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도 안 된 사업에 수조원… 현장 무시, 위에서 밀어붙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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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호 08면

“교육 효과에 대한 검증이 미흡한 상태에서 수조원의 재원을 쏟아붓는 건 곤란합니다.” 교사단체인 좋은교사운동 정병오(46·사진) 대표의 말이다.
정 대표는 “화려한 기자재 등 겉모습보다 교사와 학생이 전하는 현장의 목소리에 기반한 제대로 된 콘텐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은교사운동은 1995년 만들어진 교사 단체로 회원은 3700여 명이다. 기독교 신앙을 배경으로 창립됐지만, 교사 연수나 비폭력 대화 등 다양한 교수 학습법의 연구·보급에 주력하고 있다. 스마트교육 문제점에 대해 1년여 전부터 집중적인 연구를 해오고 있다. 정 대표를 서울 관악구 청룡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스마트교육 사업에 말이 많다.
“10여 년 전부터 진행해 온 다른 교육 정보화 관련 사업들처럼 부실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현장의 요구에 근거하지 않고 위에서부터 계획이 만들어지고 밀어붙이는 식으로 진행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들어가는 예산도 엄청나다. 일부 교사는 이 사업이 ‘교육계의 4대 강 사업’이 될 거라는 말까지 한다. 우리 단체는 정치적 입장 표명은 자제하지만 우려가 크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시범사업 등을 통해 성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2007년 이후 306개 학교에서 시범 사업을 하고 관련 보고서들이 나왔는데 상당히 부실하다. 효과가 없다는 연구도 많다. 효과가 있더라도 성적 향상에 조금 도움이 됐다는 정도다. 게다가 연구 대상도 초등 5~6학년과 중학교 1학년 정도에 국한돼 있다. 이 정도의 연구를 갖고 전 학년, 모든 교육과정에 전면적으로 도입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세종시 등의 시범사업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도 보이던데.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학생들이 혼란스러워한다거나 교육 효과가 뚜렷하지 않다는 문제점도 나온다. 관리 측면에서도 태블릿PC의 유지·보수라거나 정보기술(IT) 기기를 학생들이 잘못 사용하고 남용하는 등의 문제도 예상된다.”

-IT를 교육에 활용하는 건 맞는 방향 아닌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IT기기를 공급한다고 교육 전체가 하루아침에 바뀔 수는 없다. 교육은 어떤 주제에 대해 자료를 찾아 읽고, 스스로의 의견을 생각해 말하고, 토론하고, 직접 쓰거나 발표하는 활동이 복합적으로 이뤄진다. 현재 스마트교육은 이 중 자료를 찾고 읽는 데 도움을 준다. 전체 교육과정의 일부라는
얘기다. 이런 보완적인 도구가 교육 전체를 바꿀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지는 데 문제가 있다.”

-왜 교과부가 이걸 강행한다고 보나.
“교육 성과라는 게 원래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그런데 스마트 교육 시스템은 눈에 확 들어오지 않나. 내세우기도 좋기 때문에 정치적인 고려에서 추진되는 것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전면적인 대규모 도입을 포기하고 단계적으로 하라는 거다. IT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데 수년에 걸쳐 몇 조원을 쏟아붓는 것은 곤란하다. 또 스마트 교육을 비롯한 교육 정보화는 어디까지나 교육의 보완적 도구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사의 목소리가 중심이 돼야 한다. 실제 교육 현장에 적용할 교사들의 관심과 경험이 충분히 반영돼야 실패 확률이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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