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수사지휘권은 특권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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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권석천
논설위원

“나랑 자꾸 라이벌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마.”

 스폰서 검사와 스폰서 형사의 뒷거래를 다룬 영화 ‘부당거래’에서 검사가 형사에게 던진 경고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를 그제 새벽 한 케이블방송이 틀어줬다. “이 엄중한 시절에…, 거참 편성담당자하고는….” 트위터에선 경탄이 흘러나왔다. 검사 수뢰 의혹을 놓고 검찰과 경찰이 벌이고 있는 초유의 이중 수사를 지적한 것이다.

 실제 이번 사건의 전개 과정을 보면 ‘부당거래’가 허구의 세계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경찰이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의 8억원 수수 의혹 수사에 들어가자 검찰은 서둘러 특임검사를 임명한다. 총리까지 나서 “검·경의 수사 갈등으로 국민 우려가 높아질 경우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지만 분초를 다투는 소환 경쟁은 계속된다. 문득 영화 속 대사를 뱉고 싶어진다. “열심히들 사신다. 진짜….”

 문제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들 열심인지다. 특히 검찰은 왜 거센 비판 여론에도 ‘특임검사’ 카드를 고집하는 것일까. 우선 김 검사를 봐주기 위한 건 아닌 것 같다. 검사들은 “두고 보라. 경찰보다 강도 높게 수사할 것”이라고 말한다. 한 검찰 관계자의 얘기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왜 경찰이 검사를 수사하겠습니까. 수사권 조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자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나선 것도 경찰이 특정 사건(김 검사 의혹)에 대해 법에 정해진 수사 지휘를 안 받겠다고 하니까….”

  경찰은 총리 경고에 한발 빼면서도 완전히 물러설 태세는 아니다. 김기용 경찰청장은 어제 “경찰이든 검찰이든 죄를 저지르면 경찰이 수사하고 벌받게 하는 것”이라며 경찰 수사의 독자성을 강조했다. 수사의 중심에 대표적 수사권 독립론자인 황운하 경찰청 수사기획관이 있다는 점 역시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검·경 갈등의 핵심인 수사지휘권은 검찰 조직을 위한 것도, 경찰 조직을 억압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 형사소송법이 모든 수사에 관해 경찰이 검사 지휘를 받도록 한 것은 수사를 받는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재상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형사소송법』에서 이렇게 제시한다.

 “검사의 수사지휘권은 수사에 있어서의 인권 보장과 적정 절차를 실현하기 위한 법치국가 원리의 불가결한 요소가 된다… 수사 주체로서의 검사의 지위는 검사의 투철한 인권의식을 전제로 할 때에만 타당하다.”

 일선에서 범죄 혐의를 조사하는 경찰과 달리 검사는 피의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도 살펴야 한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2002년 대법원은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국가 형벌권의 실현뿐 아니라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며 검사의 무죄 증거 은폐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나는 과잉 조사를 걸러내는 장치로서의 수사지휘권에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처럼 소중한 수사지휘권을 검찰 조직이나 검사 개인의 전속적 특권으로 여기지 않는지 묻고 싶다. 검찰은 피의자나 피고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조사 과정에서 모욕감을 주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또 검찰 자신을 위해 수사지휘권을 활용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많은 국민이 특임검사 수사를 검찰 특권의식의 발로로 보는 까닭도 그 물음들 속에 있다. “경찰의 평생 소원은 검사를 수사하는 것”이란 특임검사의 발언엔 반쪽의 진실이 담겨 있다. 지금까지 외부의 의혹 제기 없이 검찰 스스로 검사 비위를 사법 처리한 경우는 없었다.

 더 참담한 건 검·경이 치고받는 수사권 다툼에서 정작 보호 대상인 국민은 빠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갈등으로 피의자·참고인의 인권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당거래’에서 검사는 말한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그 검사가 내 앞에 있다면 이 한마디를 해주려고 한다. “국민이 빌려준 권한을 특권인 줄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