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자신감 가지면 놀라운 결과 일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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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G 최고경영자(CEO)인 로버트 벤모셰가 사상 최대 공적자금 1820억 달러(약 200조원)를 모두 상환했다. 3년간에 걸친 구조개혁과 회생 작업의 결과였다. [블룸버그뉴스]

미국 보험그룹 AIG 앞엔 꼭 따라붙었던 말이 있다. ‘사상 최대 공적자금이 투입된 부실회사’다. AIG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세금 1820억 달러(약 200조원)를 수혈받고 겨우 살아났다. 1998년 외환위기 때 한국 정부가 투입한 전체 공적자금 160조원보다 많다. 이런 AIG가 최근 공적자금 상환을 완료했다. 마침 일본 도쿄를 방문 중인 최고경영자(CEO) 로버트 벤모셰(68) 사장을 단독으로 화상 인터뷰를 했다.

 -사상 최대 공적자금을 다 갚았다니 축하한다.

 “아주 행복하다. AIG 능력을 보여줬다. 흥미로운 점은 온갖 어려움(구조조정 등)에도 AIG가 여전히 세계 최대 보험회사(자산 5557억 달러)라는 사실이다.”

 - 정부의 신탁통치에서 벗어난 것인가.

 “미국 정부는 AIG의 주주 중 하나였을 뿐 경영에 간여하지 않았다.”

 순간 2009년 벤모셰가 한 독설이 떠올랐다. 그는 월가를 집요하게 공격한 미 의회를 “미친놈들의 소굴”이라고 받아쳤다. 또 구조조정 와중에 그는 회사에 자가용 비행기를 요구해 비난을 샀다. 미 정부가 압박을 가하자 “정부가 내 보수에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미 정부 관료들로서도 통제하기 힘든 존재였다.

 -앞으로 회사를 어떻게 끌고 갈 건가.

 “한국·멕시코·터키·인도네시아 등 보험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을 주목한다. 우리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곳이다. 특히 한국은 보험에 대한 니즈가 높다. 차나 집에 대한 보상은 물론 질병·사고 등에 대한 보장을 원하는 고객이 많다.”

 벤모셰는 아시아를 차세대 성장기지로 생각한다. 공적자금 상환을 계기로 일본과 한국(차티스) 등에서 상호 AIG를 복원시킬 계획이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서 사라졌던 AIG 간판이 곧 다시 걸린다는 얘기다.

 -회생 비결이 한국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본보기가 될 듯하다.

 “자본과 비전 등 기업의 모든 것은 사람(인재)과 직결돼 있다. 비즈니스 리더 중에는 자신의 뛰어남을 휘하 직원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사람이 있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직원이 더 중요하다. 나는 (AIG가 공적자금 신세를 졌다고) 언론이나 정부 관료들이 우리 직원들을 비난하거나 괄시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게 되면 놀라운 결과를 이뤄낸다. ”

 벤모셰는 2009년 위기 해결사로 AIG에 입성했다. 그는 솔직한 소통으로 벽을 허물었다. 그는 AIG 경영을 맡기 앞서 미국 메트로폴리탄생명의 CEO였다. 그는 이 회사를 가입자가 주주인 상호회사(Mutual Company)에서 주식회사로 전환시켜 뉴욕증시에 상장시켰다. 이후 세계적으로 ‘생보사 상장’ 열풍이 불었다. 구조개혁에 선수인 셈이다.

 -그동안 AIG를 어떻게 바꿔놓았는가.

 “AIG 경영을 맡으면서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생명과 손해보험 상품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 구조를 조정했다.”

-AIG를 위기에 빠뜨린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등은 더 이상 팔지 않을 계획인가.

 “계획이 없다. 파생상품 등에 손대지 말았어야 했다. 고객이 한번 방문하면 필요한 모든 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회사를 지향한다.”

 앞으로 보험업에만 전념하겠다는 그의 전략이 성공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단 ‘헤지펀드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가 올 3분기에 AIG 주식을 약 5억 달러어치를 사들였다. 소로스펀드가 보유한 주식 가운데 둘째로 많은 종목이 됐다. 벤모셰 전략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셈이다. 화제를 바꿔 미국 최대 현안인 ‘재정절벽’에 대해 물었다. 월가 30년 베테랑의 해법 등이 궁금했다.

 -재정절벽이 실제 일어날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절벽’이 ‘종말’을 의미하진 않는다. 절벽에서 떨어지더라도 엄청난 물살을 지나면 평온한 물길에 이른다. (추락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떻게 말인가.

 “상위 1%가 더 많은 세금을 낼 수는 있다. 그들은 이미 미국 개인소득세의 37% 정도를 부담하고 있다. 그들에게 세금을 더 거둔다고 재정적자가 해결되지 않는다. 미국인 모두가 은퇴를 늦춰 일을 더 하면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

로버트 벤모셰 1944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뉴욕의 앨프리드대학을 졸업했다. 2010년 뉴욕타임스(NYT)에 의해 올해의 경영자로 선정됐다. 최근 그는 “암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암 종류는 알리지 않았다. 1967년 미국 통신장교로 한국에서 근무했다. 올해 공식 연봉은 900만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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