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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언제까지 전기료 타령만 할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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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김준술
경제부문 기자

“길었던 터널의 ‘끝’을 향해 달려간다.” 최근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나왔던 종목 보고서다. 주인공은 ‘한국전력’이다. 4년간 쌓인 적자가 10조원을 넘어 아우성치던 회사다. 그런데 돌연 호시절이 왔다는 것이다.

 이유는 한전의 짭짤한 ‘여름철 장사’에 있었다. 지난 14일 발표한 3분기(7~9월) 실적에서 한전은 1조977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사상 둘째로 좋은 성적표다. ‘1조원 이상 클럽’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삼성전자·현대차·포스코 등 재계 간판급뿐이다.

 열등생이 모범생으로 급변신한 비결은 ‘전기료 인상’에 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일제히 꼽은 흑자 배경이다. 한전은 지난해 여름부터 세 번 요금을 올렸고 이에 힘입어 3분기 전력 판매수익이 17%가량 늘었다. 전력난 속에서 ‘전기 소비를 줄이려면 요금 인상이 제격’이라는 논리가 먹혔다.

 그러나 한전이 착각해선 안 될 게 있다. 전기료 인상은 본디 한전의 적자 회복을 위한 장치가 아니다. ‘전력 소비를 줄여 정전사태를 막자’는 범국민적 동의가 출발점이다. 게다가 한전은 9월부터 5개 발전 자회사에서 전력을 사올 때 가격을 많이 깎았다. 요금이 높게 책정돼 적자가 쌓인다는 한전의 불만이 수용된 것이다. 이게 3분기 실적에 반영돼 2300억원가량의 이익 증가효과가 났다. 전체 영업이익의 14%가량이다. 일각에선 ‘한전이 자회사에 적자를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원자력발전소 3기가 멈춰서는 등 내년 2월까지 최악의 전력난이 우려된다. 또 한 차례 전기요금 인상 명분이 생기는 셈이다. 그에 맞춰 한전도 변해야 한다. 뼈를 깎는 자구 노력과 경영 합리화 대책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도 납득 가능하다.

 한전은 그렇다면 걸맞은 노력을 하고 있을까. 지난주 금요일 총리와 지식경제부 장관이 국민에게 ‘동계 전력대책’을 발표하며 눈물겹게 절전을 호소하던 날, 한전 관계자에게 휴대전화를 걸자 이런 대답이 들려왔다. “오늘은 노조 창립기념일이라 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