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그들만의 리그’된 학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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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왕상한
서강대 교수

한국에 대학교수 같은 철밥통이 또 있을까. 교수의 기본은 연구와 교육임을 부인하지 않을 터. 학교에서 매달 또박또박 나오는 월급 외에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교수들에게 묻는다. 당신의 연구와 교육, 그리고 논문의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전국 대학의 교수 수는 6만여 명. 그런데 학회 수는 7600여 개이고 학술지 수는 무려 5000여 종에 달한다. 얼추잡아 교수 8명이 모여 학회를 만들고 12명이 모여 학술지를 발간하는 셈이다. 난립도 이런 난립이 없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정부는 1998년부터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학술지 평가제도를 시행했다. 정부가 정한 정부의 기준에 맞춰 학술지를 재단했다. 학술지가 이 규격에 맞으면 ‘등재지(또는 등재후보지)’라는 합격증을 붙여 주고 국민의 혈세로 지원금을 줬다. 등재지에 실린 논문의 개수로 교수를 평가하고 대학 지원사업을 심사했다.

 그 결과는 쪼개기로 이어졌다. 정부 지원을 더 받으려는 교수들의 탐욕은 학회를 쪼갰다. 업적을 부풀리기 위한 학자의 비양심은 논문을 쪼갰다. 몇 년을 고생해 수준 높은 논문을 쓰는 사람은 바보였다. 그 시간에 함량 미달의 논문을 그것도 여러 개로 쪼개고 이를 여러 개의 학술지에 나눠 실으면 훨씬 뛰어난 교수로 평가받았다. 끼리끼리 모여 이름만 다른 중복 학회를 만들어 정부 지원을 타냈다. 허접스러운 학술지를 논문 탈락률 조작 등 각종 불법행위를 통해 세탁, 등재지로 둔갑시켰다. 학술지 발간은 그 자체가 권력이 됐다. 논문을 쓰기 위한 노력보다 논문을 싣기 위한 로비가 필요해졌다. 논문 게재권을 가진 학회 임원은 말 그대로 권력자다. 말 통하는 교수를 평가위원으로 위촉해 봐줘야 할 교수의 논문 심사를 맡겼다.

 국정감사에서까지 기존 제도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부랴부랴 실태 파악에 나선 한국연구재단은 소수 연구자가 모여 각종 불법행위로 등재지를 만들고 자기 사람 논문을 실어 연구성과를 조작한 사례를 다수 발견했다. 학술지 평가제도를 정부가 아닌 학계 자율평가로 전환하고, 등재지만 되면 똑같이 배분해 주던 예산을 우수 학술지와 소외·신생·지역 학술지 지원으로 대체하겠다는 정부의 결정은 이러한 배경에서 내려졌다.

 이러한 정부 정책에 특히 인문학계의 반발이 크다. 정부 지원이 끊기면 학문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란다. 인문학의 핵심 가치가 다양성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1350개가 넘는 인문학 학회 가운데 정부 지원을 목적으로 만든 인위적 다양성이 과연 없을까. 인문학에 지출된 정부 예산은 2007년 1108억원에서 2012년 1597억원으로 해마다 늘었다. 올해의 경우 개인 연구 지원예산만 670억원이고, 공동연구비는 1234억원. 저술 출판, 명저 번역, 인문학 대중화 지원 등을 위한 예산은 135억원이다. 인문학 분야 교수 수가 1만여 명이니까 1인 평균 2000만원 이상 연구비가 지원된 셈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보지 않는 그들만의 잡지를 다양성을 이유로 무조건 지급했던 묻지마 지원을 무한정 계속해야 한다고 난리다.

 논문을 실을 학술지에까지 정부가 왜 국민의 세금을 지원해야 할까. 오직 등재지라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수천 종의 학술지가 300만원씩 똑같이 지급받았다. 이제 이 돈을 우수 학술지와 소외·신생·지역 학술지 등에 집중 지원하겠다는 게 정부 정책이다. 10년 이상 지원해도 도무지 발전이 없는 학회지를, 그 모든 문제점에도 무한정 지원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등재지만 되면 무조건 주던 지원금 제도는 지금 그대로 두고 우수 학술지 지원을 위한 새로운 재원을 마련하라는 주장을 본다. 명색이 교수라는 사람이 도둑이 아니라면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정부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정부로부터 받은 세금으로 과연 무엇을 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왕상한 서강대 교수