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대 끝나나 들끓는 비관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중국 버블 위험 … 미국은 소비 둔화

Why 
컨설턴트 출신 경제학자 해리 덴트

“세계 경제위기 한번 더 남았다
2023년까지 주가·부동산 하락”

해리 덴트

“10년 앞을 내다보기는 쉽다. 1, 2년은 어렵지만….”

 자신만만했다. 해리 덴트(52)는 컨설턴트 출신 경제학자답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세계 경제의 미래를 말했다. 2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대신증권 리서치포럼 강연회에서다. 그가 보는 내일은 밝지 않다. “주식·부동산·금값 모두 떨어지고, 세계 위기도 한 번 더 남았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경제학자와는 달리 그는 인구 변화를 중심으로 경제를 읽는다. 사람의 소비가 결국은 경제의 핵심 동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리가 간단하고 주장은 선명하다. 게다가 지금껏 적중률이 높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 세계 증시의 거품과 일본 장기불황을 족집게처럼 맞혀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예측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고 보는 이유는.

 “미국의 경우 베이비부머(1946 ~ 1964년생)가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나이, 46세를 넘겼다. 베이비부머는 숫자가 가장 많은 세대다. 그들의 자녀가 고교를 졸업한 2007년께 미국의 소비가 정점에 달했다. 이제 그들이 소비를 줄인다. 경제는 위축된다. 이들이 빌린 돈으로 소비를 했다는 게 더 문제다. 앞으로 10년 동안 혹독한 부채 구조조정을 겪어야 할 거다. 디플레이션이 뒤따르게 된다. 세계 경제가 미국 소비 둔화의 충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각국 정부가 돈을 쏟아붓고 있다.

 “경기부양책의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다. 운동선수가 스테로이드를 맞는 것과 같다. 베이비부머가 빚을 줄이기 위해 안 쓰고 저축을 한다. 경제에는 재앙이다. 집값도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개인의 빚 부담은 이미 한계점을 넘어섰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가 아무리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도 사람들 지갑이 닫히면 도리가 없다. 늘어난 정부부채는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세계가 중국경제만 바라보고 있다.

 “유로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둔화되고 있는 중국 수출은 더 타격을 받는다. 중국 경제가 경착륙하고, 부동산 거품이 연달아 터질 것이다. 지금 중국 경제는 사상 최악의 거품이다. 집이나 빌딩, 도로 등에 엄청난 과잉투자를 했다. 시골서 도시로 올라오는 노동인구를 흡수하기 위해서라도 중국 정부는 계속 투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진 중국의 수출, 즉 선진국의 소비가 거품이 터지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될 순 없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면 중국 은행권 부실채권이 급증해, 은행 시스템도 흔들리게 된다.”

 -주요 투자 상품의 전망은.

 “원자재, 부동산, 주식 모두 2023년까지는 하락 추세일 것이다. 다만 하락 추세 안에서 해마다 등락은 있을 것이다. 먹는 것은 줄이기 어려우니 원자재 중 농산물 값은 예외다. 채권은 내년부터 2020년까지 강세일 것이다. 2013년이 채권매입 적기다.(미국 국채 기준) 내년에 미국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아지며 채권수익률이 4% 부근까지 오를 수 있다.(가격 하락) 하지만 이후엔 몇 년 동안 쭉 값이 오를 것이다.”

 -투자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2022년까지 자산시장이 나쁠 것이므로 투자를 하려면 초장기투자자처럼 행동하라. 나라별로는 인도, 한국, 남아공, 아시아, 미국과 일본이 상대적으로 괜찮다. 중국, 남유럽, 러시아는 반대다. 위기가 온다면 단기채 경기방어주 내수주가 낫고 가능한 한 현금을 많이 확보해야 된다. 달러화 표시 자산이 낫다. 2023년 이후엔 다시 신흥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성장기가 온다. 이때는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한국, 미국, 북유럽국가와 헬스케어(건강 관련) 주식이 유망하다.”

