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린이를 돕자] 피묻은 일회용 거즈 소독해 사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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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세 미만 북한 어린이의 3분의1 정도가 기본적으로 받아야 할 여섯 가지 백신 접종을 못받았습니다. 어린이 환자가 대학병원급 소아과 병동에 가도 링거액(수액제) 주사를 거의 맞을 수가 없어요. 병원 의약품의 약 70%는 전통적인 약초로 만든 것입니다."

사단법인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이사장심재식)가 지난해 말 작성한 '2002 북한 어린이 건강실태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붕괴 상태에 빠진 북한의 보건.의료체계로 북한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인한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당해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없다.

신의주병원 간호사로 일하다 최근 탈북한 김순희씨는 "북한은 무상치료제라고 자랑하지만, 실제는 환자가 장마당에서 약품을 구입해 의사에게 가져가야 치료가 가능하다"며 "일회용 주사기가 부족해 주사바늘만 바꿔 예방접종을 하기 때문에 간염이나 결핵에 걸리는 북한 어린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북한 주민의 병원 이용률은 고작 7%에 불과하다고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이 최근 밝혔다.

2000년 11월 평양제1인민병원 소아병동을 방문한 안양병원 박상은(朴相恩) 부원장은 "병원 관계자로부터 '나비침조차 없어 어린이들에게 주사를 놓을 수 없는 형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치료실은 진료시설이 거의 없어 썰렁했고, 빨갛게 물든 일회용 거즈를 소독해 다시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고 털어놓았다.

북한의 보건.의료체계가 결정적으로 붕괴한 것은 1995~96년에 잇따라 발생한 대홍수 때문이다. 이로 인해 2백98개의 병원.진료소 등이 심하게 파손됐다. 특히 북한의 의약품 생산은 95년 이후 60% 정도 감소했다.

96년부터 북한의 보건.의료분야를 집중 지원해온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金亨錫)사무총장은 "무엇보다 북한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인 설사와 전염성질환 등을 치료할 수 있는 항생제와 링거액 등의 지원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소아과학회에 따르면 비타민 A는 호흡기 질환에 의한 사망률을 50% 이상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5세 미만 북한어린이 1백만명 가운데 3분의2가 급성 호흡기 감염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감안하면 비타민도 충분히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북한 의사들의 의술 수준이 비교적 높다는 것이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한 공영태(公英泰.공안과원장)박사는 "북한 의료진은 수준도 높고 신기술을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했다"고 말했다.

결국 의약품과 의료장비만 지원하면 북한 어린이의 생명은 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건.의료분야의 대북 지원은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2000년 남한의 대북 인도지원액 1억1천4백만달러(통일부 자료) 가운데 보건.의료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2%인 1천4백만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2001년에는 1억3천5백만달러 가운데 14%인 2천만달러로 다소 늘었지만, 북한 어린이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면 크게 부족한 형편이라고 통일부 관계자는 말했다.

公박사는 이에 대해 "식량이나 비료 지원 못지 않게 의약품 지원에 정부나 민간단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용수 기자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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