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작은 업체들 공동브랜드로 깜짝 매출…해피 투게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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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붙박이장과 서재가구로 유명한 동원가구는 자체 브랜드 '솔리에(sollie)'를 갖고 있는 중견 가구제조업체다.

지난해 70여억원의 매출을 올려 3년 넘게 연평균 1백%에 가까운 성장을 이어가자 가구업계가 놀랐다. 이 회사 박홍순 사장에게 그 비결을 물었더니 '가보(家寶)로' 브랜드 덕이라고 말했다.

솔리에보다는 서울가구공업협동조합의 공동 브랜드인 가보로 이름으로 내놓은 가구의 매출이 급증하면서 일궈낸 성과라는 것이다.실제로 지난해 이회사 가보로 매출은 45억원으로 회사 전체 매출의 60%를 넘었다.

朴사장이 조합의 공동 브랜드에 참여하게 된 것은 7년 전. 당시 5백개가 넘는 국내 가구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마케팅과 기술개발이었으나 당장 수억원이 드는 대리점 개설은 엄두도 안나고 언감생심 기술개발은 생각조차 못했다.

이같은 문제를 고민하던 차에 조합에서 공동 브랜드 작업을 추진해 서둘러 참여하게 됐다.

朴사장은 "초창기에는 특별한 브랜드 이미지가 없어 큰 효과가 없었지만 2~3년 전부터 가보로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성이 높아져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마케팅 비용이 절감되고 디자인과 기술개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어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조합의 가보로 브랜드에 참여하는 업체는 33개. 이중에는 라이프와 미도사 등 중견업체는 물론 영세업체까지 포함돼 있다.

이들 업체는 1백여종의 각종 가구를 생산해 조합이 관리하는 전국 62개 대리점과 CJ39 홈쇼핑을 통해 소비자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공동 브랜드 참여사들이 만든 제품이라고 해서 무조건 가보로 상표를 부착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제품이 만들어지면 조합품질평가위에서 전문가들이 디자인과 품질을 철저히 검사하고 국제가구전에 출품했거나 할 정도라고 인정할 때만 상표부착이 허가된다. 대신 참여사에는 디자인 등 기술개발 정보가 수시로 제공된다.

지난해 8월에는 아예 의정부에 있는 경민대학교 가구산업개발원과 가구시험소 설립과 디자인 공동개발에 합의, 고품질의 가구기술 개발을 진행 중이다. 공동 마케팅과 기술개발 결과로 1998년 4백79억원이던 가보로 매출은 2000년 5백77억원, 2001년 7백49억원으로 뛰었고 지난해에는 10월 말 현재 5백17억원을 기록했다.

조합의 윤석원 가보로 사업부장은 "유행 주기가 1년에 불과할 정도로 짧은 가구업계에서 마케팅과 디자인.품질은 곧 업체의 생사를 좌우한다"며 "때문에 여러 업체가 힘을 합쳐 공동으로 품질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시스템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장기적으로 경기도 근방에 대형 물류센터를 세워 가구업계의 공동브랜드 활성화를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장례업협동조합도 3월부터 7개 업체가 참여한 '예장(禮葬)'이라는 공동 상표의 수의제품을 선보인다. 현재 조달청의 적정가격 조사가 진행 중인데 끝나면 유족들은 국공립병원에서 값싸고 질좋은 수의를 구입할 수 있다는 게 조합측 얘기다.

이 조합 민병태 부장은 "장례용품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너무 비싸고 생산자 입장에서 보면 병원의 최저입찰제에 따라 저가 덤핑을 하는 모순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저가 입찰로 도산위기에 처한 업체들을 살리고 동시에 소비자들이 바가지를 쓰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공동 상표를 도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조 합측은 수의의 경우 국가공인 원사직물시험연구소에서 원사품질을 검증받은 후 완제품역시 이곳에서 품질검증을 거친 후 정부조달가격으로 병원에 공급되기 때문에 현재보다 품질은 월등하고 가격은 10%이상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제품은 업체에서 만들고 마케팅은 조합이 조달청과 일반병원을 상대로 하기 때문에 덤핑보다는 합리적 가격제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상반기에 최소한 2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조합측은 또 올 하반기에는 목관과 기타 장례용품도 '예장' 상표를 부착해 판매할 계획이다.

신규 아파트 입주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싱크대 '아이비스(IBIS)'도 공동 상표다. 모두 18개 업체가 참여해 개발한 아이비스 제품은 현재 전국 신규 아파트 시장의 30%를 차지, 이 부문 시장점유율 1위다. 지난해 건설경기 호황에 힘입어 매출이 전년보다 60%이상 늘어난 2백50억원을 기록했다.

한국싱크공업협동조합 이연동 차장은 "참여업체들에 KS제품에 준하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호가 높다"며 "아이비스 상표의 신뢰성을 확산시키기 위해 올해부터는 대대적인 광고전략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시계 제조업체들은 올해부터 5개 업체가 모여 '세크'라는 공동상표에 대한 마케팅을 계획하고 있고 '카파치'로 유명한 피혁제품업계는 올해도 유명세를 이어가 국내 피혁제품 최고 브랜드를 탈환한다는 전략이다.

중소기업연구원 송장준 연구위원은 "현대 비즈니스에 있어 기업 이미지는 곧 판매와 직결되는 만큼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브랜드를 개발하고 판매하면 그만큼 비교우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새해에는 공동 상표 개발과 마케팅으로 승부를 걸고 여기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경쟁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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