-4일인 11월 21일까지 룰 협상을 끝내지 못했다. 단일화 설문 문항을 놓고 유불리를 최우선으로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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