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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구의 골프 경영학] '골퍼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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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대통령 골프'라는 게 있다. 라운드할 때 앞팀도 없고, 뒤팀도 없이, 극히 여유있게 플레이하는 경우를 빗대 표현한 것이다.

툭 하면 팀이 밀리고, 주말엔 예외없이 앞팀이 나가기를 기다리며 골프를 쳐야 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대통령 골프'는 최고의 플레이 환경을 의미한다. 어쩌다가 쫓기지 않는 골프를 치게 될 때 골퍼들은 이구동성으로 "야. 오늘은 대통령 골프야!"하며 흐뭇해한다.

그 같은 '대통령 골프'는 실제로 대통령들이 치는 골프에서 비롯됐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골프장에 나가면 경호상의 요인 등으로 인해 앞뒤로 넉넉하게 시간을 비워 두었던 것이다.

대통령 전용 코스도 없고, 골프라는 것이 좋은 코스에서 쳐야 재미있으니만큼 골퍼로서의 대통령 역시 바로 우리들이 치는 코스로 나와 플레이해야 했던 셈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통령이 골프치는 모습을 지난 10년 동안 볼 수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를 칠 줄 알았지만 "나는 재임 중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골프를 배웠는데도 재미를 못 느끼거나, 칠 줄 아는데도 안 치겠다고 하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다. 더욱이 "나는 재임 중 수영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골프와의 단절을 선언한 것도 이상했다.

현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사정으로 아예 골프를 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대통령이 골프치는 모습을 미국의 클린턴이나 부시 등을 통해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지난 연말,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골프연습장에 나타나 화제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盧당선자의 골프관이나 플레이 여부가 궁금하던 차에 그의 연습장행은 그 자체로 골퍼들이나 골프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상식적으로 대통령이나 대통령당선자의 골프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선진국에선 적어도 "대통령당선자가 일 안 하고 웬 골프를 치느냐"고 생각하는 국민은 드물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골프를 치느냐와 골프에 대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세인의 초점이 되는 것은 한국만의 이상한 현실이었다.

이제 이상한 현실은 종막을 고할 때가 됐다. 말 돌릴 필요 없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 아직도 골프를 사치나 졸부, 위화감 등의 단어와 연결시킨다면 그건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닌가.

골프가 비록 최고의 스포츠는 아닐지라도 사람들에게 일종의 '여유'를 주는 운동임에는 틀림없다. 비즈니스맨들이 '목표 대비 실적'이라는 일상의 건조함을 견디는 것도 주말 골프라는 여유에 근거할지 모른다.

골프연습장을 찾은 盧당선자의 모습은 분명 '여유'의 이미지다. 그에게 요구되는 '포용'이나 '조화'도 그 출발점은 '여유로움'일 것이다.

김흥구 (www.GOLFSKY.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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