김수연 기자

정치가 시장 지배 … 종목 선택 무의미

What
액티브 펀드 종말

시장 지수보다 높은 수익 힘들어
인덱스 등 패시브 펀드 인기

‘왜 종목 선택(stock picking) 시대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을까’.

 미국 경제전문방송 CNBC가 20일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 전통적으로 주식 투자 수익률은 얼마나 좋은 종목을 찍어내는가에 달렸다. 높은 수수료를 내고서라도 단순히 시장(지수)만큼만 수익을 내는 인덱스 펀드 등 패시브 펀드가 아니라, 매니저가 종목을 잘 골라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액티브 펀드를 투자자가 찾는 이유다. 국내에서도 2007년 미래에셋자의 펀드, 2010년 브레인의 자문형랩 등이 시장의 두 배 가까운 성과를 거두며 인기를 끌었다.

 최근엔 사정이 달라졌다. CNBC에 따르면, 미국에서 팔리는 액티브 펀드 가운데 시장(S&P500)보다 나은 수익을 거둔 펀드는 다섯 개 중 한 개에 불과하다. 21일 현대증권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올 들어 13일까지 시장(코스피 지수)보다 높은 수익을 올린 펀드는 10개 중 3개에 그친다.

 개별 기업의 사정에 관계없이 시장에 따라 종목별 주가가 모두 비슷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종목별로 주가가 따로 놀아야, 오르는 종목을 찍어 투자하는 액티브 펀드가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최근엔 시장과 종목이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특히, 지난해 8월 S&P500지수와 각 섹터지수 간의 상관관계가 사상 최고치인 0.73(1에 가까울수록 동조화)까지 상승했다. 미국 벨에어투자자문의 게리 플램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지난 수년간 시장을 지배한 것은 정치”라고 말했다. 정치 이벤트에 따라 시장과 종목이 함께 움직였다는 얘기다.

 그래서 패시브 펀드가 인기다. 어차피 성과는 비슷하니 수수료가 싼 펀드를 고르자는 심산이다. 미국 펀드 시장에서 패시브 펀드 규모는 5년간 44% 급증했다.

고란 기자

글로벌 연기금, 채권으로 대이동 중

How 
그럼 어떻게

영국 연기금 포트폴리오
50년 만에 채권 > 주식

“주식 예찬(cult of equity) 시대의 종말인가.”

 주식을 선호하던 유럽 연기금마저 채권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자 연기금 펀드 매니저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다.

 국내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비중은 지난해 말 현재 23.2%. 채권 비중은 71%에 달한다. 6월 기금운용위원회는 2017년까지 주식 비중을 30%로 확대하는 등 매년 주식 투자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대신 채권은 60% 아래로 낮추기로 했다. 지나치게 안전성 위주로 짜인 포트폴리오를 바꿔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계산이다. 연기금뿐 아니라 사적연금인 개인연금(펀드)도 주식형(42개)과 채권형(38개) 개수가 비슷할 정도로 국내에선 채권 비중이 높다. 그러나 유럽에선 정반대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고 있다. 전 세계 증시 부진으로 주식 투자 수익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연기금 규제 당국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6000여 개에 달하는 확정급여형(DB) 연기금 자산에서 채권과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3%와 38%였다. 채권 비중이 주식을 넘어선 것은 1956년 이후 5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만 해도 채권과 주식 비중이 각각 37%와 41%로 여전히 주식이 우위였으나, 역전된 것이다. 1조7000억 유로를 운용하는 알리안츠의 보험자산 포트폴리오는 주식 비중이 6%에 불과하고 91%가 채권으로 채워져 있다. 20년 전에는 주식 비중이 20%였다. UBS글로벌자산운용에 따르면 1993년엔 영국 연기금 자산 중 주식 비중이 81%에 달하며 정점을 찍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영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아시아 연기금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 들어 증시 변동성이 커지며 채권 수익률이 주식 수익률을 앞지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안혜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