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시진핑 시대, 대선후보 청사진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성균중국연구소장

중국 외교가 변하고 있다. ‘낮은 자세를 유지하며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에서 벗어나 국제문제에서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대미 인식이 변하면서 보다 두드러지고 있다. 그 결과 동아시아에선 미·중 양국의 힘이 중첩되면서 새로운 게임의 규칙이 등장했고, 규범의 충돌도 빈발하고 한다. 이러한 미·중 관계의 틈바구니 속에서 중국의 주변 국가들은 외교적 위상 정립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숙명적으로 한·미 동맹과 한·중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동시에 발전시켜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전략적 난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어제(14일)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가 폐막하고 오늘(15일) 열릴 18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1중전회)에서 시진핑(習近平) 체제가 공식 출범한다. 시계가 불투명한 외교 환경 속에서 출범할 이 체제는 당분간 공세적 외교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중·일 간 민족주의와 영토분쟁의 여진이 여전히 남아 있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태평양 국가로 변신을 시도하는 미 정부의 새로운 정책에도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미·일 또는 미·일·인도 관계가 삼각동맹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러한 외교노선은 적어도 새 지도부가 최소한 군통수권을 포함한 명실상부한 권력을 장악할 때까지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당내에서조차 후진타오(胡錦濤)의 외교적 성과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무엇보다 외교를 보는 시야가 좁았다는 평가가 있었던 만큼 새 지도부는 조용하지만 강력하게 중국 외교에 대한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의 허상을 목격한 중국 지도부는 강대국 관계의 규범을 다시 만들고자 할 것이다. 이른바 ‘새로운 유형의 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 구상이 그것이다.

 이 구상은 중국이 ‘강대국 정치의 비극’을 막겠다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평화공존·공동발전·호혜상생을 추구하면서 강대국의 길을 걷겠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패권을 저지하고, 자국의 핵심 이익을 확실히 보호하겠다는 ‘결기’를 담고 있다. 이 같은 구상은 이미 중·일이 강경하게 대치했던 영토분쟁, 그리고 2010년 천안함, 연평도 사건 당시 중국의 외교적 자세에서도 부분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중국의 새 지도부는 외교역량을 획기적으로 높여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을 강화하고, 한편으로는 다른 나라 국민을 상대로 하는 공공외교를 통해 자국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전파하고자 한다. 관련 예산을 이미 확보했고 당정 내부에 공감대를 넓혀가고 있다. 여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외교수장을 국무위원에서 부총리급으로 정치적 지위를 높이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이러한 중국 외교의 새로운 방향과 외교 인프라 구축, 그리고 지도부의 신속하고 강력한 의지는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국의 대중국 외교는 우선 낡은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지도자의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현재 대선 후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과거와는 달리 위험을 분산하는 헤징(hedging)전략이나 균형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중국 외교를 위한 외교적 과제의 설정, 대중국 지렛대 확보 전략, 위기관리 메커니즘, 대중국 외교 인프라, 신뢰구축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과 청사진은 분명하지 않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중국 내 한국 열기도 빠르게 식고 있고, 오해가 오판을 부르는 구조도 작용하고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우리가 중국의 판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중국이 움직이는 판의 속도보다 더 빨리 도는 팽이가 돼야 한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성균중국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