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미 진지한 대화하라

중앙일보

입력

방미 길에 나선 임성준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의 발걸음이 무겁다.

북핵 문제를 말끔히 해결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데다 정부가 고심 끝에 마련한 대책을 미국이 흔쾌히 수용할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任수석의 임무 가운데는 한국 내 반미 분위기의 실상을 미측에 설명하고, 변화하는 한국민의 정서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포함돼 있다. 任수석이 워싱턴에서 만나게 될 상대의 폭은 넓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에 대한 고려와 함께 任수석의 방미 배경에 대해 이런저런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을 감안할 때 그를 맞는 미 정부 측 자세는 진지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또 국제사회와의 외교 공조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미측 입장이라면 더더욱 한국 정부 특사의 중.러 방문 결과를 갖고 방미하는 任수석과의 대화에 성실하게 임해야 한다.

任수석이 휴대하는 보따리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메시지와 함께 우리 정부의 북핵 대책 대강(大綱)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대안의 큰 그림에는 북한의 핵 안전조치 의무의 즉각 이행을 촉구한 지난 6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특별이사회의 대북 결의안이 갖는 정당성에 대한 한국의 공조 의지가 담겨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또 부시 미 대통령이 같은 날 각료회의에서 재차 언급한 바 있는, 북한과의 대화 의사나 북한을 침공할 의도가 없다는 메시지는 우리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지해 온 입장이다.

결국 한국의 외교안보수석이 미 측에 전달할 메시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정황의 긴박성을 감안할 때 한.미 양측은 상대방의 변화된 국내 분위기와 상황 인식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도록 진력해야 한다.

북핵 해법을 둘러싸고 양측 간에 심각한 견해 차이가 있다거나 미 정부가 주한미군의 부분 철수나 후방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북핵 위기 극복에 도움이 안됨은 물론 한.미 관계의 장래에 흠집을 낼 뿐이다. 한.미 양측의 진지한 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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