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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과 안철수, 주도하는 자가 이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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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정욱
정치국제부문 차장

A매치 축구 중계를 보면 숫자가 많이 보인다. TV 화면 위쪽에 양팀의 득점 상황과 진행된 시간이 표시돼 있다. 화면 아래쪽엔 또 다른 시간이 적혀 있다. 어느 팀이 얼마 동안 공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래서 누가 주도권을 쥐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반드시는 아니지만 공을 많이 잡고 있는 팀이 이길 확률이 높다. 지난 9월 미국 대통령 자리를 놓고 진행된 오바마와 롬니 간 TV토론에서도 방송사들은 비슷한 수치를 제공했다. 누가 얼마 동안 말했는지를 초(秒) 단위까지 보여줬다. 말을 많이 한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지만 격렬한 논쟁 위주의 미국 토론 스타일에서 누가 토론을 이끌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문재인과 안철수, 야권 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맞붙은 두 사람이 끝자락에 섰다. 선거는 주도하는 사람이 이긴다. 시대를 꿰뚫는 어젠다가 됐든, 비열한 네거티브가 됐든 비슷하다. 먼저 끄집어낸 사람이 유리하다. 따라가는 사람은 잘해봤자 아류(亞流)이고, 잘못되면 혼탁 선거의 동반자다.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 네거티브가 더 먹히는 이유가 있다. 잘잘못을 분명하게 따지지 않고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라고 보는 정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좀처럼 네거티브에 대한 역풍이 불지 않는다. 역풍이 두렵지 않으면 네거티브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안철수가 출마선언을 한 9월 19일 이후 문재인과 안철수는 한 치도 양보 없는 주도권 싸움을 벌여 왔다. 먼저 안철수가 ‘정치 혁신’의 깃발을 들었다. 4년 전 오바마가 그랬던 것처럼 ‘변화’와 ‘미래’의 키워드를 선점하려 했다. 문재인은 당황했다. 밀렸다. 안철수가 무소속 대통령론을 길게 잡아 쥐고 있을 때 문재인은 기회를 잡았다. “정당기반 없는 국정운영은 불가능하다”며 안철수를 불안한 정치 아마추어로 몰았다. 정권 교체를 갈망하는 호남의 야권 지지자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안철수는 흔들렸고, 문재인은 웃었다.

 안철수는 광주로 내려갔다. 호남 한복판에서 문재인과의 배석자 없는 ‘1대1’ 회동을 전격 제안했다. 단일화 주도권을 빼앗아 오려는 시도였다. 문재인과의 독대에서 안철수는 협상 시작과 함께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새정치 공동선언 협의를 이끌어냈다. 안철수는 다시 올라섰다. 문재인은 유쾌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철수가 ‘단일화 틀’에 진입한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민주당 조직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안철수는 조직 없는 자신에게 조직을 앞세워 대항하는 문재인 방식이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단일화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왔다. 민주당 후보 문재인은 정면으로 받아쳤다. 안철수의 당 혁신 요구엔 이해찬 사퇴로 응수했다.

 두 후보의 숨가쁜 주도권 다툼은 단일 후보가 결정되는 순간까지 이어질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양측 모두 머리를 굴리기 어려운 이벤트가 하나 남았다. 오늘 밤 진행되는 TV토론이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그 결과 국민이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준다면, 그 후보로부터 주도권을 빼앗을 시간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