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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사고 후 신뢰 쌓으니 모든 주민이 원전 지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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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원전 정책엔 무엇보다 주민들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로버트 레이드 시장. [송봉근 기자]

1979년 3월 28일 오전 4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의 서스쿼해나 강 스리마일 섬 원자력발전소. 2호기 냉각장치 파괴로 원자로 온도가 섭씨 5000도까지 올라가면서 핵 연료봉이 녹고 원자로 용기까지 파괴됐다. 펜실베이니아 주민 14만 명이 피난을 떠났다. 도시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세계에서 처음 발생한 원자력발전소 사고다.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 7년 전이었다. 오염 없고 비용이 적게 드는 ‘꿈의 에너지원’으로 각광받던 원전에 대한 시각이 한순간에 뒤집힌 사고였다. 첨단 과학기술, 철저한 안전 의식을 자랑하던 미국발 사고였기에 충격은 더 컸다.

 이 원자력발전소에서 8㎞ 떨어진 곳에 있는 인구 1만여 명의 작은 마을 미들타운의 로버트 레이드(80) 시장이 방한했다.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세계원전 도시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기장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스리마일 원전 사고 당시 시장이었고 지금도 시장이다. 원전사고를 수습하면서 주민의 신뢰를 얻어 28년 동안이나 시장을 맡았다. 93∼99년 6년간 쉬었을 뿐이다. 14일 레이드 시장을 만났다.

 - 사고 당시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엔 카우보이 모자를 쓴 시민들이 마을을 떠나며 시장에게 ‘집 잘 지켜달라’고 했다. 첫 사고라 그런지 초반에는 원전 사고의 위험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나중에 심각한 것을 알고 대피행렬이 끝없이 이어졌다.

 - 사고 뒤 일어난 원전반대운동에 어떻게 대처했나.

 “처음엔 주민들의 대립이 극심했다. 마치 남북전쟁 때 같았다. 시민들은 내 말도 듣지 않았다. 그럴수록 전문가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 주민들을 설득해 나갔다. 한쪽 편을 들지 않았다. 나도 두려웠지만 평상심을 잃지 않고 주민들이 진정하도록 노력했다.”

 -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한 과정은.

 “중앙정부가 마련한 4단계 비상대응 매뉴얼과 요오드 칼륨정제를 가정마다 나눠줬다. 모든 가정을 잇는 비상연락망도 갖췄다. 훈련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주기적인 대피훈련을 함께하면서 신뢰를 조금씩 쌓아갔다. 많은 주민들이 원전 내에서 일자리를 얻도록 주선했다. 원전에서 직접 일을 하면서 원전의 운영과정을 직접 보는 것이 신뢰를 쌓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원래 내 직업은 고등학교 사회과목 교사였다. 주민 중엔 제자들이 많았다. 내 말을 잘 믿어줬다.”

 - 대체에너지로 가야 하는가.

 “사고 당시엔 굉장히 반대했지만 지금은 원전을 적극 지지한다. 원전사고를 경험한 뒤 잘 대응하면서 지금껏 작은 사고 한 건도 없다. 지금, 미들타운에서 원전을 두려워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다. 원전사업자들도 주민들을 포용하고 지역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많이 한다. 원전과 우리 지역이 같은 공동체라는 의식이 강해졌다.”

 - 원전 수명연장 문제로 시끄럽다.

 “사고가 난 한참 뒤, 스리마일 원전도 수명을 연장했다. 중앙정부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철저한 검증을 통과해 주민들은 신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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