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보건의료 공약, 세 후보 모두 낙제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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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새누리당)·문재인(민주통합당)·안철수(무소속) 등 주요 대선 후보 세 명의 보건의료 관련 공약이 이 분야 전문가들의 검증·평가를 받은 결과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16일 한국보건행정·보건경제·병원경영·사회보장 등 보건의료 관련 4개 학회가 공약 검증을 위해 공동으로 연 토론회에서다.

 전문가들은 구체성이 떨어지는 공약이 많은 데다 막대한 필요 재원에 대한 조달 방안이 빈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셋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해당 후보가 내세운 공약의 상당수는 임기 중에 실현하기 힘들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논란의 핵심은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치 공약이다. 현재 63%인 전체 진료비 보장률을 박 후보는 80%, 문 후보는 70% 후반대로 올리겠다고 각각 공약했다. 입원진료비는 문 후보가 90%, 안 후보는 80% 보장을 각각 약속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에 따르면 보장률을 1%포인트 올리는 데만 5000억원이 필요하다. 후보들의 공약을 실현하려면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매년 14조원의 추가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게다가 의료비 부담이 줄면 이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보장률을 약간만 올려도 부담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게 보건학자들의 지적이다.

 그럼에도 후보들이 내놓은 재원 마련 방안은 구체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후보는 재원 마련 방안을 밝히지 않았으며 나머지 후보들은 건보료 부과방식 개선이나 건보료 인상 등을 두루뭉수리하게 제시했다. 수조원의 돈이 드는 공약과 그 재원 마련 방안을 이렇게 대충 제시하고 마는 것은 대선 후보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엄청난 돈이 드는 공약을 발표하려거든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마땅하다. 현재 소득의 5.8% 선인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든, 세금을 더 많이 거둬 국고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을 지원하든 결국 그 재원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은 돈이 많이 들지만 유권자에게 곧바로 생색을 낼 수 있는 의료 부문에 치우쳐 있으며, 보다 합리적인 투자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공중보건 분야 정책은 찾아볼 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의료와 공중보건 사이의 불균형 해소에도 신경을 써야 옳다.

 후보들은 “세 후보 모두 이상적인 정책과 임기 내 달성할 공약을 서로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을 새겨들어야 한다. 공약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물적·제도적 토대를 갖춰야만 실현할 수 있다. 한 나라를 이끌겠다는 인물들이 집권 뒤에 실천도 하지 못할 선심 공약으로 국민을 현혹해선 안 된다. 황당한 선심공약으로 집권하면 결국 정치적·재정적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관료들에게 휘둘리는 원인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 집단인 보건의료 학회들이 관련 이슈의 중요성과 문제점을 이처럼 지적한 것을 계기로 후보들이 공약들을 더욱 충실하게 다듬어줄 것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