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도 금융도 조선도 … 명예퇴직 잇따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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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경기 침체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일까. 기업들 사이에 명예·희망퇴직이 잇따르고 있다. 지금보다 더 경영환경이 어려워지는 시절에 대비해 몸집을 줄이고 체력을 탄탄히 해놓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대표주자는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자동차업계다. 한국GM은 지난 20일부터 오는 12월 14일까지 5000여 명의 사무직 근로자 전원과 일부 공장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에도 부장급 이상 130여 명을 명예퇴직시켰다. 한 해 두 차례 명예퇴직자를 내보내는 일은 이례적이다.

 한국GM 내부에서는 “하반기 명퇴는 미묘한 시기에 이뤄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명퇴는 미국 GM 본사가 준중형 세단 크루즈 후속 차량(J400) 글로벌 생산 거점에서 전북 군산공장을 제외시키기로 결정한 직후 시작됐다. 크루즈는 한국GM의 대표 상품이었으며, 군산공장이 그 생산기지였다. 이에 따라 자동차업계에서는 GM 본사가 한국GM의 사업 규모를 중·장기적으로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정보기술(IT) 분야에서도 명예퇴직 바람이 거세다. 미니홈피와 도토리를 무기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SK커뮤니케이션즈는 최근 전 직원 1200여 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신청받았다. 현재 300명가량이 지원한 상태다. 이 회사는 지난해 개인정보 누출 파동과 매출 감소로 3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명예퇴직으로 조직을 슬림화한 뒤 그간 경쟁사에 비해 약세로 꼽혔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강화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매출 정체를 겪고 있는 NHN한게임도 덩치를 꾸준히 줄였다. 삼성그룹의 금융 계열사인 삼성화재와 삼성카드도 각각 근속기간 10~12년 이상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 중이다.

 농협중앙회 역시 희망퇴직자 모집 대열에 합류했다. 중앙회는 올해 550명 이상을 퇴직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350명가량이 희망퇴직하던 것에서 60% 이상 늘어난 수치다. 80명이 넘는 임원은 10%가량 줄이고, 비상임이사(25명)도 줄이기로 했다.

 명예퇴직 바람은 업계 1위도 비켜가지 않고 있다. 조선업계 1위인 현대중공업과 레미콘업계 1위인 유진기업이 그렇다. 현대중공업은 만 5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유진기업은 차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각각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명예·희망퇴직은 내년에도 여전히 경기가 불투명할 것이라는 전망이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 미국 경제·시장연구단체인 콘퍼런스보드는 향후 10년간 세계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 것이고, 이에 따라 수출 의존도가 큰 한국은 2013~2018년 연평균 2.4%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분석을 최근 내놨다.

 기업들은 수년치 급여에 해당하는 명퇴 가산금 등을 내걸고 명퇴를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업체를 제외하면 명예·희망퇴직 신청자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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